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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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6.11.1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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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가족

조용한 가족 -최유진(국문3)

 1.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커튼의 틈새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을 보니, 영락없는 5시였다. 더듬더듬 탁자 위의 안경을 찾아서 옷을 입는 동안 현관문 앞의 발소리는 멈춰있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현관 불빛은 켜져 있었다. 벗어 둔 바지가 뒤집혀 있어 다시 뒤집어 입는 동안 현관불은 꺼져 있었다. 침대 옆에 떨어진 핸드폰을 찾느라 벽과 침대 사이에 손을 넣는 동안 현관불은 다시 켜졌다. 현관불은 나에게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듯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그에 반해 그의 행동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를 위한 배려일까? 스스로를 위한 배려일까? 멈춰있던 발걸음은 내가 방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다시 움직였다. 말없이 방에 대한 권한을 주고받았고 난 이제 30분간 갈 곳이 없어졌다. 30평이라는 집에 나는 왜 내가 있을 곳이 없나 생각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조차 의미 없어졌다. 그 생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하였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답이 없는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거실까지 커피향이 그윽하게 퍼질 즘, 시계는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안에서 들리는 tv속의 바둑 소리는 잠들기 직전에 들리는 초침 소리처럼 내 귀에 맴돌았다. 그 소리는 귀에서 달팽이관으로 전해지지 않고 귀에서 심장으로 전해지는 소리였다. 탁- 탁- 바둑 소리에 맞춰 한 모금씩 넘어가는 커피 맛은 내 혀에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했다. 그저 알싸하게 느껴지는 커피향만이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뿐이었다. 수영가방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굳이 큰 소리로 문을 닫고 싶지는 않았는데, 바람 때문인지 현관문은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마 그 소리는 안방까지 들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화분은 죽어있었다. 너무도 걷고 싶었던 날, 무작정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어이없게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던 구파발의 한 농원 앞이었다. 집안에서 한 번도 화분이라는 것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고 얘기하자 의아스럽게 내 얼굴을 한번 보던 주인 여자는 내게 별로 이쁘지도 않은 식물, 산세베리아를 건넸다.
“애지간해서는 안 죽는 식물이예요. 손도 안가고 물도 한 달에 한번 정도 주면 되고- ”
한 달에 한번 물을 주면 된다는 소리에 갑자기 그 산세베리아를 사고 싶어졌다. 화분 두개를 사서 들자 주체 할 수 없는 무거움이 양팔에 느껴졌다. 가로수 옆에 화분을 내려놓고 택시를 잡으려고 손짓했지만 빈 택시는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택시 자체가 한대도 없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 시간이면 은주가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올 시간이었다. 5분 정도 지나가는 차들만 멀건히 바라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올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걸어왔으니 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면 금방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시작하자 점차 손에 든 화분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익숙함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화분의 무게가 느껴질 새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한개만 살걸, 후회가 들었다. 무거워서였을까? 아니면 갑자기 사게 된 화분이 귀찮아졌기 때문일까? 한 참을 걷다 보니 택시가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원하는 것은 원할 때 절대로 나타나지 않듯이, 빈 택시는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려고 계속 그 자리에 서있었다면 이 택시는 절대로 내 앞을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택시기사는 내 앞을 지나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불광동이요.”

그렇게 사들고 와 1년 즘 키워왔던 산세베리아였다. 주인여자 말대로 산세베리아는 한 달에 한번 물을 줘도 초록빛을 잃지 않았다. 처음에 사와서는 한 달에 한번 물주는 날에 동그라미를 쳐놨었다. 난생 처음 키우는 화분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매일 물을 주는 화분을 샀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에 한번 물주는 것은, 일상생활이 아닌 특별하게 귀찮은 일로 다가왔고 그 귀찮은 일은 언제부턴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때 사온 화분 중 하나가 죽은 것이다. 살짝 손만 데었을 뿐인데 산세베리아는 힘없이 쑥 뽑혀버렸다.
사온지 얼마 안 된 화분 하나를 내다버린 뒤, 나머지 화분 하나도 내 기억 속에 버려졌었다. 내가 화분을 사왔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다시 인식 시켜준 것은 은주의 말이었다.
