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속 여성 위인을 돌아보다
화폐 속 여성 위인을 돌아보다
  • 덕성여대신문사
  • 승인 2021.10.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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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인 현대 여성상에 발맞춰 선정해야

  화폐는 국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위인상을 나타낸다. 화폐 속 인물초상은 오랜 시간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나, 여성 위인도 공헌을 인정받으며 화폐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화폐 속 여성들을 살펴보고 우리나라 화폐 속 여성 인물 선정의 한계점을 알아보자.

 

  화폐 속 인물
  국가를 대표하다

  각 국가의 화폐는 나라를 대표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통화 자금으로써 공적으로 통용된다. 이에 △역사적 인물 △동식물 △문화유산을 화폐 도안으로 쓴다. 화폐의 앞면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인물초상인데, 그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인품과 업적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둘째,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생김새가 분명해야 한다.

  현재 한국 화폐는 △1백 원권에 ‘이순신 장군’ △1천 원권에 ‘퇴계 이황’ △5천 원권에 ‘율곡 이이’ △1만 원권에 ‘세종대왕’ △5만 원권에 ‘신사임당’을 담고 있다.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이하 김 교수)는 “화폐에 수록하는 인물은 수많은 위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공헌을 가진 인물이다”며 “이를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해당 인물이 우리 사회에 모범이 될 만한 지향점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행보와 업적으로
  전 세계 화폐에 담긴 여성들

  해외 몇몇 나라들은 1900년대 후반부터 여성 인물을 화폐 인물초상으로 선정했다. 호주는 1988년부터 모든 지폐에 인물을 평등하게 배치했다. 지폐 앞면에 여성 인물을 실으면 뒷면에는 남성 인물을 배치하는 식이다. 100달러에는 세계적인 여성 소프라노 가수 ‘넬리 멜바’의 초상이 있으며, 50달러에는 호주 첫 여성 국회의원이자 여권 신장과 여성 및 아동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에디스 코완’을 수록했다. 20달러에 실린 ‘메리 레이비’는 범선으로 인도를 탐험하며 자선사업에 힘쓴 19세기 해운업계에서 성공한 여성 사업가다.

〈출처/호주연방준비은행〉
〈출처/호주연방준비은행〉
〈출처/호주연방준비은행〉
〈출처/호주연방준비은행〉
1988년에 발행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구권 호주 지폐다. △100달러에 ‘넬리 멜바’ △50달러에 ‘에디스 코완’ △20달러에 ‘메리 레이비’를 담고 있다.〈출처/호주연방준비은행〉
1988년에 발행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구권 호주 지폐다. △100달러에 ‘넬리 멜바’ △50달러에 ‘에디스 코완’ △20달러에 ‘메리 레이비’를 담고 있다.〈출처/호주연방준비은행〉

  뉴질랜드는 1999년 여성 권익 향상을 주도한 ‘케이트 셰퍼드’를 10달러에 담았다. 그는 37세의 나이에 여성기독교 연합의 금주운동을 여성의 정치 참여 권리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1893년, 뉴질랜드 여성들이 세계 최초로 참정권을 얻게 하는 데 앞장섰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성별·인종에 상관없이 다양한 업적을 남긴 이들을 지폐에 실으며 변화하던 시대상을 빠르게 반영했다.

  한편, 일본은 2004년 발행한 5,000엔 지폐에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를 그려 넣었다. 히구치는 남성 중심적인 보수 사회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모습을 문학 작품으로 알린 인물이다. 오늘날 일본 근대 여성 문학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문인들에게나 알려진 무명인물이었던 그는 화폐에 실리면서 업적과 능력을 재조명받아 자국민들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2004년 11월 발행된 히구치 이치요의 모습이 담긴 5,000엔 지폐다.〈출처/일본은행〉
2004년 11월 발행된 히구치 이치요의 모습이 담긴 5,000엔 지폐다.〈출처/일본은행〉

 

  한국 화폐 속
  여성 인물의 등장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이 화폐에 등장한 것은 1962년 5월이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자 1962년 1월부터 범국민 저축 운동을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저축 장려를 상징하는 도안인 어머니와 아들이 저축통장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화폐에 넣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100환 지폐를 통해 그 도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발행한 지 25일 만에 제3차 화폐개혁으로 폐기되며 최단명 지폐로 남았다. 이후 1970년 8월 15일 발행된 ‘대한민국 오천년 영광사 기념주화’에 유관순과 선덕여왕이 실렸으나 실질적으로 사용된 화폐는 아니었다.

