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수필콩트동화부분 (우수작) 선생님
[학술문예상]수필콩트동화부분 (우수작) 선생님
  • 양가을 기자
  • 승인 2006.11.11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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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선(국문4)
                                             

 서늘한 바람이 불어 따뜻한 옷이 필요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서로 붙어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을이 온 것이었거든요. 단풍도 예쁘게 물들고 아이들 사이에도 어색함보다 우정이 더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학교에 올 때, 집으로 돌아갈 때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3학년 9반은 어떤 날은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괴롭힘에 터지는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로 또 어떤 날은 모두의 하나 된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3학년 9반은 유난히 다른 반보다 사이가 좋았습니다. 언제나 활기차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집에서 쉬는 날보다 좋았습니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엄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던 영철이도, 숙제를 다 하지 못해 매일 밤늦게까지 언니를 괴롭히던 수진이도, 학교에 가기 싫다며 징징대던 상민이도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달라진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담임인 이순영 선생님 때문입니다. 이순영 선생님은 나이가 많습니다. 처음 반이 배정되고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여간 실망한게 아니었습니다. 옆 반 담임 선생님은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을 하고 단정하면서도 바람이 불때마다 살랑이는 치마를 입은 대다가 서울말을 썼는데 우리 선생님은 곱슬곱슬 파마머리에 검은 피부를 가졌고 얼굴에는 주름도 있는, 그야말로 아줌마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어느 곳의 말인지도 모를 사투리로 말하니 아이들은 새 학기 첫 날부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옆 반 예쁜 선생님이 자기반 아이들에게 사주는, 선생님 얼굴만큼 색도 예쁜 빨강 노랑 아이스크림 대신 이순영 선생님은 커다란 통에 김치를 담아 와서 손으로 쭉쭉 찢은 다음 아이들의 밥 위에 턱 올려놓았습니다.

  “어제 담근 김치여. 이런 거는 우리 애기들이랑 먹어야 이 선상님도 사는 맛이 난당께.”

  하며 손수 한 명 한 명 빼놓지 않고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아이들은 앞으로 나와서 줄을 서라고 해도 선뜻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검은 손이 맘에 안 들었고, 시뻘건 김치는 받으면 분명 먹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겁이 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맛을 본 아이들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했습니다. 3학년 9반에서는 다른 반 친구들처럼 급식을 남겼다고 혼이 나거나 억지로 밥을 먹어야 하는 고통 따위를 점점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학교에서 맛본 김치의 매콤한 맛에 반한 아이들이 집에서도 용기 있게 밥에 턱턱 걸쳐 한 숟가락 가득 떠먹으니 엄마들은 여간 기특해 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엄마들은 아이가 어떤 음식을 가려먹는지 일기장에 적어 보내는 일까지 생겼을 정도니까요.

  한번은 나물을 먹지 않는 고민을 상담한 엄마들 덕에 준비물로 나물 한가지씩을 가져오게 해서 커다란 양푼 몇 개에 고추장이랑 가져온 나물을 넣고 마치 실습시간인 마냥 돌아가면서 싹싹 비벼서 둘러 앉아 숟가락을 부딪혀 가며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순영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는 다른 반 선생님들과는 달랐습니다. 수학 교과서 몇 페이지 풀어오기, 국어 교과서 베껴 써오기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숙제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대신 친구랑 싸운 아이는 오늘 안으로 친구에게 웃어 보이기, 엄마에게 오늘 반찬이 맛있다고 칭찬해주기. 이렇게 행동으로 하고 다음날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한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거나 자기의 고민을 말하고는 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둘이 이야기할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숙제를 꼬박꼬박 했고 일기를 검사받는 대신 직접 대화를 하기 때문에 밤에 늦게 자는 일도 없어져서 엄마를 괴롭히는 일도, 언니를 괴롭히는 일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학교에 전근을 와서 처음으로 맡은 반이 3학년 9반이었습니다. 사투리를 알아들을 리가 없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더니 조금 지나서는 하나 둘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서울말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시방이 뭐에요?”

  “시방은 말이여 서울말로 하믄 지금, 이런 말이제.”

  “그럼 그냥 지금이라 그러세요. 알았죠?”

  “오냐 알았다. 지금부터 그렇게 하지.”

  선생님의 어색한 서울말이 어찌나 우습던지 아이들은 매일매일 곁에 몰려와 서울말을 가르쳐 주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여름 방학때는 선생님을 따라 놀러도 갔습니다. 시골이었는데, 원두막도 있고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계곡도 있어서 낮에는 그곳에서 물장난을 하고 오후에는 밭에서 과일을 따다가 냉장고에 되는대로 꽉꽉 밀어 넣어두었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직 배가 꺼지지도 않았는데 너도나도 몰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제가 따온 과일들을 찾아 들고 원두막으로 갔습니다. ‘쫙’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수박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도 반가웠습니다.