“엄마, 화분이 좀 마른 것 같은데?”
베란다의 건조대에 걸린 교복 와이셔츠를 가지러 갔다가 화분을 보고 무심히 던진 은주의 말에 아차 싶어졌다. 생각해 보니 물을 언제 주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달인가, 지지난 달인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떠와서 화분에 흠뻑 부어주었다. 지금 난 생리중이니, 다음 달 생리할 때 똑같이 물을 한 컵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달을 잘 지내던 산세베리아는 어느 날 갑자기 초록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2.
물속의 느낌은 언제나 좋았다. 투명한 물은 수영장 바닥의 하늘색에 물들어 원래의 투명함을 잃어버린 채 하늘색 물로만 보였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시냇물을 그릴 때는 하늘색 크레파스로, 바다를 그릴 때는 파란색 크레파스로 그린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간혹 바다를 파란색 크레파스와 흰색 크레파스를 섞어서 그리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에 시냇물은 하늘색, 바다는 파란색임이 분명했다.
은경이가 어렸을 때, 바다로 놀러 갔었던 적이 있다. 빈 주스병을 가지고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던 은경이는 갑자기 울상이 되었다.
“엄마, 이 바닷물 가짜야?”
자신의 머릿속에 그리던 바다는 늘 파란색이었는데 바닷물을 쥬스병에 담자 투명한 색으로 변해버렸다며 우는 것이었다. 어린 은경이에게 바다는 원래 파란색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던 애들 아빠와 나는 은경이를 달래는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어머님, 왜 혼자 웃으세요? 뭐 좋은 일 있으세요?”
갑자기 그날 일이 생각나며 마음 한 켠이 움직였다. 그 마음의 움직임이 내 입의 꼬리를 슬며시 올렸나 보다. 수영강사는 분명 궁금하긴 했지만, 내가 웃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냥 강사를 한번 쳐다 보고 빙그레- 웃은 채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은 땀이 안 나는 운동임에 분명했다. 자유형 30바퀴를 돌아도 내 심장은 헐떡거림이 분명한데 피부에서는 차가움 만이 느껴진다. 그 땀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심장의 한가운데서 시작 되어 모든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나가야 될 것이 나가지 못하고 내 몸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는 것, 차라리 그게 땀이라면 좋을 것 같았다.
은주는 머리를 감고 나오는 중이었다.
“도대체 아빠는 왜 면도기를 꼭 칫솔통에 꽂아?”
“또 벴어?”
“진짜 짜증나. 아침부터”
세 번째, 아니 네 번째 일어나는 일 같다. 은주는 늘 그것을 제 아빠 탓으로만 생각했다. 자신이 조심하면 괜찮을 일에 번번히 손을 베었다. 아침잠이 많은 은주는 세 번째 알람시계가 울어야 잠에서 깬다. 그리고 화장실로 비몽사몽 가서는 늘 습관대로 칫솔을 먼저 집는다. 칫솔통의 자기 칫솔만 집으면 될 것을, 보지도 않고 칫솔을 꺼내려 하니 번번히 제 아빠의 날카로운 면도기에 손을 베는 것이다.
