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절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진실’
희망과 절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진실’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8.05.20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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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순교자> ~ 6.1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진실은 고귀한 가치이다. 고귀한 만큼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도 그러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그 당시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1964년 재미교포 김은국 작가는 소설 <순교자>를 통해 ‘타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진실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다시 2008년 연극 <순교자>가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12명의 죽음과 2명의 생존
6·25 발발 이전에 서울에서 대학 강사를 지낸 이 대위는 전쟁 중 육군특무대로 평양에 파견되어, 육군본부 파견대 정보국장 장 대령의 휘하에서 근무한다. 이 대위는 장 대령의 지시로 6·25 발발 당시 공산당에게 감금당한 14명의 목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알려진 사실은 당시 감금된 14명의 목사 중, 12명은 처형당했지만 2명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목사는 신 목사와 한 목사. 하지만 한 목사는 당시의 충격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 한편 장 대령은 처형당한 12명을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전쟁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고 서양 연합군을 만족스럽게 할 목적 때문이다. 그렇게 12명의 ‘순교자’를 위한 추모예배는 대대적인 준비과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생존자인 신 목사는 도무지 당시 상황을 선뜻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신문광고를 통해 12명의 죽음을 선전효과로만 이용하려는 장 대령 때문에 일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신 목사의 묵묵부답으로 이 대위는 석연찮은 부분을 곳곳에서 감지하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되었을지 모른다고 짐작하게 된다. 이때 마침, 12명의 목사를 처형한 북한 공산당의 정 소좌가 체포되고 정 소좌의 발언을 통해 왜곡되었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 이는 합동 추모예배를 눈앞에 둔 상황과 맞물려 극은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신 목사의 묵묵부답은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진실보다는 희망이 필요할 것이라는 그의 ‘새로운 신앙’ 때문이었다. 자신의 진실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 목사의 ‘새로운 신앙’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희망이 곧 환상이 되는 전쟁 상황에서 ‘진실’은 그저 묻혀야 하는 것일까? 죽어간 12명의 목사, 그들은 정말 ‘순교자’였을까?

환상, 그 뒤의 뼈아픈 진실
연극 <순교자>의 예술감독 신일수 서울시극단 단장은 “연극 <순교자>는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깊고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연극이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연극 <순교자>는 철학적 또는 종교적으로 해석했을 때 그 의미가 너무나 무거워 진다. 소설이 발표된 1960년 당시 몇몇 보수 기독교인들이 소설의 내용이 불경스럽다며 비판을 가한 경우만 보더라도 해석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신 단장의 말처럼 단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훨씬 잘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는 상황은 아주 좋은 예이다. ‘값싸고 맛 좋은 쇠고기 수입’이라는 환상. 그 뒤에는 ‘불안정하고 불안전한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뼈아픈 진실이 있는 것처럼.


이미 피폐해진 난민들에게 밝힐 수 없는 진실이었기에 되려 희망을 위해 진실을 숨긴 신 목사는 결국 괴로움에 몸서리친다. 그런 그를 보며 이 대위는 과연 인간에게 진실로 얻게 되는 절망과 거짓으로 얻게 되는 희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진실’에 안타까워할 뿐이다. 관객은 굳이 철학적 고뇌와 종교적 갈등 없이도 충분히 극의 흐름과 함께 할 수 있다.


한국작가 최초로 1969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김은국 작가의 고뇌를 약 30년만에 공유할 수 있는 자리이다. 특히 한국 신연극 100주년 기념 및 세종문화회관 개관 30주년 기념작이라는 데도 의미가 깊다. 로맨틱 코미디풍의 연극과 뮤지컬이 넘쳐나는 요즘, 나에게 사색의 시간을 주는 연극은 삶의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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