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의 ‘리스크’와 복지 동맹
비정규직 노동자의 ‘리스크’와 복지 동맹
  • 황기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09.07.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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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및 생활 조건을 평가하고 사정할 때 있어 적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기업이 스스로의 자산가치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리스크’의 개념이다. 그리고 기업 조직을 ‘유연하게(lean and mena)’하여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삼는 경제 체제라면 노동자의 리스크는 사회 복지 체제를 통하여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직접적인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투쟁 이외에도 광범위한 사회 전체와 연대하여 삶이 보장되는 사회 복지 체제를 얻기 위한 투쟁을 활로로 삼아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주요한 생산 조직의 형태는 ‘법인 기업’이며, 법인화되지 않은 기업이라고 해도 기업 경영의 준거점이 법인 기업 형태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법인(corporation)이라는 기업 형태는 대단히 복잡한 유럽 문명의 역사적 산물이며, 법적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두 개의 정체성이 중첩되어 있음에 착목해야 한다. 첫 번째는 중세 도시의 길드 이래로 내려오는 ‘직능단체(corporation)’라고 하는 일종의 독립적 생산자 공동체의 법적 형식이며, 이는 지금도 유럽 나라들의 전통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두 번째는 법인을 구성하는 모든 인적 물적 요소가 사실상 주주들의 사적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19세기 말 이래 형성된 미국 자본주의의 전통적 관념이다. 넓게 보아 ‘생산적 효율성’을 주로 추구하던 1970년대까지의 주된 기업 형태에서는 노동자도 ‘기업 조직’의 일원으로 여겨서 이들의 복지와 안녕 또한 경영의 주요한 목표로 포함되는 것이 상례였다. 즉, 첫 번째 의미에서의 ‘법인’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80년대를 통과하면서 기업의 목표는 ‘생산적 효율성’이 아닌 현금 흐름의 극대화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라는 새로운 경영 방식이 지배적인 관행이 되면서 생산 조직 내에서의 노동의 위치 또한 크게 변하게 된다. 수익 흐름의 극대화를 위해 최종적인 소비자의 만족이라는 목표를 통하여 기업 작동의 전 과정이 일련의 과정(process)으로 재구성되는 조정 과정에서 노동의 위치는 ‘생산의 효율성을 담지하는 인적 요소’라는 지위에서 기업 과정의 끝없는 재구성 과정에서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결합과 이탈이 자유로와야 할 우연적인 결합 요소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직업과 업무의 안정성과 나아가 노후를 포함한 생활 복지 전반에 대해서 일정한 요구를 할 수 있었던 예전의 노동자들과 달리, 그저 우연적으로 왔다가 사라졌다할 수 있는 우연적 노동자(casual worker)가 중요한 고용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 조직의 생존 방식(modus vivendi)의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은 ‘리스크’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일국적 차원에서의 총수요 관리와 산업 정책의 품에서 생산성의 제고를 주목표로 했던 70년대 이전의 기업과 달리, 80년대 이후의 기업은 대단히 변동의 폭이 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이러한 성격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자본 측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기업의 시장 가치에 있어서는 기대 수익의 크기만큼이나 그러한 수익의 안정성 즉 리스크에 대한 고려가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하기 힘든 세계 시장의 변동에 맞추어 기업 수익 변동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불필요해진’ 비용을 언제든 삭감할 수 있는 체제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소위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것이 80년대 이후의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인프라나 마찬가지가 되어왔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기업의 리스크를 모두 떠안아야 하는 것이 어째서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가? 법적으로 그 리스크의 주된 담지자는 마땅히 ‘주주’이며, 주주가 기업에 대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도 바로 그 때문에 나오게 된다. 그런데 기업의 수익이 악화될 때에 즉시 고용 계약의 시간적 안정성이 불안하게 되는 처지에 서게 되는 것은 노동자이며, 이들을 해고하는 것이 주주들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에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게다가 주주와 노동자가 쓰게 되는 리스크의 질적 차이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주주들은 기업에 있어서 일정한 여유자금을 납입했을 뿐이며, 그 기업이 파산하는 최악의 경우에 있어서도 ‘유한 책임’으로 보호받는다. 반면, 노동자가 해고에서 쓰게 되는 리스크의 성격은 실로 그의 인간으로서의 생존 자체의 위협이다. “노동자는 상품일 뿐이니 굶어죽든 이혼을 당하든 그것은 위대한 시장 메카니즘의 섭리일 뿐이다”는 논리로 이 중차대한 리스크의 사회적 차이를 외면하는 극단적 시장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노동자가 쓰게 되는 리스크의 성격은 결코 묵과하거나 방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아닐 경우에 발생하는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비용은 사실상 계산조차 불가능한 근본적이며 체제적인 리스크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따라서 이렇게 노동의 임의적 우연적 결합을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고 전가하는 최근의 기업 경영 형태가 ‘사회적 이익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할 것이라면, 그렇게 삶의 파탄을 담보로 그 리스크를 고스란히 끌어안게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리스크는 사회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개별 자본가-고용주에게 노동자들의 복지라는 부담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리스크는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하며, 고용자 집단은 이러한 사회 복지 비용의 확충을 위한 조세의 확장에도 마땅히 응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작업장에서의 조직화에 걸린 여러 난점으로 인해 답보 상태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 운동이 눈을 돌려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삶의 불안정의 해소를 해당 개별 고용주에게 모두 요구하는 것보다, 복지 향상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싸우는 여러 다른 사회 세력과 연대하여 노동의 불안정성에 따르는 ‘리스크’의 사회적 집단적 차원에서의 보전을 요구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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