개수대에는 국그릇 하나와 밥그릇 하나, 수저 한 벌이 씻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제 넣어두고 잔 국그릇 세 개와 밥그릇 세 개 그리고 반찬그릇 세 개는 식기세척기 안에 깨끗이 씻어져 있었다. 툴툴거리며 밥도 안 먹고 학교에 간다는 은주를 붙잡아 한 숟갈 떠먹여 보내고, 그제서야 일어나는 은경이도 출근을 하자 늘 그랬듯이 아침잠이 밀려왔다. 은주방의 커튼을 치고, 침대위의 장판을 저온에 맞춘 다음 침대에 누웠다. 무리하게 접영을 해서인지 어깨가 조금 뻐근했다. 기지개를 쫙 피려고 손을 뻗는 순간 갑자기 이 공간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안방의 침대는 양팔을 벌려 기지개를 펴도 아무것도 닿는 느낌이 없었다. 약간은 오래되어 닳은 듯한 느낌, 하지만 나의 피부세포와 결을 맞춘 듯한 침대보의 촉감. 부드러운 침대보의 촉감만이 내 살에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공간은 기지개를 펴자 차가운 벽의 감촉이 내 손에 먼저 느껴졌다. 느끼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왠지 몸의 반쪽만 침대에 누워서 자야 할 듯한 느낌이었지만 난 그곳에서 잠들 수밖에 없었다. 12시는 돼야, 내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니 벌써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뭔가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안방의 옷장 서랍에서 생리대와 속옷을 꺼내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빨래 비누로 속옷를 빨아 헹구고 있는데, 물이 빨간색이 아닌 거무틔틔한 색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까 속옷에 묻은 생리혈이 붉은 색이 아닌 것 같았다. 검은색 같았다. 속옷을 빠는 내내 기분은 그 색깔만큼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베란다에 손빨래한 속옷을 널고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따랐다. 스텐레스 컵의 차가움은, 정수기 온도만큼 손끝으로 느껴졌다.  늘 그랬듯이 산세베리아는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물을 한 컵 주어도 그 초록빛이 깊어지거나, 푸르러 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3.
“오빠네 집에서 상견례 날짜 잡으래. 우리 쪽 시간에 맞춰도 된다고 하시네.”
어제 저녁 퇴근을 하고 들어온 은경이는 술이 약간 취해있었다. 누구랑 술을 마셨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은경이의 뜻밖의 대답이었다.
“결혼 할 맘 정했어?”
“걱정마. 행복하게 살꺼니깐.”
“아빠한테 얘기 할테니깐 좀 기다려봐.”
은경이의 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발끝이 저려왔다. 한걸음만 더 걸으면 발끝이 부서져버릴 것 같아서 은경이의 방문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덕분에 듣고 싶지 않았던 은경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말았다. 분명 은경이는 ‘도날드’라고 부르는 흰 곰인형을 붙들고 울고 있을 것이다.
꼭 애들 아빠와 함께 해야 하는 자리였다. 분명 애들 아빠로써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자리지만 그것을 말하는 내 입장은, 마치 내가 애들 아빠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 같았다. 오랜만에 애들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내 모습에 익숙치 않았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내 핸드폰의 단축번호 1번이 아직도 애들 아빠라는 사실이었다. 신호가 1분 동안 갔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애들 아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걸어볼까 했지만 1분이 넘게 가는 신호음에 심장이 답답해질 것 같아서 다시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번 신호음이 가고 다음번 신호음이 갈 때까지의 그 짧은 정적의 순간에 내 심장은 멈출 수 없는 피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그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일분을 견딜 수 없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결국 노란색 포스트잇이였다.

 - 은경이가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 그쪽 집에서 상견례를 하자고 하나 봐요. 참석 하셔야    할 것 같네요. 이번 주나 다음 주 주말에 괜찮은 시간 있으면 밑에 적어주세요. -

화장대에 붙여두면 눈에 잘 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tv옆에 붙여두자니 너무나 오랜만에 하는 대화가 tv프로그램 같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싫었다. 포스트잇을 어디다 붙여 둘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을 자지도 못하고 손에 종이를 든 채 깜빡 잠이 들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했던 푸르스름한 빛이 보이지 않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낯선 빛은 분명 검은 색이었다. 손을 더듬어 찾은 핸드폰의 액정에서는 2시 40분이라는 숫자가 발광되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잠시 침대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나 들으려 했지만 2시 40분이라는 시간답게 밖의 소리는 어둠 그 자체였다.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이불을 다시 덮자 가슴 언저리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잠옷을 한번 쓸어보자 종이 같은 무언가가 침대 밑으로 가볍게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기억났다. 1년만의 대화는 어둠 속에서 또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갑자기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잠을 자는 시간이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큰 고민을 해도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상갓집에 있는 유가족들도 밥은 안 먹어도 잠은 자는 것 같았다. 물론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
애들 아빠의 부도 소식을 듣고 나서 식음을 전폐했을 때도 그랬다. 물 한 방울도 먹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을 때, 이상하게도 잠만큼은 너무나 자고 싶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전부 제자리로 돌아 올 것 같은 생각에 열흘 간 잠만 내리 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열흘 동안 잠만 자는 사이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tv와 냉장고에 붙어 있던 노란색 스티커는 열흘 동안 접착력조차 떨어지지 않은 채 철썩 같이 붙어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 변한 것은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 하나였다. 노란색 스티커를 띠어내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동정을 얻으며 빌려낸 현금다발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직도 혜숙이의 그 목소리는 잊혀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10년 넘은 친구한테 처음 하는 부탁이 돈 꿔달란 소리니?”
