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여,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대학생들이여,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 승인 2008.05.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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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노동문제 이해 수준

방송사에 신입사원 교육을 하러 갔다.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 PD, 기자 등으로 취업한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명문대학교 출신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들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져 본 적이 없는 신입사원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들 속에서 자신들이 곧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제도권 교육과 언론이 젊은이들의 의식을 그렇게 조율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오해를 한 가지만 풀어보자. 우리나라에 공무원노조가 처음 만들어질 무렵, EBS의 공무원노조 관련 프로그램에 나온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다니엘 르 가르가송 부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원한다면 노조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부대사도 노조에 가입한다. 심지어 장관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국가권력에 고용된 피고용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판사노조와 변호사노조도 있다.

작년 말, 한국을 방문했던 핀란드 교장협의회 ‘피터 존슨’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핀란드에서는 대부분의 교장들이 교원노조에 가입해 있다. 나도 그렇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교장도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뜻이다. 영국에는 교사노조(NUT)와 교장노조(NAHT)가 아예 따로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박사학위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노동조합이 우리나라에 벌써 수십 개나 된다. 노동조합원들이 모두 TOEIC 점수 900점 이상인 IT기업 노동조합도 있다. 한 은행에는 지점장노조가 설립돼 지점장급 조합원들이 수백 명 가입해 있다. 대학생들이 앞으로 방송사에 취업해 아나운서, PD, 기자가 되거나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취업하거나 탤런트가 된다고 해도 노동조합과 무관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누가 한국의 대학생들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었을까?

우리나라는 노동자ㆍ노동조합ㆍ노동운동 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수십 년 세월 동안 국민들에게 주입시켜온 사회이다. 문제는 그 잘못된 시스템 ‘대한민국’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그 잘못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제도권 노동교육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는 제도권 교육의 정규 수업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노동문제에 대해 가르친다. 독일에서는 사회과 교과서에서 “노사관계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학생들이 장차 대부분 노동자가 되거나 최소한 노동자 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독일의 한 중등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340쪽의 분량 중에 93쪽을 노동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청소년 실업에 관한 내용만 29쪽이나 되는 교과서도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사실들”을 주제로 다룬다. 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서, 노동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등이 교과서에 수록된다.

초등학교에서는 ‘모의노사교섭’이 일상화된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학생들이 스스로 경영자 대표들을 뽑고 노동조합 대표들을 뽑아 임금협상을 해보기도 한다. 적정한 임금인상률에 대한 고민과 그 협상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을 초등학교에서부터 경험하는 것이다.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모의노사교섭을 모두 6회에 걸쳐 진행하도록 편성하고 있다. 독일 한 나라만 예로 들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마찬가지이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바른 이해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직장인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조합 활동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검증됐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이기적 유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노동조합의 공익적 기능과 반드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목표가 “일자리를 지키겠다”거나 “보람있는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해도 그러한 노력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고 경제구조를 튼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하물며 노동조합이 사회 개혁을 위한 공익적 목표들을 함께 추구할 때에는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방송노조의 활동이 공정방송의 토대가 되고 병원노조의 활동이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사회의 불평등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활동-임금 인상 투쟁이나 파업을 사회적 범죄행위처럼 보는 자신의 시각에 의문을 품어 보자. 대학생들 대부분은 곧 노동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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