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계의 해리포터를 만나다
번역계의 해리포터를 만나다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9.07.0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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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가 최인자 씨
 영화 <러브레터>를 본 사람이라면 ‘차마 이 편지는 가슴이 아파 보내지 못하겠습니다’라는 여주인공의 명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그 대사의 원문이 사실 ‘이 편지는 쑥스러워서 보내지 못하겠습니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한 편의 영화 혹은 한 작품을 좌우하는 번역가의 힘! 해리포터 시리즈의 번역가로 익숙한 최인자 씨를 만나보았다.    

▲ 번역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에 당선되면서, 시인활동과 출판사 <문학세계사>를 운영을 같이하는 사장님과 문단선배로 인연이 닿아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출판기획 일을 맡으며, 처음 출간을 기획했던 작품이 토니모리슨이 지은 <Jazz>였는데, 작품이 어렵고 지은이가 유명하지 않아 번역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지요. 그 때 사장님께서 제가 영문과를 졸업했으니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처음엔 얼떨결에 번역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번역을 하고 난 이듬해에 토니모리슨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거예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책 관련 일을 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들어서게 된 번역가가 직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 더구나 지금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넘게 하고 있네요. 

▲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번역가가 작품을 골라서 번역을 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번역가가 작품을 선정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저도 10년차에 들어선 요즘에서야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출판사에 이야기하지만,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의뢰를 하는 일이면 뭐든 했었죠. 책 번역 기한도 굉장히 짧게 주고 번역료 책정도 출판사마다 모두 달라서 현실적인 부분에서 힘든 점이 많아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번역가들의 경우에는 번역 작업을 끝내고도 출판사 사정에 따라 출간이 안 되면 번역료를 전혀 못 받기도 하고요.

▲ 외국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데도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제일 어려운 것은 말로 계급을 표현하는 거예요. 영어는 말을 통해서 출신 신분이 확실히 드러나죠. 특히 고전 작품 같은 경우는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요. 최근 번역을 맡았던 작품 중에 ‘기쁨의 집’이라는 책이 있는데 20세기 초반 유럽 사교계가 배경이었어요. 사교인사들이 에둘러 말하는 고급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걸 우리말로 고쳐 쓰려니 말이 길어지기만 하지, 그 느낌이 잘 살지 않더라고요. 반면 하류층 언어의 경우 사교계층에 비해 낮은 느낌을 주어야 하는데 또 그런 느낌을 살리는 어투를 찾기가 힘들어요. 몇몇 번역가들이 하류층 언어를 사투리로 번역해 버리곤 하는데, 사실 사투리가 하층 언어는 아니잖아요. 번역 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고 싶어요.

▲ 이제까지 번역한 작품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출판사 <뿔>에서 나온 <지혜의 일곱 기둥>시리즈요. 작품자체도 훌륭하고 번역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애착이 많이 가요.
▲ 번역할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또, 앞으로 번역 작업을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시다면.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책에 담겨있는 정보들을 모두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어학 수준만 가지고는 시작할 수는 없어요. 이제껏 내가 배워온, 공부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해야 하죠. 그래서 우선 내가 번역을 잘 할 수 있는가,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인가를 먼저 생각해요. 앞으로는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은 분야지만 모더니즘 시대의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번역하고 싶어요.

▲ 번역작업을 할 때 자신만의 원칙,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번역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어요. ‘원어를 충실하게 살리느냐’ 아니면 ‘원문을 조금 훼손하더라도 한국어에 맞춰 번역을 하는가’로요. 저는 후자에 비중을 두고 작업을 해요. 물론 외국 작품을 마치 한국작품인 것처럼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고, 그 입장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청소년기부터 학생들이 꾸준히 번역된 외국 유명작품들을 읽으며 성장하는데, 우리말을 훼손하면서까지 원문을 살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우선이죠. 번역 작품을 통해 번역투에 익숙해져 학생들이 번역투를 글에 고스란히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고요. 한국어를 정확히 사용하면서도 작품을 살리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요.

▲ 번역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혼자서라도 책 한 권은 꼭 번역을 해보길 바라요. 한, 두 문장이나 페이지 정도 말고요. 그 과정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꼈다면 이 일을 계속 해도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한 권의 책도 마무리 되지 않았는데 질려서 손을 놓았다면 가차 없이 ‘땡’이예요. 영어실력도 중요하지만 끈기야말로 번역가의 1등 조건이거든요. 번역학원은 웬만하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 해보면서 한국어의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죠.
좋은 출판사를 만나 첫 출간을 하게 된다면 시작하는 학생에게 매우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지명도 있는 출판사에서는 새로운 번역가를 잘 쓰지 않아요. 검증 안 된 번역가가 번역을 맡아 문제가 생길 경우를 출판사는 항시 생각하니 모험을 하지 않죠. 그래서 주로 영세한 출판사의 것을 많이 맡게 되는데 아마 번역료나 출판에 문제가 많을 거예요. 번역 분야가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번역 일을 꿈꾼다면 ‘출간’ 자체가 자신의 발판이 되니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해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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