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몸을 웅크리게 하고 두 손을 어김없이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는 11월의 어느
날. 차미리사관 254호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새어나온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자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맨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덕성사회봉사단 공부방 봉사대가 인근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방과후 공부방에 본지 기자들이 찾아갔다. 한 손엔 신문 한 뭉치를,
다른 한 손엔 갖가지 색지와 가위, 풀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차미리사관 254호의 문을 두드렸다. 기자들이 일일 NIE(신문활용)활동
교사가 되었다.
제 소개를 오려 붙이라고요?
“자, 오늘 1교시는
우리대학 신문사 기자분들이 오셨네요. 여러분한테 재미있는 걸 가르쳐 주신다고 해요. 원래 1교시 수업인 영어듣기는 오늘 하루 쉽니다.”
덕성사회봉사단 방과후 학습지도를 담당하는 박정미(중어중문 4)학우의 인사말로 본지 기자들의 낯선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정성껏 준비해온 자기소개와 가족소개 NIE 샘플을 꺼내어 재미있음을 한껏 강조했다. “이것보세요. 정말 쉽죠?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을 신문에서 오려 붙이고 재미있게 소개를 해보는 거에요. 정말 쉬워요. 재미있고요”라며 기자들은 돌림노래 부르듯 말한다.
선생님, 그런데 연예인 사진은 없어요?
창간
43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NIE(신문활용)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기자들이 마음을 모았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마음만 앞섰지 NIE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던 터라, 기자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과연
신문으로 뭘 해야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며칠간 기자들의 머릿속은 쉴 틈이 없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준비를
해봤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쉬우면서도 의미 있는 것은 ‘나에 대한 소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소개를 NIE 활동의 주제로 잡게 되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이 낯선 이들의 출연에 부디 반감만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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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문화부 | ||
“선생님, 그런데 연예인 사진 나온 신문은 없어요?” 승리의 옆에 앉은 여학생이 큰소리로 외친다. “여기 있네. 김연아.” “여기도 있다, 이문세 아저씨.” 여기저기서 신문지면에 등장한 연예인 사진을 발견하곤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저는 친구소개를 할래요
여학생들은 NIE 활동에
슬슬 재미를 붙여나가는데 남학생들 진도는 영 시원찮다. “왜 안해? 어렵니? 재미있게 생각해. 맘에 드는 사진 없어?” 괜히 미안한 맘이 들어
기자들은 연신 묻는다. “아니오, 그게 아니라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제 소개는 하기 싫은데”라며 중학교 1학년 준영이는 입을 삐쭉인다.
이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옆 친구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 그러면 얘 소개해도 돼요?”
친구 소개를 하기로 마음먹은 준영이는 옆 친구 현동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킬킬대더니 사뭇 진지한 얼굴로 신문을 뒤적인다. 그러더니 우스운 표정을 한 운동선수의 얼굴과 곤혹스러운 표정의 정치인 얼굴을 오려 현동이의 얼굴이라며 웃었다. 이에 질세라 현동이는 냄비 사진을 찾아내 ‘준영이가 좋아하는 것은 먹을 것’이라고 써넣었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더 재미있는 사진을 찾기 위해 신문을 뒤적이는 두 남학생의 얼굴에도 어느새 웃음이 하나 둘 맺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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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문화부 | ||
한편 조용히 앉아있던 예인이는 군말 없이 여기저기서 찾아낸 그림들로 훌륭한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다. 좋아하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책이며 앞으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다며 가장 그럴듯한 자기소개서를 만들었다. 예인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지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하며 한동안 자기가 만들어낸 NIE 작품에서 눈을 못 뗐다.
공부하는 게 아니니깐 재밌어요
기자들은 마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아이들과 어울렸다. 차츰차츰 완성되어가는 아이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각자의 관심사를 묻기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낯설어하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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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문화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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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문화부 | ||
바깥은 여전히 바람 불었다. 그런데 춥지는 않았다. 몸 어디선가 올라오는 후끈한 기운이 몸 안에 퍼지고 있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