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세상 그 속의 고시 열풍
백수 세상 그 속의 고시 열풍
  • 문화평론가 권경우
  • 승인 2006.09.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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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패스는 안정된 삶을 위한 방어막인가

  ‘백수’ 혹은 ‘백수건달’은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라는 뜻으로 사전에 나와 있다.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전국백수연대’라는 단체도 있다. 1998년 결성되었으며, 지난 8월 말 서울시 지원을 받는 민간비영리단체로 등록되었다. 소위 ‘전백련’은 8천5백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실업자 자활공간 운영과 상담 등의 업적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과거 코미디 소재에서나 볼 수 있거나 사회적 무능력자로 낙인찍혔던 ‘백수’가 이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청년 실업’이다. ‘이태백’이라는 말은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이구백’(이십대의 90%가 백수)이나 ‘십장생’(십대들도 장차 백수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유행어로 등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학벌, 학점, 토익 점수를 통틀어 ‘취업 기초 3종 세트’라는 말도 있으며, 최근에는 기업의 채용 기준 다양화로 인한 ‘열린 취업 5종 세트’가 뜨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인턴,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자격증 등의 실무경험이 필수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울한 21세기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청년 실업 문제가 한국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올초 ‘최초고용계약법’을 도입하려다 대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는데, 이런 문제들은 모두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실업이나 일자리 창출 문제는 청년 세대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40대와 50대의 명예퇴직 등 일자리를 잃는 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 모든 사회에서 고령화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노인의 인구 비율은 점점 늘어나지만 그들은 대부분 할 일이 없는 주변부로 물러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의 증가는 10대와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20대 초중반을 형성하는 대학생들은-참고로 한국사회에서 대학생 비율은 80%를 차지한다- 취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 결과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현상이 바로 ‘고시 열풍’이다. 얼마 전 조사에서는 대학생 3명 가운데 1명이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고시 패스를 통한 ‘전문직’이거나 ‘공무원’을 통해 소위 ‘위험사회’로 통칭되는 현대사회에서 안정적 직장을 얻으려는 것이다. 수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고시촌’이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인근에 조성되어 있으며, 고시생들이 거주한다는 ‘고시원’이 한국사회의 거주 형태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고시 열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삶의 동질화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이다. 그런데 고시 공부는 삶의 비슷한 과정이나 하나의 길로 한정짓게 만든다.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놓은 길에 모두가 몰려드는 꼴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청년 실업과 백수, 고시 열풍 등 오늘날 대학사회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자본주의의 전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한 마디로 노동 중심의 사회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은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상징적 금언이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상품의 생산과 소비, 노동과 자본의 지속적인 순환을 통해 유지 발전한다. 한국사회는 자본주의가 가장 많이 발달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의 파동에 쉽사리 흔들리는 것도 한국사회의 특징이다. 또한 해방 이후 60여년 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논리는 한국인들의 정서구조를 이미 노동 중심, 자본 중심의 생각을 뿌리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어쩌면 21세기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백수들일지도 모른다. 일하는 사람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거대한 기계는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또한 백수들은 자본주의의 최신 상품인 첨단기기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돈이 없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역시 자본주의는 위기에 봉착한다. 백수들은 자본과 테크놀러지 등 우리 시대 최고의 권력이자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 물론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돈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가 안길 준비가 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노동을 하지 않는, 혹은 적극적으로 노동을 거부하는 백수의 삶에서 점점 도구적 노예로 추락하고 있는 인간의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 역설적인 것일까? 적어도 타의가 아닌 자발적 백수들은 행복하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하고 창조하고 구성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세계화를 견딜 수 있는 이들은 백수들이다. 백수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가 새로운 삶의 방식, 즉 자본과 노동 중심의 사회에 종속되지 않는 삶, 대안적인 삶을 어떻게 창조하고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출발점으로 이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 고민의 시작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지침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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