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그 후, 아직 못 다한 이야기
1000일 그 후, 아직 못 다한 이야기
  • 이봄애 기자
  • 승인 2009.01.08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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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일 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만 목숨을 걸고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륭전자 노조의 파업이 지난 5월 20일을 기점으로 1000일을 맞았다. 그 누구도 이 일이 이렇게 오랫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할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에 대해서 묵인하는 동안 그들이 받는 고통은 늘어갔고, 마침내 덮어두었던 상처가 곪아 터져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곪아 온 상처는 쉽게 낫지 않고 아직도 많은 이들을 괴롭힌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륭전자 파업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투쟁의 역사


 2005년 당시 기륭전자 생산라인에는 300여명의 근로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중 비정규직 인구는 총 290명이었다. 2005년 12월 한 달에만 60여명이 해고될 정도로 고용 불안은 심각했다. 3개월은 보통이고 6개월 계약이 다반사였다. 매일 기계처럼 일만 했다는 이들은 해고 위협 없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2005년 7월 5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조 결성 후 내려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하지만 회사 측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대신 계약해지를 선택했고, 단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끝냈다.


 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당시 생산직 205명 중 180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현재 오랜 투쟁 끝에 남아있는 노조원은 31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노조원은 9명 뿐 이라고 한다. 주로 여성 노동자였던 이들은 생계를 위해 또 다른 파견직이 되어 기륭전자를 떠났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기륭전자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다. 기륭전자가 위치한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90% 이상이 파견직 노동자들이라고 노조원들은 설명했다. 결국 이것은 기륭전자만의 문제가 아닌 곧 사회로 나아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그들만의 문제인가


 12월 1일 저녁 6시경, 기륭전자 파업현장을 찾았다. 지난 달 19일 기륭전자 본사는 신대방동에 새둥지를 틀었다. 일부 언론은 ‘기륭전자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 한다’고 말했지만 과연 이것이 새로운 도약이 될 수 있을까. 불이 꺼진 건물 앞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2개 그리고 투쟁의 문구가 써진 현수막들. 이곳이 3년이 넘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을 대표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투쟁을 한 장소이다. 94일에 걸친 단식투쟁, 18m 조명탑위의 고공농성 등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죽음’을 빼놓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든 것일까.


 추운 날씨에 냉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컨테이너 안에는 컵라면 박스, 북, 현수막들 그리고 ‘기륭전자분회 주점’이라고 써진 표가 보였다. 남아있던 주연테크 분회 분회장 곽은주(34) 노조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표를 가리키며 파업자금 모금을 위한 것이냐고 물어보자 그녀가 “아니요. 법률비와 구속자 후원비, 그리고 벌금을 모금하기 위한 것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지난 10월 21일 오후 경찰특공대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을 강제 진압했다.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력이 사용되었으며 부상자와 구속자가 속속들이 생겨났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과연 우리사회가 발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승리를 위하여, 모두를 위하여


 지난 2일 오후 4시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기륭전자 노동조합과 일명 ‘노동동지’들이 함께한 집회가 열렸다. 신사옥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경찰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한 것도 잠시, 집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롭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노조원들이 한 명 씩 나와, 투쟁을 꼭 성공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악덕 고용주 배영훈은 물러가라!”, “우리는 우리만이 아닌 다른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노동동지 여러분, 굴하지 맙시다” 한 명 한 명의 말이 끝날 때 마다 그들은 박수로 서로를 위로했다. 발언이 끝나고 그들은 투쟁의 노래를 불렀다. 자신을 민중가수라고 소개한 한 남자는 민들레처럼, 불나비 등의 노래를 불렀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은 서로를 향해 부르는 노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사옥을 바라보고 힘차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집회는 마무리됐다. 집회 장소를 정리하는 도중에 잠시 짬을 내어 유흥희 노조원과 간단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너무 길어진 투쟁이 힘들지는 않은지,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것인지를 묻자 웃는 얼굴로 다정히 말을 이어나가던 그녀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면 그 긴 시간동안 이렇게까지 하겠어요”라며 “의지와 분노로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이 땅의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날까지요”라며 자신과 ‘노동동지’들의 굳은 의지를 전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노조원들과 차를 타고 신사옥 앞 골목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라면상자를 시멘트바닥에 깔고 앉아 소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던 노조원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우리는 그들의 의지를 믿는다는 핑계 하에 이렇게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괜찮은 것일까. 또 그들은 정말 의지만으로 긴 투쟁의 시간에서도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그 날 까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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