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프고 다친 마음, 빨래해 줄게요
당신의 아프고 다친 마음, 빨래해 줄게요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8.04.07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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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쉬] 뮤지컬 <빨래>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3/15 ~ 8/17)

 

서울을 살아가는 1,040만명의 사람들. 천만가지의 개성과 천만가지 속사정을 담고 살아가는 도시. 이 두 소재를 극에 담는다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을 수 있을 것이다. 대궐 같은 집에 사는 회장님의 주말, 주목받는 영화배우의 일상…. 화려하고 웅장한 볼거리들이 극을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서울 어느 좁은 동네의 다세대 연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소소한 일상 속 행복과 감동이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얼룩지고 구겨진 꿈을 빨래해주겠다는 뮤지컬 <빨래>. 지난 2005년에 초연한 이 작품은 외국인 이주노동자, 부당해고자, 장애인 등 뮤지컬에서는 다루기 쉽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한 감동과 웃음을 잘 살려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다시 돌아온 ‘2008 뮤지컬 <빨래>’는 우리의 지친 꿈을 빨래해 주기에 여전히 충분하다.


서울의 변두리 좁은 골목길의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오게 된 서나영은 서울생활 5년째이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꿈을 잊고 산지도 오래다. 그녀의 맞은편 옥상에는 몽골에서 온 이주 노동자 솔롱고가 살고 있다. 옥상까지 빨래를 널러 온 나영은 어색하지만 솔롱고와 첫 만남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맞은 편 옥상으로 날아간 빨래. 그 빨래를 주워 던져주며 솔롱고는 나영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린 나영은 솔롱고를 친근하게 느끼게 된다.


나영과 솔롱고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왔다. 강원도 출신의 나영은 더 넓은 세상과의 만남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지만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솔롱고 또한 서울로 가면 돈을 벌어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무지개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난 지 5년째다. 하지만 매일같이 ‘병신새끼’라는 말을 듣고, 그나마 받는 적은 월급도 밀린지 오래다. 그와 그녀의 꿈은 서울에서 이미 얼룩 묻고 구겨진 옷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얼룩을 지우고 잘 다려진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의 지친 몸을 바람에 말리 듯 빨래를 한다.


나영의 주인집 할머니와 옆방 희정엄마도 빨래를 한다. 주인집 할머니에게 장애인 딸의 똥 기저귀 빨래는 ‘딸이 살아있다’는 소중한 증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늙어가는 노모는 그래도 딸보다 먼저 죽을 날을 상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40년 동안 해온 딸의 기저귀 빨래는 그녀에게 슬픔을 잊을 수 있는 ‘희망’이 된다. 희정엄마 또한 홀로 사는 과부지만 동거남 구씨의 빨래를 하면서 세상 모든 시련을 이겨낸다. 겉으로는 푼수끼 넘치는 그녀지만 외로운 마음에 나오는 한탄은 빨래와 함께 녹여버린다.


뮤지컬 <빨래>에서 ‘빨러는 모든 이가 내일을 살아가는 희망이다. 솔롱고 집으로 날아간 나영의 빨래는 사랑의 희망이며 주인집 할머니의 똥 기저귀 빨래는 어머니의 희망이다. 슬플 땐 빨래를 하라는 극 중 가사처럼 등장인물들은 시련만 주는 서울 하늘 아래 빨래를 하면서 눈물로 젖은 마음을 함께 말린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출가 추민주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늘 울고 살 수만은 없지 않겠나. 웃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힘을 나타내고 싶었다”라며 뮤지컬 <빨래>의 창작 배경을 말했다.


서울은 점점 없는 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끊임없는 개발로 도시는 점점 아름다워지지만 소통의 부재가 심각한 도시인들의 삶은 각박할 뿐이다. 그러나 뮤지컬 <빨래>는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말한다.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자고. 나영과 솔롱고가 서로에게 힘이 돼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일자리 때문에 지쳐버린 나영에게 빨래를 하면서 슬픔을 녹이라는 주인집 할머니와 희정 엄마의 응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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