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창작촌, 개발주의에 맞서는 또 다른 상상력
문래동 창작촌, 개발주의에 맞서는 또 다른 상상력
  •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
  • 승인 2009.07.06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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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참사와 문래동 창작촌 그리고 개발주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용산 재개발 지구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평범했던 어느 날 아침,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 특공대원이 공권력의 작전 수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어떠한 반성도 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용역 깡패와 굴착기를 앞세워 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삶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용산 참사는 우리가 건설 자본을 위한, 아파트 공화국을 위한 개발주의가 노골적으로 우리의 삶과 생명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와 더불어 문래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문래동이 뜨고 있는 것이다. 쇠락해가는 도심 내 철공소 단지로, 낙후된 서울의 미개발 지역으로, 언젠가 아파트 단지로 뒤바뀔 그저 그런 공간으로 이해되었던 문래동…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문래동으로 향하더니, 지금은 예술가 작업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서울시가 문래동과 관련하여 ‘아트 팩토리(Art Factory)’ 사업을 추진하며 문래동 창작촌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문래동을 둘러 싼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개발주의의 한 복판에서 진행되는, 개발주의를 비틀고 개발주의의 너머를 상상하는 또 다른 실험이라는 사실이다. 용산 참사와 문래동의 실험은 그래서 결코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멋있는 단어로서의 ‘아트 팩토리’가 아닌 삶의 현장이자 예술 현장으로서 아트 팩토리는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심지어 아트 팩토리라는 이름에 아직 익숙해지기도 전에 사업은 이미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문래동 아트 팩토리 사업이 또 다른 개발주의 사업이라면 이 사업은 지금 중단돼야 한다. 문래동 아트 팩토리 사업이 돈을 벌기 위한 거대한 문화 장사꾼의 유통 경로, 그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도구, 상술, 상품으로서 예술이라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하다.


서울시의 개발주의가 문래동 창작촌의 가장 큰 위험요소
 문래동 창작촌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는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 도시개발계획, 지구단위 개발계획 등이다. 서울시는 문화행정으로, 문화도시라는 이름으로 아트 팩토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서울시의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개발 정책과 행정은 어떠한 변화도 없다. 문래동 창작촌을 둘러 싼 서울시의 이중성은 결국 이 지점에서 언젠가 충돌하고 폭발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서울시가 장기적인 도시계획의 맥락에서 아트 팩토리를 배치하고, 자율적 예술 창작 밀집 공간인 문래동에 대한 적극적이고 제도적인 보호 장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문래동 아트 팩토리는 언제든지 도시개발과 부동산 시장이라는 태풍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한편 서울시는 문래동 아트 팩토리 사업을 “유휴시설의 문화적 활용”, “문화적 창의성에 기반한 도시재생” 등과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게이츠헤드의 발틱 미술관과 세이지 음악당, 칼스루헤의 ZKM, 북경의 다산쯔 798… 이러한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 유휴시설의 문화적 활용, 문화적 도시재생 등은 이미 한국의 문화정책에서 중요한 트랜드가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문래동은 매우 매력적인 공간임에 분명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심내에 쇠락하고 있는 철공소 밀집 단지에 대한 문화적 리모델링, 그리고 이미 자발적으로 형성되어 상당한 밀도를 가지게 된 예술가 작업실과 예술가 네트워크. 서울시가 이러한 경향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예술 지원정책으로 아트 팩토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경관의 정치가 아닌 삶의 재생 과정으로서 도시재생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재생은 도시를 재생하자는 것, 다시 말해 도시를 둘러 싼 우리의 삶을 재생하는 것이지 문화예술을 도구적으로 활용해서 환경미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시 환경, 경관, 노동, 여가, 소통, 미래 등 삶을 둘러 싼 의미와 질감을 재생하자는 것, 좀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는 것이 도시재생이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문화예술과 적극적으로 매개된다. 환경미화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라 문화예술은 본질적으로 그 사회적 정체성과 의미의 차원에서 도시재생과 만나게 된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하는 도시재생은 태생적으로 경제, 개발, 생산력주의가 가져 온 현대 도시의 파괴와 폭력의 역사에 대한 반작용이자 재구성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래동 창작촌은 철공소 밀집 공간, 이와 절합된 예술 창작 공간 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유휴시설과 공간에 예술 작가들을 입주시키는 외삽과 이주의 정책이 아니라, 철강소와 지역공간 자체를, 문래동 예술가와 주민의 삶 자체를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문래동 창작촌을 둘러 싼 정책의 모든 기획과 시스템은 이를 위해 최적화될 수 있도록 상상력을 증폭시켜야 한다.


그 곳에는 예술가가 산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래동 아트 팩토리 사업의 준비 과정 전반에 대한 지역 주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문래동 거주 예술가는 물론이고 다양한 지역 주체들의 소통, 토론, 상상력 등이 축적되고 또 축적됐을 때 문화적 도시재생은 가능해진다. 아니 그 과정 자체가 바로 ‘도시재생 과정’이다.
 서울시가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참여 행정이 형식적 자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연결돼야 문래동 아트 팩토리는 가능하다. 현장에 대한 의견수렴이 아니라 예술창작 밀집 지역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이 커뮤니티의 주체인 예술가와 주민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문래동 아트 팩토리 사업의 실체이자 문래동 도시재생의 목적이다. 문래동 아트 팩토리는 문래동에 위치한 창작 공간, 지원시설이 아니라 문래동의 예술과 삶을 둘러 싼 하나의 시스템이자 공학이어야 한다. “문래동에는 예술가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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