아마도 난 부탁을 하고 살지 않았나 보다. 돈을 빌리러 갔던 그 날도 두 시간쯤 옷을 고르느라 고민했었던 것 같다. 돈을 빌리러 가는 입장에서 화려한 옷을 입으면 혜숙이가 돈을 안 빌려 줄 것 같았고, 볼품없는 옷을 입고 가면 돈을 갚지 않고 도망 갈까봐 안 빌려 줄 것 같았다. 아니, 화려한 옷을 입고 가면 없는 주제에 할건 다한다고 비웃을 것 같았고 볼품없는 옷을 입고가면 돈 빌리려고 동정표 산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옷장 안에 있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몇 번 하고 있을 때, 은주가 말했던 것 같다.
“엄마, 어디 좋은데 가?”
은주의 그 천진난만한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멤 돌았다.
4.
처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마트에서 한참 쇼핑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새로 나온 생리대의 샘플을 나눠주던 직원이‘자녀분 가져다 주세요’라고 말하며 샘플을 건내 주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쓰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런 것은 이제 안 쓰게 생긴 나이인가? 그 덕분에 쇼핑을 하는 내내 나의 왼손에 쥐어져 있던 생리대 샘플은 쓸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그날 집에 오자마자 했던 일은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었다. 차에서 짐을 내리지도 않고 뛰어 들어와  물을 한 컵 마신 뒤, 그 컵에 물을 가득 담아 화분에 부어주었다. 화분 받침에는 물이 넘쳐 흘렀다. 생각해 보니 지난 주 쯤 물을 준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저 화분은 물을 주어도, 안 주어도 별 반응 없는 것이니깐 -
마트에서 사온 반찬거리를 정리한 뒤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이 라면 먹을 때 쓰는 큰 그릇에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김치, 미나리, 가지, 호박, 냉장고에 있는 남은 반찬을 싹 쓸어 넣어 비볐다. 참기름을 꺼내오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는 식욕은 나를 그대로 식탁에 앉혔다. 여러 재료가 들어있는 비빔밥이었지만,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그저 남은 음식쓰레기를 처치하는 과정 중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나 보다.  
청소를 하러 들어온 은경이방의 침대보는 아직도 축축해있었다. 은경이가 얼마나 속상해하는지는 내 손의 축축함으로 느껴졌다. ‘도날드’는 언제나 그렇듯이 침대 오른쪽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다. 아마 저 인형이 우리 집에 온지는 10년 전쯤이다. 은경이가 초등학생 때였으니 꽤 오랜 시간 은경이의 잠자리에 함께 했던 인형이다. 은경이가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 tv에서 디즈니 만화를 보던 은경이는 그날 밤 도날드 인형을 사달라며 떼를 쓰고는 약 먹기를 거부했다. 내일 아침에 사다준다고 얼르고 달래고, 혼을 내도 약을 안 먹고 버티더니, 결국 그날 새벽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하던 은경이 아빠는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웃옷도 걸치지 않고 뛰어 나갔다. 기운이 빠져 잠이 든 은경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누워있다 나도 잠이 들었다.
 “은경아 일어나봐.”
애를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던 것 같다. 은경아빠는 한 손에 아주 큰 흰 곰인형이 들려있었다.
 “어디서 사왔어?”
