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까페>야스퍼스
<철학까페>야스퍼스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3.06.07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헤겔의 절대적 이성 철학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실존주의는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세계적인 유행 사조가 될 정도로 대중화되었던 철학사상이다.  전쟁의 쓰라림을 맛 본 서구인들에게 학문과 기술의 외적인 진보는 더 이상 위안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소외된 개인의 주관적인 내면에 눈을 돌린 이 사조는 한 때 서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존주의 철학을 초기에 수립한 것으로 알려진 야스퍼스 역시 원래는 의학을 연구하는 과학도였으나 과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실존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은 절대적 이성에 의해 추상적 사변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의 자기, 즉 실존으로 파고드는 내면적 행위이다.  특히 그는 세계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스스로의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길 그리하여 현대 사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타인들과 연합하는 것, 즉 실존적 사귐임을 강조한 철학자다.
북해 연안에 인접한 독일의 올덴부르크에서 태어난 야스퍼스는 법률가인 아버지와 인자하고 성실한 기독교도인 어머니의 자상하면서도 합리적인 가르침 속에서 자랐다.  그의 모범이 되었던 부모는 성실함과 자립심,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그에게 가르쳤다.  특히 권위에 대한 도전의식은 어린 시절 그로 하여금 당시의 권위적이었던 학교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했다. 대학에 진학한 야스퍼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뮌헨 대학 등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이어 괴팅겐 및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수학하였다. 그러나 과학은 대학 시절에 끊임 없이 병마에 시달리면서 고독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정신적 삶의 문제-삶의 의미와 진리 그리고 목표-에 대답을 줄 수 없었다.  일찍이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야스퍼스는 1913년경부터 키에르케고르를 접하면서 '철학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만일 철학이 없다면 삶이란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라는 자신의 말처럼 운명처럼 철학자로서의 길로 들어선다.  이에 따라 1916년 이래로 하이델베르크 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야스퍼스는 1921년에는 이 대학 철학과 교수로 전임한다.  이후 그의 철학적 관심은 끊이지 않았고 지적 여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사귄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사귐으로 사랑과 인생을 나눈 사람은 바로 그의 유태인 아내 게르트루트 마이어이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다니던 시절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아름다운 유태인 여햑생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녀 역시 소문난 천재인 그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어 결혼하게 된다.  이후 모교의 정교수가 되면서 행복하기만 했던 두 사람의 삶에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히틀러 정권의 유태인 탄압이 시작되면서 대학 당국이 유태인 아내와 이혼을 하든지 대학을 떠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몰두하는 것은 실존철학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삶의 심연과의 합일을 말하는 철학입니다.  아내는 제 삶의 심연과 같은 존재입니다.  모교를 사랑하지만 아내를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는 아내를 택하고 교수직을 떠났지만 나치 정권의 탄압으로 두 사람에게는 숨막히는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 지속되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항상 아내 곁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남편의 사랑으로 게르트루트는 결국 난을 피해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전 이후 대학에 다시 복직한 야스퍼스는 전후 독일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또 영웅으로 추앙되었으니, 이는 나치 정권에 협조했던 하이데거가 받았던 대우하고는 상반된 것이었다.  만약 나치 치하에서 그가 아내를 버렸더라면 그는 사랑하는 아내도 철학도 모두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후 2년 동안 어지러운 세상 일에 관여하면서 동료들과 틈이 벌어졌고, 이에 조용한 철학 연구도 어려워진 야스퍼스는 수 차례 거절해 오던 스위스 바젤 대학의 초청(1948)을 수락하고 이후 스위스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1969년의 어느 날 스위스의 자택에서 고고한 선비를 연상하게 하는 이 위대한 노 철학자는 86세를 일기로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사랑하는 아내의 품에서 빛나는 생을 마감한다. -이숙영(덕성여대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