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획] 슈퍼맨 보다 위대한 오지라퍼
[사회기획] 슈퍼맨 보다 위대한 오지라퍼
  • 김현진 에세이스트
  • 승인 2009.03.02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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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곡령처럼 거친세상, 서로의 귀인이 되어주자

 


2008년은 참 무서운 해였다. 서울의 상징 중 하나였던 남대문이 슬프고 흉측한 형체만 넘기고 활활 불타 버리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고 이를 갈면서도 도로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실용주의’을 모토로 하며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동안 국민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에게 반대하며 거리에 나선 사람들에게 이명박과 그의 사람들은 마치 <보노보노>의 너부리처럼 위풍당당했다. 자꾸 그러면 때릴 거야, 때릴 거야, 때릴 거야.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실제로 때리고 밟았으며 붙잡아서 몇 백만 원씩 벌금을 먹여 기까지 완전히 죽여 놓고 주머니에도 타격을 입혔다. 때리고 돈 뺏고 안 듣고, 이게 바로 MB 스타일의 실용이다. 어떻게 보면 참 효율적인 방식이다. 단,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가 조폭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게 유일한 문제지만.

 

힘드냐? 참아라.

광우병 정국에 MB가 발표한 국민 담화의 내용은 참으로 한결같았다.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야, 돈 있으면 한우 먹으면 되잖아. 없으면 미국산 먹든가. 근데 어째, 있는 놈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4년 동안 투쟁하고 있는 기륭전자 해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 회사 이사는 마이크를 들고 외쳤다. 일을 하고 싶으면 취직을 하세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다음과 같았던 것이다. 누가 니네보고 돈 없으라고 했냐? 했냐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무력한 촛불을 든 채 MB의 대통령 선거 출마 당시의 구호를 끔찍하게 회상했다. 아, 그 말이 실은 이런 뜻이었구나. 국민 여러분, (억울하면) 성공하세요.

 

한 여름 밤의 꿈처럼?

▲ 촛불집회 모습 <출처=미디어오늘>
촛불시위가 잠잠해졌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과 ‘전문시위꾼’을 구분하여 가르려 혈안이 되었던 정부는 당당하게 작년의 가장 큰 성과로 그것을 꼽을 정도다. 그들이 당당하게 기뻐할수록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초라하게 기가 죽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쌀쌀맞게 쿨해진다. 촛불 켜면 뭐해, 아무 소용도 없는걸. 그거 해 봤자 뭐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 하면 뭐해?

물론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거리는 참으로 답답하고 슬픈 곳이었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촛불은 쉽사리 꺼졌고, 하나 둘씩 촛불 든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서울 중심부의 거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전히 버스와 자동차와 매연으로 가득하다. 불과 반 년 정도 전의 일이지만,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촛불시위는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나와 봤으니까. 당해 봤으니까. 적어도 여기 나올 수 있다는 건 아니까.

 

오지라퍼가 필요해

그토록 가냘픈 촛불을 켜면서, 우리는 슈퍼맨이라도 나타나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

었다. 그러나 결코 슈퍼맨은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아무 소용도 없는데 뭐해, 하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정말로 아무 소용 없어진다는 것. 달라지는 것도 하나도 없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게 된다는 것. 다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지라퍼 뿐이다. 모든 고통이 죄다 내 일인 듯 끼어드는 그런 오지라퍼가 절실히 필요한 세상이다. 나에게 좀더 이득이 오지 않을까, 요거 고개 디밀어서 엿들으면 좀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얄밉게 제 생각만 죽어라 하는 그런 오지라퍼 말고, 내가 다치고 내가 좀 손해 입는다 하더라도 내 이웃의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겠다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그런 오지라퍼, 그래서 나중에 또 다른 이웃의 오지랖을 돌려받을 수 있는 이런 오지라퍼, 그런 진실한 오지라퍼가 너무나도 필요한 세상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어머니는 동란 때 아들을 군에 보낸 후 그 날 먹을 멀건 죽도 없이 어렵게 살 적에 지나가는 사람이 끼니를 청하면 거절하는 법 없이 먹여 주었다고 한다. 당시 갓 스무 살 처녀의 왕성한 식욕도 배를 움켜쥐고 붙들어야 했던 선생이 어머니를 탓하자 선생의 어머니는 당장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내가 남에게 귀인 노릇 해 주지 않고 어찌 내 아들이 귀인 만나기를 바란단 말이냐. ” 이미 선생의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하신지 오래겠지만 이 낡아 보이는 말 속에는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진실이 숨어 있다. 당장 내 먹고 살 일이 급해 보일수록, 나 혼자 살기에도 벅차 보일수록, 세상이라는 곳이 험곡준령처럼 거칠어 보일수록 부디 부디 서로에게 귀인이 되어 주자.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로 젊은 인생의 결론을 내기 싫은 젊은 당신이라면, 어차피 당신도 대한민국 1%가 아니라면, 그것만이 이 망할 놈의 세상을 유일하게 돌파할 우리 88만원 세대들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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