1962년 5월 발행된 ‘모자상’을 새긴 100환 지폐다.〈출처/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1962년 5월 발행된 ‘모자상’을 새긴 100환 지폐다.〈출처/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실제로 통용하는 화폐에 여성 위인이 제대로 실린 것은 2009년 발행된 신사임당이 새겨진 5만 원권이다. 2007년 한국은행은 5만 원권과 10만 원권에 들어갈 10명의 후보를 발표했고, 그중 5만 원권에 신사임당이 선정됐다.

 

  틀에 갇힌
  인물 선정의 한계

  한국은행은 신사임당을 5만 원권 인물로 선정하며 “△양성평등의식 재고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 환기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현재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다.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함께 기대효과로 내세우는 것은 여성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 수 있다.

  당시 (사)문화미래 이프의 엄을순 대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현모양처를 대표하는 신사임당을 화폐에 수록하는 것은 현대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으로 겪는 이중 노동을 정당화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사임당은 여성이지만 양반이라는 기득권 집단에 속해 있었고 예술가로서 사회적 역할도 미미했다”며 “예술가의 면모보다는 현모양처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부각돼 왔기에 현대 여성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답했다.

  일부 여성계는 후보였던 유관순 외에 △나혜석 △허난설헌 △김만덕 등 훌륭한 여성 인물들이 많음에도 신사임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 여성 중 잘 알려진 인물이 많지 않았기에 선정 위원들이 알고 있는 상식 범위 내에서 후보가 선정된 것 같다”며 “아쉬움이 남는 선정 결과에 한국은행 측의 피드백을 요구했지만 묵살됐다”고 말했다.

  신사임당은 남편과 자식들을 입신양명시키며 유교적 가부장제가 중시해 온 모성애를 지닌 인물로 조명된다. 이런 점은 여성 운동가와 성공한 사업가를 비롯한 다양한 여성 위인을 화폐에 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물의 상징성에 한계를 지닌다.

  김 교수는 “그동안 신사임당은 가부장적 시각에서 평가받아 왔다”며 “당시 시대적 한계 내에서 주체적으로 살아낸 여성으로 재평가하고 이를 강조 및 부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체적인 여성 인물 발굴 위한
  활발한 연구 필요해

  2003년 김 교수와 동덕여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여성 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가 발족하며 우리나라 화폐 속에 여성 인물을 싣기 위한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이에 동조하는 여성단체들의 목소리가 덧붙여졌다. 이는 이후 한국은행이 새 화폐에 여성 위인을 담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데 좋은 발판
이 됐다.

2007년 (사)문화미래 이프는 ‘새 화폐 여성인물, 어떤 여성이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출처/오마이뉴스〉
2007년 (사)문화미래 이프는 ‘새 화폐 여성인물, 어떤 여성이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출처/오마이뉴스〉

 

  위 운동을 선봉에서 펼친 김 교수는 “2008년까지 우리나라 화폐에 여성이 없었다는 것은 역사 속 여성 인물의 업적을 오랜 시간 등한시했음을 뜻한다”고 전했다. 이어 “5만 원권에 새긴 신사임당은 여성이 역사 발전에 공헌했음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어려움을 뚫고 자기 삶을 개척하고자 노력한 여성 위인이 오늘날 시대상에 더 알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프북스 조박 편집장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여성 위인은 남성 위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여성 인물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영웅적 면모와 활약들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다”며 “여성 인물에 대한 발굴과 탐구를 확대하고 연구를 통해 그 전제를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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