소나무로 우리 전통의 강직함을 우려내다
소나무로 우리 전통의 강직함을 우려내다
  • 전유진 기자
  • 승인 2021.06.08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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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송절주 이성자 명인을 만나다

  당신은 ‘우리 전통주를 3가지만 얘기해보세요’라고 했을 때 이름을 댈 수 있나요? 여성 과학자를 이야기하라는 말처럼 주춤거리며 한두 개 겨우 말하고 말끝을 흐리지 않나요. 와인 종류나 마시는 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교양 있는 사람인데, 왜 전통주에 대한 것은 아는 게 없을까요. ‘우리 술’을 지키는 법은 우리가 알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번 ‘오! 나의 주여’에서는 경기도 용인으로 가 서울송절주 이성자 명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금주령 시행한 영조마저 끊지 못했다
  사시사철 푸르른 강직함을 잃지 않는 소나무로 만드는 술이 있다. 소나무 가지의 마디를 뜻하는 송절과 당귀, 희첨 등을 넣어 빚는 서울송절주는 △삼해약주 △삼해소주 △향온주와 함께 서울 4대 명주 중 하나로 꼽힌다.

  조선 후기의 여성생활백과 <규합총서>와 이를 필사한 조리서 <부인필지>, 생활과학서 성격의 백과사전 <임원십육지> 등이 송절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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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이성자 명인>

  조선시대 가장 장수한 왕인 영조가 즐겨 마신 것이 바로 송절주다. 영조는 술을 빚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할 만큼 강력한 금주령을 시행했는데, 정작 자신은 송절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송절과 당귀가 어울려 뼈를 튼튼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데, 영조의 약한 하반신 관절에 송절주가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무형문화재 2호 서울송절주 기능보유자 이성자 명인(이하 이 명인)의 시어머니이자 바로 이전 서울송절주 기능보유자인 박아지 선생(이하 박 선생)도 남편이 다쳤을 때 송절주를 담가 봉양했다.

  송절주는 밑술과 덧술, 두 번의 담금 과정을 거친다. 멥쌀을 갈아 찐 백설기를 곱게 빻아 누룩을 만든다. 송절과 당귀 등 여러 한약재를 넣어 삶은 물을 누룩과 섞은 후 항아리에 넣어 일주일간 발효시킨다. 발효를 마치면 덧술을 담는데, 찹쌀과 멥쌀을 섞어 만든 고두밥을 밑술과 섞는다. 덧술을 담근 후 3주 정도 지나면 떠오르는 말간 물만 걸러 마신다. 송절주를 완전히 제조하기까지는 약 한 달 정도 걸리나 요즘은 냉장고에 넣은 후 조금 더 가라앉히기 때문에 몇 달이 더 걸리기도 한다.

  온도 또한 중요하다. 술이 잘 되려면 효모가 활발히 활동해야 하는데, 이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에서 이뤄진다. 보통 20도가 넘는 것이 좋지만 일교차가 클 때는 금방 삭아 버려 저온에서 숙성시킨다.

  송절주는 특유의 송진 향과 쌉싸름한 감칠맛이 특징이다. 숙성 온도와 물의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도수는 보통 17도 정도인데 높으면 18도, 낮으면 15도까지 떨어진다.


  발전과 고수, 그 무엇도 놓칠 수 없기에
  송절주는 서울의 일반 양반가에서 주로 즐기던 술이다. 서민들이 흔히 즐기던 막걸리는 바로 걸러서 마시는 데에 비해 송절주는 제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밑술을 담고 덧술을 담는 여러 번의 까다로운 과정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높은 신분 계층을 위한 술이라는 의미로, 송절주는 과거에도 귀한 술로 여겼다.

  송절주는 의료에 쓸 수 있는 물질의 성분을 침출한 약용주에 속한다. 조선시대에는 아프다고 해서 쉽게 약을 사 먹거나 병원에 갈 수 없었기에 직접 캔 약뿌리나 약재를 평소 자주 마시는 술에 첨가했다. 색이 짙어질 만큼 다양한 약재를 쓰는 이유도 집집마다 필요한 여러 약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술에 들어간 약재를 통해 각 집마다 아프고 약한 부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 선생이 송절주를 담던 시절, 송절에 당귀와 희첨 등 8가지 한약재를 같이 넣어 술인지 약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색이 새까맸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전해 온 방법에 따르면 송절주에는 송절만 들어간다. 이 명인은 “여러 약재를 넣어 송절주를 발전시켜야 할지 송절만 넣는 방식을 고수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전통주 발표회가 있을 경우 이 명인은 여러 약재를 넣은 것과 약재를 최소한으로 넣은 것 등 여러 종류의 술을 내놓는다. 경우에 따라 첨가하는 송절의 양이 달라지는데, 송절은 많이 들어갈수록 쓴 맛이 난다. 이 명인은 “술은 술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재를 최소한으로 넣으려 노력한다”고 전했다.


  국경을 넘어 전통주 부흥을 꿈꾸다
  서울송절주는 명절 이외에는 잘 판매하지 않는다. 전부 수작업이다 보니 값이 비싸 쉽게 즐기기에 부담스러운 탓도 있지만 일반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 송절주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기에 이를 증류해 만든 한주(소주)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 명인은 “판매해 수익을 얻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맥을 잇고자 하는 마음이 큰데 전수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이 명인에게 서울송절주란 ‘책임’이다. 본래 피아노를 전공하던 이 명인은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오던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전공을 그만두고 송절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만큼 이 명인은 서울송절주에 대해 무거운 부담과 책임을 느낀다. 이 명인은 “송절주의 맥을 잇는 것도 좋지만, 같이 이뤄야 하는 발전과 홍보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홍보 체제는 아예 못 갖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서울송절주를 전시하며 교육받고 체험할 수 있는 서울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의 방문자도 거의 없다. 이 명인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송절주를 알릴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고자 여러 전통주를 문화재로 선정했다. 이듬해 송절주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며 박 선생 또한 기능보유자로 선정됐다.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릴 요소로 전통주를 활용했을 만큼 전통주는 한국 식문화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현재, K-Pop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며 해외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전통주는 상대적으로 크게 관심받지 못한다. 실제로 한국의 술을 좋아하는 외국인은 많지만 전통주까지 관심 있게 보는 이들은 흔하지 않다. 이 명인은 “외국인들이 송절주를 배울 수 있는 수업을 활성화해 한국의 고유한 전통주를 알리고 싶다”며 “전통주를 통해 해외에서 한국의 문화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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