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꽃이 피었습니다
비혼, 꽃이 피었습니다
  • 박시령 기자
  • 승인 2007.03.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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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비혼여성 축제 르뽀

비혼(非婚). 미혼(未婚)의 오타가 아니란다. 결혼을 아직 안 했거나 상대가 없어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스스로 선택하고 원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란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독특하고 수위 높은 발언을 하는 것일까.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비혼을 선언하러 언니들이 뭉쳤다. 지난 10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언니네트워크 주최 제1회 비혼여성축제를 다녀왔다.

비혼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날씨가 잽싸게도 알아챘다. 꽃샘추위가 유난히 강했던 지난 10일, 간밤과 아침에 내린 비로 마로니에 공원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무대 위에 예쁘게 단장해 놓은 분홍천은 비에 젖은 채로 쉴 새 없이 바람에 펄럭였다. 설치한 기계가 계속 말썽을 부려 행사는 예정됐던 3시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됐다. 확실히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작은 아니었다.
언니네트워크 액션나우팀장 ‘나비야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결혼하지 못한 미혼여성이 아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자율적으로 선택한 비혼여성입니다. 결혼이라는 정상적이지만 완전하지 않은 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삶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여성들입니다.” 그녀는 말끝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에 공개된 자신의 사진에 달린 악플을 하나 소개한다. ‘얼굴 보니 결혼 못할 만하네.’

전국에 30대 노처녀의 화려한 싱글로의 회귀본능을 불러일으킨 삼순이, 일도 사랑도 모두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영화 <싱글즈>의 싱글녀 나난과 동미, 결혼이 주는 편안함을 차버리고 비혼이 주는 불안하지만 짜릿함을 선택한 미국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바야흐로 결혼하지 않고도 여성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월이 온 것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홍보하듯 떠들지 않아도 이제 비혼여성은 특별하거나 이상한 이들이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05년 1인가구수가 3백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수의 20%가 홀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 5년 전에 비해 43%나 증가한 수치다. 게다가 지난 8일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8명 이상은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도 전체의 16.8%에 그쳤다. 그 중 여학생은 10.4%만이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수치로까지 보여주니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법한데도 여전히 비혼여성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이해는 하지만 대우는 안 해준다는 식의 모순이다. 사회 통념상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늙고 미모가 떨어지는 노처녀이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택 청약이나 전세금 대출에서 꼴찌로 밀려나기 일쑤고, 소득공제 등의 세제혜택은 엄두도 못낸다. 그런 그녀들이 결심하고 이 자리에 뭉친 것이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비혼여성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다양한 모습의 생활 형태를 인정해 달라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홀로 있기를 선택한 자신들이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달라고 외친다. 자줏빛 망토를 둘러쓴 비혼결의자들은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레드카펫에 올라섰다. 결혼이 많은 이들의 따뜻한 격려와 축하 속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행사라면 그 반대인 비혼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그네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비혼여성에 대한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잘 알고 있는 것도 바로 비혼여성들이다. 비혼식에 참가한 한 여성은 비혼여성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힘들기 마련인데 주위에서는 그럴 때마다 원인을 ‘결혼하지 않음’에 돌리고 있어 속상하다고 말한다. 비혼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괜찮고 행복한지 자꾸 증명하길 원하는 게 비혼여성으로서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이윽고 그녀들이 ‘짜증난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시집 빨리 가래서, 손주 언제 보냐 해서, 경조사비 조건미달, 비혼이 미혼 오타래서 짜증이 나’라는 가사의 노래를 진심을 다해 부른다. 비혼에 대한 꽁트에서는 각각의 계층을 대표하는 4명의 등장인물이 결혼과 비혼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동네아저씨 왈, 결혼 안 하는 여자도 결국은 결혼 못하는 여자고, 결혼 못하는 여자는 사실 어딘가 부족한 여자란다.

두 시간 남짓한 축제는 끝났다. 쌩쌩 부는 칼바람에 손발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낸 사람들은 40여명. 축제가 처음 시작할 때 모인 사람들의 1/3이다. 축제 중간 중간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붉은 꽃 코사지를 가슴에 단 모습을 보고 하나 둘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비혼축제’라는 말에 왜 이런 행사를 하냐는 듯 돌아섰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여성들에게 ‘제도에 얽매였다’, ‘고리타분하다’고 말할 권리가 없듯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에게 ‘때 놓쳐 시집 못 갔다’, ‘혼자서 행복할 것 같냐’고 손가락질 할 권리도 없다. 재력과 미모를 두루 갖춘 비혼여성은 아니어도, 자신만의 찬란한 인생을 위해 비혼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행복한 방식을 따라 홀로 꽃 피겠다고 다짐한 그녀들에게 비난보다는 박수를 보내자. 어딘가 말 못한 사연 때문에 비혼을 결심했겠거니 혹은 뭔가 부족하니까 하는 식의 의심 섞인 눈초리는 거두는 것으로 하자. 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가 선택한 행복한 삶의 방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기쁘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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