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나 자신을 새롭게 마주보는 통로
죽음, 나 자신을 새롭게 마주보는 통로
  • 전유진 기자
  • 승인 2022.04.11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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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차갑고 삭막한 이미지를 연상하고는 한다. 그러나 숨통이 끊어지는 물리적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 영정 사진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홍산 사진 작가를 만나 봤다.

 

 

  Q. 영정 사진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정 사진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영정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입니다. 촬영장에 방문하시면 사진 촬영에 앞서 유서를 작성합니다. 유서 작성이 끝나면 사진 촬영과 보정 과정을 거친 후 고객분께 보여 드려요.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을 고르면 끝납니다.

  유서 작성은 영정 사진 프로젝트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사실 사진만 본다면 다른 사진관에서 검은 배경을 두고 찍은 사진과 별반 다를 것 없거든요. 사진을 찍으러 거리가 먼 촬영장까지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이 프로젝트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Q. 영정 사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영정 사진은 나를 보러 와 준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모습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보통 그 사진은 내가 죽고 난 뒤 남이 골라 주잖아요. ‘영정 사진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선택할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마침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 중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게 사진이거든요. 우연히 조합이 맞아떨어져 그때부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했습니다.

 

  Q. 사진 촬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인물의 표정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려고 해요. 긴장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면 아무리 잘 찍어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거든요. 찍힐 때는 분명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카메라를 보면 경직된 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더구나 핸드폰도 아닌 카메라로 찍는 경우는 드물기에 본인도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나와요. 그래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때까지 찍습니다. 몇 백 장씩 찍고, 고르고, 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고. 시간과 상관없이 인물의 편한 모습이 나올 때까지 찍는 편이에요. 처음 찍은 사진과 마지막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표정이 확연히 차이가 나요. 이를 위해 촬영장 분위기도 최대한 편하고 재미있게 조성합니다.

 

  Q. 작업실을 찾는 주 연령층이 어떻게 되나요?

  주로 청년층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편이에요. 그분들은 작업실을 직접 찾을 뿐만 아니라 가족 내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기도 해요.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당시 제가 원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연령층별로 사진을 찍는 과정과 결과물에서 차이가 보여요. 일단 어르신들은 준비 및 촬영 과정 전반에 걸쳐 일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맞춤 한복 같은 좋은 옷을 입고 오시고, 사진을 찍을 때도 자세와 표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거든요. 반면 젊은층일수록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싶어 해요. 어르신들에 비해 조금 더 캐주얼한 모습을 원하셔서 표정을 다양하게 지을뿐더러 옷차림도 각양각색이에요.

제공/홍산 사진 작가
<제공/홍산 사진 작가>

 

  Q. 청년층이 영정 사진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처음 영정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목표 고객 수는 50명이었어요. 실제로는 50명도 큰 꿈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저는 이런 관심이 온전히 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옛날에는 모델이 아닌 이상 사진 찍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졸업식이나 결혼식 등 큰 행사가 아니라면 굳이 돈을 주면서 사진을 찍지 않았잖아요. 근데 최근 들어 청년층 사이에서 프로필 사진 등 다양한 사진을 찍는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사진에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보길 원하고, 그것에 돈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거죠. 저는 이런 시대의 흐름이 영정 사진 프로젝트가 많은 관심을 가지는 데 한 몫했다고 생각해요. 시대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청년층이 다양한 사진 문화 중 영정 사진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빡빡한 삶에 대한 염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공감하실 것 같은데, 저는 현대사회가 오늘보다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이 단어를 반길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요. 청년층은 당장 지금도 일자리가 없고, 취직하더라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직장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100세까지 뭘 하며 살아야 할까요? 저와 같이 과해진 평균 수명에 불안해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생겨 나면서 영정 사진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Q.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떤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원래 이런 질문을 받으면 늘 얘기했던 두 분이 있는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고객도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저는 올해 스물여덟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럴 때마다 나와 동갑인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저와 동갑인 여성 고객분들이 오시면 특히 더 반갑습니다.

  저는 고객분들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은 얘기는 잘 하지 않아요. 그분들도 저와 그런 얘기를 하는 걸 크게 원치 않을 것 같거든요. 그보다 그냥 사는 얘기를 하는 편입니다. 뭘 하고 사는지, 고민이 뭔지,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이요. 이런 것들이 누적돼 삶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중 저와 동갑인 여성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유독 더 기억에 남아요. 제가 생각했던 스물여덟은 정착된 삶을 사는 멋진 어른이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고 아직 자리도 못 잡은 성인일 뿐이거든요.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동갑 여성분들을 고객으로 더 많이 만나 보고 싶어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가장 가까운 목표는 먼 훗날에도 저를 찾는 분들이 존재한다면 그 분들이 원하실 때 언제든 사진을 찍어 드릴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 프로젝트로 배우는 것이 많기에 최대한 오래 진행하고 싶어요.

  사진 작가로서의 최종 목표는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사진에 담는 거예요. 공부가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고민을 해 보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사회에 보여지지 않은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그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등이요.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은 그 사진을 세상에 보여 줄 수단입니다. 찍은 사진을 사회에 보여 줘야지, 나만 가지고 있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저는 영향력이 그렇게 큰 편도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스피커를 찾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그분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Q. 덕성여자대학교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재학생 모두에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얘기를 건네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생존이 곧 여성들의 연대라는 것도요. 예전에는 각각 첨예하게 다른 양상을 띠던 페미니즘이 수많은 시대를 거치며 하나로 모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리들의 연대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고요. 여성들의 힘과 저력은 세상이 앞으로 빨리 나아가는 원동력이에요. 언제, 어떤 자리에 있든 항상 연대합니다. 함께 잘 살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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