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미술관] 렘브란트의 <선술집의 방탕아>
[그녀의 미술관] 렘브란트의 <선술집의 방탕아>
  • 박희숙
  • 승인 2009.01.0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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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술집의 방탕아> 1635년, 캔버스에 유채, 162X131,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소장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사랑을 화폭에 영원히 담아냈다.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은 생전에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았다. 생의 전반기에는 천재성을 인정받아 화가로서 부와 명성을 가졌지만, 삶의 후반부에서는 사회에서 비난 받는 화가로서 빵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의 고통에 시달렸다. 렘브란트의 극적인 인생의 중심에는 아내 ‘사스키아’가 있다. 그녀가 살았을 때 렘브란트의 인생은 빛으로, 그녀의 죽음으로 그의 후반기 인생은 어두운 시기로 넘어간다.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는 ‘서양미술 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가 진행되고 있는데 전시된 작품 중 렘브란트가 사랑했던 아내와 함께 한 부부 초상화가 눈에 띤다. 그리고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되고 있는 에칭으로 된 부부 초상화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유명한 유화 작품이 <선술집의 방탕아>다.
<선술집의 방탕아>는 렘브란트가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작품으로서 그는 성경에 나오는 방탕아 역할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뛰어난 재능으로 20대에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 사회적 신분이 낮았다. 그런 그는 프리슬란트 시장의 딸 사스키아와 사랑에 빠지는데, 사스키아는 당시 여성들로서는 드물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
사스키아는 결혼하면서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왔고 렘브란트는 결혼과 동시에 사회적 신분이 높아지면서 돈과 사랑과 명예를 확고하게 구축하게 된다. 선술집이 배경이 된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벨벳과 비단으로 된 옷을 입고 사스키아를 무릎에 앉힌 채 술잔을 높이 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공작이 놓여 있는데 네덜란드 도덕적 우의에 따르면 공작은 오만함을 나타내고 높이 든 술잔은 호의호식을 상징한다. 렘브란트가 차고 있는 칼은 당시 그의 신분으로서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칼과 술잔, 공작을 통해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스키아와 함께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념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렘브란트는 사스키아와의 결혼으로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하기 원했다. 그리고 아내의 지참금을 탕진하고 있다는 비난에 맞서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예술성을 고집하면서 초상화 주문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치품 구입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낭비벽 때문에 렘브란트는 말년에 파산 선고를 받는다. 말년에 병약한 사스키아가 죽으면서 재혼하지 않는 조건으로 남긴 유산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박희숙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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