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 활성화의 주체는 극작가다
창작극 활성화의 주체는 극작가다
  • 김미희(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 승인 2009.03.0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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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연우무대 공연장면 (출처 = 연합뉴스)

 

  식민지 경험을 지닌 국가의 진정한 문화적 독립은 연극의 경우, 무엇보다 자국의 언어로 쓰여진 창작극의 활성화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일찍이 미국 연극이 유럽, 특히 영국의 식민성을 탈피할 수 있었던 것도 1905년 조지 피어스 베이커가 하버드대에서 시작한 창작실습 과목 ‘드라마 워크숍 47’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국의 경우 베이커의 극작워크숍과 유사한 것으로 1965년 시작된 드라마센터의 극작워크숍을 들 수 있다. 신춘문예 작가들을 재교육하려는 취지로 시작된 이 워크숍은 연극평론가 여석기? 한상철, 극작가 박조열 등이 주도하며 오태석 이강백 윤대성 노경식 조광화 김윤미 등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배출, 현대 극작가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창작극의 양적 팽창 오히려 위기초래

  오늘날 신진 작가의 발굴작업과 창작극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은 크게 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춘문예작가전’과 신진작가에 대한 지원과 교육을 실시하는 ‘아르코영아트프론티어,’ 그리고 연극원과 연출가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신작희곡페스티벌’ 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예술표현활동지원’과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도 창작연극을 지원? 육성하려는 서울시의 프로젝트로 주목된다. 극작가의 창작행위 뿐 아니라 희곡의 무대화 작업을 지원하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장기적인 ‘창작희곡 활성화 지원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작가와 튜터가 1년 3개월간 논의해 완성한 희곡을 연출가가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다. 한편 창작극 공연이 일종의 탈식민주의적 작업으로 인식되면서 연극계는 창작극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한동안 국내의 권위 있는 연극상 후보에서 번역극을 아예 배제하기도 했다.

  창작극에 대한 지원이 양적으로 확대되고, 100개가 넘는 대학로의 소극장들이 연중 창작극을 공연하고 있음에도 수준 높은 창작극은 그리 많지 않다. 평론가들은 여전히 창작극의 빈곤과 질적 문제를 지적한다. 창작극의 빈곤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입센이나 체홉 같은 사실주의 작가들이 문학성 강한 희곡으로 새로운 연극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아래 한국연극의 패러다임은 서사성이 약화된 이미지 중심의 ‘연출가 연극’으로 전환됐다. 자연히 무대표현과 스펙터클이 강조됐고 서사보다는 연극성에 기대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1990년대 탈정치화, 탈이념화의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져 우리 연극은 거대서사보다는 소소한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일상극이 주를 이루고 있다. 70, 80년대 동인제 극단들이 보여준 강한 사회성이나 치열함, 진정성 대신 가벼운 일상사와 연애담, 감각적인 이미지의 대중적 상업극이 대학로를 지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추세를 구조화하는 것이 바로 기획자가 주도하는 연극생산시스템이다. 이런 체제는 관객과의 소통을 내세워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고 오락성에 충실한 작가를 양산한다. 이렇게 탄생된 반짝 스타작가들은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아마추어적인 연극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작품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포장은 그를듯하지만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결여된 일상극들이 지금 우리 창작극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 성기웅?이해제 등이 근대에 눈을 돌리기는 했지만 근대성에 대해 본격적인 천착보다는 근대의 풍경을 이루는 하위문화에 대한 관심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어난 창작극의 양적 팽창이 오히려 창작극의 위기를 초래하는 역설도 가능하다. 창작극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인가.

언어는 연극의 뿌리이자 인문학적 사유의 열쇠

  무엇보다 제도적인 지원책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 연희단거리패의 김지훈, 극단 미추의 배삼식의 경우에서 보듯 특정 극단과 지속적인 작업을 벌이는 상임작가제도 또는 상임드라마터그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당한 보상, 특히 희곡의 저작권 보호가 시급하다. 그러나  외적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동시대성에 대한 투철한 작가의식과 이를 적확한 연극적 문법으로 담아내려는 미학적 치열함이라 할 수 있다.

  많은 평론가들이 ‘문학성의 귀환’을 고대한다. 한 세기동안 세계연극이, 또한 90년대 이후 한국연극이 경도된 탈희곡화는 다름 아닌 탈문학성이었다. 디지털 시대, 연극의 활로는 연극 본연의 ‘아날로그성’을 강화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최근 세계 연극이 다시 언어를 중시하기 시작한 것도 언어가  연극의 뿌리이고 인문학적 사유의 열쇠임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삶의 깊이와 총체성을 포착할 수 있는 폭넓은 고전의 배경과 인문학적 교양을 갖춰야한다. 창작극 활성화의 주체는 극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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