 “그 친구 있잖아. 일산에서 팬시점 한다는 친구. 걔한테 가서 사왔어. 근데 오리     인형은 없어서 곰으로 사왔는데 괜찮겠지?”
아침부터 인형을 사온 아빠 때문일까? 아니면 그 곰인형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일까? 눈을 뜨자마자 인형을 껴안고 좋아하던 은경이는 금세 열이 내려있었다.
 “아빠 근데 왜 도날드 인형 안 사왔어?”
 “얘가 겉모습은 곰인데 이름은 도날드래. 그래서 사왔지.”
한참을 까르르 웃던 은경이는 그 곰인형을 안고 퇴원을 한 뒤부터, 잘 때 꼭 안고 잤던 것 같다.

5.
어제도 술이 취해 들어온 은경이는 내가 묻는 말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쪽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시니?”
“결혼하면 살림은 어떻게 할래?”
“그 쪽 부모님들은 너 마음에 들어하셔?”
나의 물음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던 은경이의 눈빛은 모든 질문을 거부한 채 ‘아빠랑 얘기했어?’라고 묻고 있었다. 그 눈빛에 대답 할 수 없었던 난 잘자라는 말만 하고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또 발끝이 저려왔다. 하지만 발을 움직여야만 했다. 오늘도 은경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톱이 부서지는 것 같이 저려왔다. 새끼발가락의 발톱부터 엄지발가락의 발톱까지, 그리고 복사뼈, 종아리까지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자리를 잡듯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허벅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국 남의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한 몸인 종아리와 허벅지의 사이도 이런데 말이다.
저린 다리를 한 걸음 한걸음 옮기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찬 물을 한잔 마시면 갈증이 해소 될 것 같았지만 두잔, 세잔을 마셔도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네잔 쯤 물을 마시니 마신 물이 위에서 식도로 다시 넘어오는 듯한 느낌에 역겨워졌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살짝 누르면 마신 물이 모두 넘어 올 듯 했다. 온몸의 물이 흡수 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갈증은 계속 되었다. 더 이상 마실 수 없지만 타는 듯한 갈증에 물 한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내가 못 먹으면 너라도 먹어라. 물 한 잔을 화분에 부어주고 돌아 서자, 갑자기 온 몸에서 겉돌기만 했던 물이 흡수되었다. 아마 갈증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저 화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침대에 누우니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이 내 몸에 다가왔다. 내 피부의 세포 배열과 이불의 면 조직은 딱 들어맞는다. 처음 사왔을 때는 따뜻하긴 하지만 편안한 느낌이 없이 그저 난방용으로 이불을 덮었었다. 하지만 이불은 점차 내 피부의 세포 배열와 일치되어, 이제 이 이불 없이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몸에 착착 달라 붙는 이불의 느낌은 내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생각해 보니 벌써 한 달째였다. 상견례 얘기를 꺼내려고 몇 번을 시도 했지만, 우리집의 오랜 침묵의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대화의 방법 까먹기’였다. 옛날에는 어떻게 얘기 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대화라곤 하나뿐이었다. 
 “ 여보. 집에 들어오는 길에 독서실에서 은경이 태워 와요.”
그때는 아마 은경아빠의 퇴근 시간이 밤 12시쯤이었다. 은경이가 고 3시절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은 은경아빠가 매일 데리러 갔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밤길을 혼자 못 다니던 은경이는 제 아빠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날이면 2시고, 3시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며 기다렸다. 
은경아빠는 그래서 은경이의 독립을 허락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방대학에 붙은 은경이를 붙들고 재수를 권유하던 제 아빠에게 ‘아빠 부도 났다며, 지금 우리 집에 나 재수 시켜 줄 돈이 어딨어?’라고 은경이는 대답했다. 아마 제 아빠와 은경이의 마지막 대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리집의 대화는 끊어져버렸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니던 은경이는 대학 4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그리고 4년 동안 한 번도 집에 올라오지 않았다. 4년 동안 은경이의 기억속의 집이란 노란색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위해 짐을 싸던 날 은경이는 오디오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노란 스티커를 만지작거리던 은경이는 손톱으로 그 스티커를 떼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은경이의 손톱과 오디오가 마찰되어 나는 소리는 싱크대의 물소리가 큼에도 불구하고 내 귀에 크게만 들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은경이는 오디오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이 집에서 내가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은경이의 흐느낌은 어느 새 나에게 질문으로 들렸다. 그 질문을 은경이가 정말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은경이의 검지손가락의 손톱이 부러져 피를 닦고 대일 밴드를 붙여주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다음날 아침, 혜숙이에게 돈을 빌리러 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거실에 있는 오디오의 중간 부분은 손톱으로 긁혀진 상처가 남아있다. 가끔 그 흔적을 보면 은경이 손에서 나던 피비린내가 생각나 어지러웠다.

