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나를 만나다] 내일을 딛는 요리사
[세상 속에서 나를 만나다] 내일을 딛는 요리사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8.10.17 0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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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력 딛고 안산공대 교수 김홍열(58)씨


뵙고 싶다는 말에 그는 대뜸 자신의 가게로 초대했다. 저녁 7시. 바쁜 저녁식사 시간 탓에, 짧지 않은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 ‘김홍열 교수’를 관찰했다. 들어오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때로는 악수를 건 내며 자리 안내까지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많던 저녁 손님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나서야 나도 그가 청하는 악수를 받았다. 사람 좋게 웃으면 같이 휘어지는 눈가 주름엔 다정함도, 인생도 함께 묻어난다.

 

선택이 아니었던 길


너도 나도 힘든 시절이었다. 일자리는 없었고 먹을 거라고는 물이나 나무, 풀 따위였다. 그 당시 서울엔 출, 퇴근 개념이 없었다. 도로변에는 전차가 지나다니고 그 옆에는 2층 집들이 나란히 들어서있었다. 그 2층에서는 일꾼들이 자고 먹으며 일을 했다. 단지 먹을 것을 주고 잠을 재워주면 최고였기에 명절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을 선택할 길은 더더욱 없었다. 대부분 물건을 파는 일(벼 해충약)이나 논, 밭을 만드는 일, 나무로 만든 배달통을 들고 배달을 다니는 일들을 했다. “중국집에서 일할 때도 배가 많이 고팠어요. 저녁엔 돼지비계에 잘게 썬 배추를 볶아서 그 곳에 국수를 뽑아 먹고 그랬지요.”


그는 곧 중국집을 거쳐 일식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냉장고가 없던 때라 얼음을 까는 케이스에 큰 얼음을 잘라 넣고 빨리 녹지 말라고 소금을 뿌리고, 가제 수건을 깔고 발을 얹은 후에 생선을 올려놓고 썼다. 물론 쉽지 않았다. 가게가 극장 앞에 위치한 탓에 새벽부터 하루 종일 손님이 들어왔고 토요일엔 일요일 단체 도시락을 위해서 밤새 수 백 개의 일식 도시락을 만들었다.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고 밀려오는 졸음 탓에 집으로 가지 못하고 운전대를 돌리기도 여러차례 였다. 처음부터 자신이 선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돌아설 생각은 없었다.

 

일식이 주는 기쁨


그는 곧 일식이 주는 기쁨을 알았다. 그것은 단지 요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선 일이었다. 하나의 직업인이 되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인생 2막은 시작되었다. 일식은 손님과의 일대일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요리를 할 때도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생각과 배움을 주었다. “그냥 흘러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쉽지는 않잖아요. 모두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잊지 않으려 적어두기도 했지요.”


벌써 30년 전이지만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는 국회 사람들을 많이 대접했는데, 오전식사와 저녁식사를 모두 책임지다보니 회나, 덮밥, 매운탕 등의 요리가 아닌 새로운 요리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당시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만들어 낸 요리가 지금은 우리에게 모두 익숙한 ‘알밥’이다. 해삼 내장과 날치알, 볶은 깨와 하얀 참치살 등을 넣고 만들어냈던 그 요리가 구전이 되어 지금까지 온 것이다. 2006년에는 특허도 받았다.


“저는 한 번에 거창하게는 원하지 않아요.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는 것, 하루에 그래도 알맹이 있는 일을 하나씩은 꼭 하길 원해죠.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그 날 하루 내가 만든 요리로 인해 남의 입을 기쁘게 해주었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져요."

 

나의 학생들에게

 


그가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10분 먼저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하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5분, 아니 1분 만이라도 그렇게 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의 조리과 학생들에게는 그 시간동안 ‘청소’를 하라고 했다. “이미 깨끗하게 되어있는 자리를 정리하는 ‘정리정돈’이 아닌 지저분한 것을 치우는 ‘청소’의 개념이에요. 남이 싫어하는, 남이 피하는 일을 먼저 하는 사람처럼 성공의 길에 먼저 가는 사람은 없지요.” 졸업생들에게 전화도 많이 온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니 진급도 먼저 하게 되었다고.


그 역시 자신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생활한다.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쓰는 물수건은 저녁 내 전부 자신이 삶고 빨아서 낸다. 손님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후회하지 않게 오늘을 열심히 살기 위해서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더 못 챙겨줘 아쉽다는 듯 재차 다시 찾아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커다란 파일 하나를 주었다. 이것저것 건강정보, 음식정보, 생활 속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파일이었다. 그리고는 “잘 읽어보고 필요한 학생들 복사해서 나눠줘요”라며 돌아서는 길에 계속 손을 흔들어주었다. 싸늘했던 가을 밤, 손끝까지 따뜻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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