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유쾌한 명절을 위해!
딸들의 유쾌한 명절을 위해!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7.09.29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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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현 감독의 <딸들의 명절>, <엄마를 찾아서>

  지난 달 19일, 비가 참 많이도 왔다. 야속하게도 버스 안에 있을 때는 이슬같이 내리더니 혜화역부터 사무실내 북카페에 도착하기까지 걸어가는 15분동안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무리 ‘작은 영화제’라는 타이틀로 소박함을 말한다지만 영화제에 참석한다는 설렘이 있었는데…. 출발할 때의 설렘은 비에 떠내려 가버린 기분으로 ‘문화 미래 IF’(이하 IF)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곧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차 한 잔으로 평온을 되찾았다. 설렘도 함께.

소박함이 좋은 작은 영화제
두달에 한 번씩 여성감독들의 영화를 선보이는 ‘작은 영화제’는 이번에 5회를 맞았다. IF 홍보팀 정선영 씨는 “거창한 공간은 아니지만 오순도순 모여 영화를 보고 감독과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영화제는 다가올 추석을 맞아 우리네 딸들의 명절과 한국 가족 사회내 엄마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상영한다”고 밝혔다. 사무실내 북카페는 신발을 벗고 편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적합해 보였다. 5회 IF 작은 영화제에서 상영될 영화는 정호현 감독의 <딸들의 명절>과 <엄마를 찾아서>이다. <딸들의 명절>은 이미 제 3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고 <엄마를 찾아서>는 다큐멘터리 옥랑상 3기 수상작에 빛나는 웰-메이드 작품들이다. 관객들보다 일찍 도착한 정호현 감독은 벌써 편한자리를 잡은 듯 환한 얼굴로 영화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 탓에 상영 시간은 예정보다 30분정도 늦어졌다.

   
▲ 정호현 감독

엄마, 부인, 며느리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다
첫 영화는 <엄마를 찾아서>였다. 한국의 대가족 제도 하에서 ‘맏며느리’ 정치 구조를 성공적으로 읽어내고 감당해낸 고모와 맏며느리 삶에 실패했지만 사후에 하나님에게 내 삶을 보상받으리라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의 단절된 삶을 조망한다. 아내, 어머니라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고모는 올케(나의 엄마)도 시부모, 시댁 식구들에게 최선을 다 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과 동시에 엄마는 제사를 거부해 아빠의 친척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되받는다. 반면 엄마는 영화 속에서 나(감독)에게 성경을 읽어주거나 과거를 고백하면서 진리가 있는 ‘저세상’, 즉 천국을 꿈꾼다. 큰 명절을 맞아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 엄마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실제 감독의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엄마를 찾아서>는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려 할 때 막상 나의 엄마는 없었다’라는 마지막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두 번째 영화는 <딸들의 명절>로 5녀 1남의 가정에서 명절에 대해 말하는 딸들에 초점을 맞췄다. 전업주부로서 프로의식을 가진 둘째 딸, 대학원 공부 중이라 저녁 집안일을 모두 남편에게 맡기는 셋째 딸, 그리고 결혼한지 3개월된 넷째 딸 수연까지. 명절이 되어 친정에 모인 이들은 시댁에서도 지긋지긋하게 했던 일들을 친정에 와서도 또 한다. ‘비자발적 의무행위’ 이것은 셋째 딸이 정의내린 시댁에서의 가사 노동이다. 또한 수연과 남편은 삶의 불평등한 부분들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갓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는 수연의 남편을 보고 ‘남녀평등’을 노래해대던 언니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을 느낀다. 수연은 “얼마나 안락한 삶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사는갚라며 남편의 모습에 흐뭇해한다. 매년 명절때만 되면 ‘명절증후군’이라 하여 주부들의 스트레스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온다. 수연네 부부처럼 평등을 실현하려는 실험을 행해 나갈 때 점점 딸들의 명절이 유쾌해 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소소한 얘기들이 오가는 영화제의 끝

   
▲ 상영이 끝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편의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 관객들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영화와 관련된 궁금증부터 감독의 개인적 얘기 그리고 내 얘기까지 훈훈한 담소가 오고 간다. 다른 영화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정호현 감독은 “<엄마를 찾아서>는 편집과정이 1년이 걸렸다. 편집을 하면서 계속 엄마 얼굴을 보려니 괴로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엄마를 바라볼 때면 ‘맏며느리인 엄마’에 대한 측은지심과 ‘내 엄마’에 대한 섭섭함이 괴리를 형성했다는 말에 왜 편집과정이 고달팠는지 이해될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눈에 이슬이 맺히는 이들도 있었다. 한 관객은 “나의 퇴직금을 교회에 다 헌납하길 바라는 엄마에게 화가 났었다. 그러나 나를 있게 한 것은 엄마고 그런 엄마를 살게 한건 하나님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단지 그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결국 헌납했다”는 마음이 짠해지는 얘기를 했다.  


한편, <딸들의 명절>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과연 수연씨 남편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는 탄식부터 ‘우리 남편은 오히려 집안일을 못하게 한다’는 행복한 고민까지 극과극의 얘기가 오갔다. 이내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한창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 곳이 영화제 맞나’, ‘저 분이 감독 맞나’하는 의문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었다. 영화제의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모임의 시작 같았다.


IF 홍보팀 정선영 씨는 “여성감독들의 영화 기획전을 계획하고 있다”며 작은 영화제의 발전 방향에 대해 말했다. 작은 공간에 모여 영화를 보고 담소를 나누는 IF의 작은 영화제. 그 곳은 여성을 위한 색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쉼터가 되고 있었다. 이기적인 페미니스트 집단이 아닌 소소한 이야기에 울고 웃는 여성들이 모이는 작은 영화제가 계속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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