  방학은 너무 길었습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배웅하며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건강하기’하나였습니다. 알통이 생겼나, 얼굴이 까매졌나, 살은 얼마나 예쁘게 올라 있나가 심사기준이라고 했습니다. 개학을 하면 미스 미스터 여름방학을 선발하겠다며 열심히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선생님을 만난건 시골에서 함께한 날이 전부였습니다. 아이들은 조금 섭섭했지만 숙제를 하기 위해서 열심히였습니다. 밥도 잘 먹고, 끼리끼리 모여 하루가 다가도록 뛰어놀면서 해를 쫓아다니며 서로 얼굴을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화들짝 놀랄 정도로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열심히였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태권도도 배우고 주말에는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산도 아빠 손을 잡고 기꺼이 따라 나섰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조금 더 섭섭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지만 답장이 없었으니까요.

  “경아야 너 혹시 선생님한테 답장 왔니?”

  “아니. 이상하네……. 혹시 주소가 잘못된게 아닐까?”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붙들고 이런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서로 주소를 맞춰봐도 틀린게 없었습니다. 하루는 몇몇이서 모여 직접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을 깜짝 놀래켜 주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보낸 편지도 고스란히 우편함에 꽃여 있었습니다.

  “아직 안오셨나봐.”

  “하지만 방학이 이제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걸.”

  “맞아, 우리가 보낸 편지가 이렇게 모두 있는걸 보면 서울에 한 번도 안 오셨나봐.”

  모두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애들아, 선생님은 그 동안 엄마 아빠랑 오래 떨어져 있어서 오래 거기에 오래 있고 싶을 거야. 이제 조금만 있으면 개학이니까 기운내자! 근데 너희들 나보다 살이 안 오른 것 같은걸! 미스 여름방학은 내꺼다!”

  부반장 미영이가 말했습니다. 그 말에 다시 웃음을 되찾은 여자아이들은 자기가 미스 여름방학이라고 서로 뽐내느라 좀 전의 우울함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드디어 개학날입니다. 3학년 9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보다 유난히 건강해 보입니다.

  "야, 너네 반은 이렇게 더운 여름에 단체로 고구마라도 구웠냐!"

  옆 반 친구가 이렇게 놀릴 정도입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저 개학이 신날뿐입니다. 남자아이들은 자기 알통이 더 크다고 겨루고 있고 여자 아이들은 자기 얼굴색이 더 까맣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로가 보기에도 조금 우스웠지만 미스 미스터 여름방학으로 선발될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선생님이 어떤 상을 내릴지도 궁금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른 반 담임 선생님들이 다 교실로 들어가고 복도가 조용해질 때까지 이순영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교실 앞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순영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관악부에 지도교사로 있는 남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대머리 교감 선생님도 서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반의 담임이신 이순영 선생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학기를 여러분과 함께하지 못하게 됐어요. 앞으로 하창해 선생님과 잘 지내도록 하세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니. 개학식이 끝나고도 교실을 나서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반장! 그럼 우리 이제 저 선생님한테 계속 배우는 거야?”

  “반장! 우리 선생님은 어디가신 건데?”

  “이제 우리 만나러 안오신데?”

  교실은 순식간에 반장에게 질문을 하느라 소란스러워 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개학을 한지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밖에는 구구단을 다 외워오지 않은 아이들이 벌을 서고 있습니다. 오늘도 집에 일찍 가긴 틀린 모양입니다. 하창해 선생님은 지금 왕따입니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강요만 하니까요.

  역시 오늘도 다른 반이 다 집으로 돌아갔어도 3학년 9반 아이들은 교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리코더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선생님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리코더 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결국 아무도 연습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언제 오시는 거야?”

  “혹시, 영원히 안 오시는 거야?”

  교실이 술렁거렸습니다. 그 때 복도를 지나가던 교감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이순영 선생님은 지금 몸이 많이 아파요. 이제 학교에 오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의 담임 선생님과 재미있게 지내세요.”

  많이 아프다면서 우리가 찾아 가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끝내 병원도 안가르쳐주고 병의 이름도 우리는 말해도 모른다며 돌아서 나가버렸습니다.

 

  그 날 우리는 리코더 연습보다 여자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채워졌던 교실을 기억합니다. 나도 그때 거기서 그렇게 친구의 등을 다독거려주며 울고 있었습니다. 내 까만 얼굴을 자랑할 곳이 없어서, 오늘 엄마한테 반찬이 맛있다고 칭찬을 했더니 과자 사먹으라고 500원을 줬다고 자랑할 곳이 없어서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엄마가 원망스러워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엄마, 미워!”를 연발하면서.

  선생님의 까만 얼굴이 그 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시골에서 우리만 서울로 보냈던 이유도. 아직도 우리는 선생님의 정확한 병명이 뭐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지금 우리와 같은 곳에서 살아 있는 건지. 그것도 모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그리고 우리도 이순영 선생님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못된 제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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