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의 전주를 뒤흔들다
영화, 봄날의 전주를 뒤흔들다
  • 김민지 기자, 이경라 기자
  • 승인 2009.07.06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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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국제영화제>의 열 번째 봄, 슬로건은 ‘자유, 독립, 소통’. 이렇게 잘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을 본 적이 있는가. 비가 그치고 햇빛이 짱짱했던 지난 3일 영화와 음악, 사람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그 공간으로 발을 들였다.

12시, 영화의 거리, 그 길목에 서다
이른 아침 영화의 거리는 조용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기역자로 구부러진 길목에 줄줄이 들어선 영화관과 루미나리에 기둥에 붙어있는 ‘JIFF(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현수막, 의자 곳곳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영화 속 주인공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자씨, 슈퍼맨, 잊을 수 없는 조커까지.
예매한 영화가 상영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전주영화제작소’로 향했다. 2000년 ‘디지털’이라는 제작방식에 주목하며 시작한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실험영화들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 왔다. 영화제 기간 동안 진행되는 ‘JIFF를 기억하다’라는 10주년 기념전에서는, 지난 9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영화제 기간 동안의 사진이 전시 중이었다. 처음 전주영화제를 찾은 사람이라도 시대별로 전시된 영화제의 영화와 인물들을 통해 한 눈에 전주영화제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한 편에서 전주영화제의 과거모습을 보여준다면 반대편에서는 체험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살짝 전주영화제로 소풍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 사이에 서서 설명을 들어보니 미디어아트 체험전이라고 한다. 영화에 관한 내용을 손으로 넘겨보는 미디어 테이블과 순간 포착된 관람객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고 합성되는 ‘미디어아트 존’은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전 서대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2시, 낯선 스리랑카 <이것은 나의 달>
전주 시네마타운 앞은 분주했다. 2시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 안을 가득 메울지는 몰랐다. 렌즈를 척척 장착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그 혼잡한 골목 한 가운데 삼각 사다리를 세우고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어지러운 사이에도 우렁찬 목소리는 귀에 와 닿는다. ‘영화 상영 5분 전입니다’라는 푯말을 든 지프지기들이다.
당일 여행에서 선택한 영화는 스리랑카 특별전을 통해 상영되는 <이것은 나의 달>로, 2001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감독 아소카 한다가마 씨와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돼 있었기에 일찍이 인터넷을 통해 예매했다. 영화관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도 상기돼 있다. 연령대 천차만별, 직업군도 다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기대감을 안고 앉아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설렘을 주었다.
영화는 타밀 분리주의자와 스리랑카 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국경의 전쟁터에 있는 참호 안으로 타밀 여인이 뛰어드는 데부터 시작된다. 적진으로부터 온 낯선 여인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은 동요한다. 질투, 배신, 욕정들로 뒤엉킨 그 모습들을 통해 영화는 전쟁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생 날것. 그 단어 그대로 가끔 어긋나는 배우들의 연기 느낌만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영화라기보다는 현실 그 자체로 보인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기다렸던 대로 박수소리와 함께 아소카 한다가마 감독이 등장했다. 사실 이 영화는 스리랑카에서는 상업 영화로 개봉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었기 때문에 정부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북부지역에서 타밀군과 정부군의 전쟁이 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남부 사람들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죠. 30년 째 진행된 전쟁에 이제는 본질적 의미조차 없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바로 보았으면 했어요. 반전 캠페인적 의미도 있고요”라는 그의 말에 낯설었던 스리랑카 영화가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5시, 햇볕은 쨍쨍, 무대 위는 반짝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기타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단박에 신난다. 장기하와 얼굴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을 탄생시킨 붕가붕가레코드(독립 음악인이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수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생계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음악 작업’을 의미하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지향하는 독립음반기획사)의 신예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름은 ‘치즈스트레오’ 곡명은 ‘Dance Very Much’, 그들의 소개에 따르면 클럽가의 소녀들을 울면서 춤추게 만든다는 곡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은 일어나 손을 흔들고, 어깨춤을 추며 소리를 지른다. 즐기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그 즐거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야외공연장이 있는 지프스페이스로 이동했다. 7시부터 시작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때문인지 쨍쨍했던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며 적절히 선선해진 바람 때문인지,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는다. 곧 리허설을 위해 ‘스타’ 장기하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본 공연이 시작할 때쯤에는 지프스테이지가 꽉 차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도였으니 그는 정말 스타가 맞다. 이미 관객들이 모두 일어서 장기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 특유의 댄스를 따라 추고 있었지만, 진짜 무대가 확 달아오른 건 미미 시스터즈가 등장했을 때였다. 특유의 도도함을 유지하던 ‘미미 마마님’들은 “다이어트 하셨나 봐요! 날씬해요!”라는 관객의 외침에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앵콜로 ‘늘여보려고 기타솔로까지 넣었지만 그래도 2분 조금 넘는다는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를 부르며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장기하와 얼굴들’은 언제 나타났었냐는 듯 무대를 떠났다. 이미 영화제는 축제다.

8시, 여기는 혼란스러운 도쿄!
야외무대였던 곳이 커다란 스크린으로 변하고 화면 가득 3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도쿄!>의 야외상영이 시작됐다. 미셀 공드리, 레오까락스, 봉준호가 그리는 도쿄의 모습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우며 때로는 무섭고 재밌었다.
미셀 공드리가 연출한 <아키라와 히로코>는 남녀 커플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도시에서 소외되고, 무의미해진 개인의 존재를 상상력을 동원해 보여주었다. 레오까락스는 <광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온갖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광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줬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다소 웃기기까지 한 광인의 재판과정, 그리고 내일을 기약하는 엔딩까지 숨을 확 들이켰다 끝나고서야 조금씩 내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감독인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피자배달원과 히키코모리 남성을 통해 각자 제 공간 안에서의 삶을 유지하는 도시 사람들의 ‘히키코모리 화’를 보여주었다. 배경을 도쿄로 해서 그렇지 전반적인 내용은 어떤 도시에 비추어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현대 사회의 모습과, 인간관계를 반영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지붕 없는 야외상영관에 박수소리가 울렸다.

도시 전체에 찬 밤공기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만큼 반짝이는 루미나리에가 영화의 거리 길목에 다리를 놓듯 불을 밝혔다. 그 틈에서 빠져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새벽 1시 18분 발, 영화의 거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불을 반짝이는 전주역으로 향했다. 기차의 출발과 함께 전주가 멀어진다.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전주국제영화제>의 열 번째 봄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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