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창조되는 순간, 환상이 시작되는 순간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 환상이 시작되는 순간
  • 박시령 기자
  • 승인 2008.05.06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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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피쉬]연극 (환상동화)

오르골에서 흐를 듯한 신비스러운 음악이 흐르며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세 명의 광대가 등장한다. 이들의 이름은 전쟁, 예술, 그리고 사랑.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듯 이들은 이야기를 창조하는 광대다. 몸서리치도록 끔찍한 파괴로 인간의 파괴본능을 자극하는 전쟁 이야기를 하자는 전쟁광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사랑광대, 그리고 영원불멸의 가치를 창조하는 예술 이야기가 제일이라는 예술 광대. 공연이 시작되는 종이 울리자 드디어 세 광대는 결단을 내린다. 전쟁이 있고, 사랑이 있고, 또 예술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세 광대가 들려주는 전쟁·사랑·예술 이야기 
광대들의 이야기 속 남자 주인공 한스는 독일의 어느 마을에 사는 청년으로 피아노를 사랑하며 위대한 음악가를 꿈꾼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악몽 같은 현실은 결국 한스를 전장으로 내몰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던 그의 두 손엔 파괴를 가져올 총이 들려진다. 전쟁터의 한스는 적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적군이 겨눈 총에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게 된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암흑만이 존재하는 전쟁터에서 정신을 차린 한스는 적군과 맞닥뜨리게 된다. 암흑 속에서 외로웠던 두 남자는 총을 거두고 적군은 자신이 살던 마을의 카페를 떠올려 보자고 제안한다. 카페에서는 매일같이 예술가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피아노 소리에 맞춰 적군의 아름다운 여동생 마리가 춤을 춘다. 그렇게 둘은 시와 음악, 그리고 따뜻한 차와 춤이 있는 환상적인 카페를 떠올리며 전쟁의 참혹함을 잊는다.

그러나 다시 전쟁의 불길이 드리우고, 새벽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포성소리는 두 남자의 발길을 갈라놓는다. 전쟁은 적군의 옛 동네에서도 일어났고,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던 마리는 폭격의 피해로 지금껏 보지 못한 새하얀 세상을 본 뒤 영원한 암흑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스 역시 공습으로 지금껏 듣지 못한 거대한 소리를 듣고는 영원한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 연극<환상동화> 사진제공=이다엔터테인먼트
환상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환상이 되고
하지만 파괴가 창조의 위대함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전쟁의 공습이 멈추자 카페는 닫혔던 문을 활짝 열고 예술을 즐기는 예술가들은 다시 하나 둘 카페로 모여든다. 한스 역시 마리 오빠의 편지를 들고 마리를 찾아 카페에 오게 된다. 이렇게 마리와 한스는 만났고, 친절이 친근함으로 친근함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애틋함으로 애틋함이 절실함으로 변하는 사랑의 묘약을 천천히 나눠 마셨다. 사랑광대의 아름다운 사랑의 마법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전쟁광대가 아니다. 평화로움과 기쁨이 존재하던 카페와 도시엔 폭격의 굉음이 다시 들려온다. 한스는 떠났고, 슬픔에 잠긴 마리의 등 뒤로 다시 돌아온 한스의 모습이 보일 때 쯤 관객들은 행복한 결말을 슬그머니 기대해 본다. 다만 이야기의 결말은 관객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여전히 창 밖에서는 전쟁이 계속되었고, 사랑도 예술도 계속되었다. 달콤한 꿈같은 환상은 계속되었고, 악몽 같은 현실도 계속되었다. 

전쟁 같은 현실 속, 사랑과 예술을 찾아
세 광대는 이야기꾼이 되기도 하고 직접 카페의 지배인과 점원, 예술가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래와 음악, 춤, 마임, 그리고 영상으로 꽉 찬 무대는 속도감 있게 관객을 전쟁터로, 사랑이 가득한 한적한 마을의 카페로 이끈다.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공주와 용과 마법사가 나오는 ‘환상동화’ 장면은 세 광대의 혼신의 연기가 더해지며 관객을 판타지의 신세계로 안내한다. 이렇게 전쟁, 예술, 사랑광대가 들려주는 현실과 환상, 그리고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숨 쉴 틈 없이 분주하게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사라진다. 현실과 환상의 마법 같은 교차는 진지한 듯 유쾌한 듯 계속된다. 게다가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긴 호흡의 대사를 막힘없이 풀어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연극 환상동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 연극<환상동화> 사진제공=이다엔터테인먼트
우리의 현실은 비록 전쟁 같지만 그 속에서도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예술과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임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연출가는 말한다. 김동연 연출가는 “극을 통해 관객이 자신이 깊이 생각해 볼만 한 부분을 찾았으면 한다. 열려 있는 결말 속에서 긍정을 찾고 사랑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전쟁 같은 인생의 결말을 찾아 헤매는 젊음이라면 세 광대의 아름답고 진중한 마법에 빠져 사랑과 예술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연극<환상동화> ~6월 29일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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