6.
제 언니의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은주의 입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언니의 드레스 얘기부터 시작해 자기는 나중에 어떤 드레스를 입을 것인지, 결혼식은 어디서 할 것인지 은주의 입에서는 온통 미래의 결혼식 얘기였다.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어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놀라게 할 것 이라고 했다. 왜 재미없게 다 똑같은 흰색 드레스를 입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하며, 자신은 제일 좋아하는 색인 분홍 장미색의 드레스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 한참을 수다를 떨던 은주는 한강다리를 건너자 말이 없어 졌다. 졸린가 싶어 조용한 노래를 틀어 주려고 시디트랙을 넘기고 있는데, 은주가 입을 열었다.
“엄마, 근데 아빠 많이 늙었더라.”
상견례 자리도 결국 은경 아빠와 함께 하지 못했고, 은경 아빠에게 은경이의 결혼 소식을 알렸던 것은 다름 아닌 청첩장이었다. 결혼식을 3주 앞두고 나온 청첩장에 새겨진 ‘신부 - 최성호씨와 이현숙씨의 장녀 최은경’이란 인쇄글이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못 박아 주었다. 그리고 tv 위에 올려진 청첩장은 새벽 5시에서 오전 12시 사이에, 꼭 보내줘야 할 하객에게 보여 졌다. 조금 특별한 하객인,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하객에게 말이다.
집에 오자 은주는 피곤한지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피곤했지만 오늘 만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1년 전 쯤은 내 방이었지만 은경이가 취직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느라 잠시 은경이의 방으로 내주었던 원래의 내 방에 짐을 옮기는 일이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 몇 벌과 화장품 따위 밖에 없었다. 모든 짐을  다 안방에서 꺼내 오기는 싫었다. 그냥 하루하루 생활 할 수 있는 분량의 짐만 옮기고 싶었다. 옷장 서랍을 열어보니 오래전에 사온 생리대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제 이것들은 내 방으로 옮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오자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또 밀려왔다. 이제 물을 몇 컵씩 마시는 미련스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내 갈증은 내가 아닌 산세베리아의 갈증이기 때문이다. 난 입만 축이고 물 한 컵을 화분에 부어주었다. 난 산세베리아를 사온 뒤 , 한달에 한번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
방에 들어가려는데 은주의 방에서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 발은 은주의 방문 앞에 섰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내 방으로 향하였다. 은주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은주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난 익숙치 않은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은주는 은경이가 주고 간 도날드를 껴안고 울고 있을 것이다. 제 언니의 눈물이 담겨있는 도날드를 안고 울고 있을 것이다. 제 언니가 그랬듯이-


이제 난 새벽 5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6시 수영을 가기 위해 30분 동안 거실에 앉아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5시 반쯤 일어나 천천히 준비를 하고 문을 나 설 수 있다. 현관불의 깜빡이는 재촉을 피할 수 있고, 안경을 찾느라 침대와 벽 사이를 헤매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수영을 쉬고 싶은 날은 늦잠을 잘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12시쯤 일을 마치고 5시까지 사무실의 쇼파에서 쪼그려 자지 않아도 될 것이고, 현관 앞에서 무심하게 꺼져버린 현관불을 다시 키느라 손을 휘젓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 그의 발소리는 대기시간 없이 현관 앞에서 바로 방으로 직행 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어색한 사람끼리 마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제 우리집은 온전한 3개의 방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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