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막걸리 보안법 시대로 회귀하다
인터넷, 막걸리 보안법 시대로 회귀하다
  •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승인 2009.07.06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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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한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라고. 네트워크 인프라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고자 하는 이용자 입장에서,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전방위적으로 규제되고 있다.
  우선, 글을 쓰기 위해서 한국의 이용자들은 본인 확인을 거쳐야만 한다. 2007년부터 시행된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 (개별 사이트가 자율적으로 본인 확인을 할 수는 있다. 문제는 개별 사이트의 특성에 관계없이 정부가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강제적’ 실명제이다) 2008년 11월, MB 정부는 실명제 의무대상 사이트를 37개에서 178개로 확대하였다. 주요 포털, UCC 사이트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용자가 본인 확인을 강제당할 수밖에 없다. 해외 누리꾼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조차 못한다. 주민등록제도라는 강력한 주민 통제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즈니스적 측면을 감안한 것이겠지만, 구글이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한 것은 세계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제도라는 반증이다. 실제로 실명제는 강력한 인터넷 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에 있을 뿐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악플의 감소는커녕 주민등록번호의 도용만 부추길 뿐이다.
  실명제를 감수하고 글을 올린 경우라도, 포털, 방송통신위원회, 경찰과 검찰 등의 위협에 시달린다. 누군가 자신이 올린 글에 의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만 하면, 그 주장이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30일 동안 차단될 수 있다. 최근에는 조선일보의 요청에 의해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글이 차단된 바 있다. 작년 촛불 시위 과정에서도 경찰의 요청에 의해 어청수 경찰청장이나 경찰 폭력을 고발하는 글들이 무수히 차단된 바 있다. 자신의 글을 차단당한 이용자에게 반론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임시조치’ 제도는 정부나 기업 등 권력기관이 시민들의 비판을 통제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라는 ‘검열’ 기구는 자의적으로 삭제나 시정 요구를 남발하고 있다. 2008년 7월, 심의위는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 게시물에 대해 삭제 권고를 내렸다. 심지어 단지 조선일보에 실린 광고주 목록만 올렸을 뿐인데도 삭제되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광고주 목록을 인터넷에 올리고 불매운동을 호소하는 것은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불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 능력도, 자격도 없는 심의위가 인터넷 상의 표현을 난도질하고 있는 현실을 명백히 보여준 것이다.
  지난 해 5월 설립된 심의위가 내린 첫 권고는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올라온 게시글에 대해 ‘언어 순화와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이다. 대통령을 ‘2MB’, ‘간사한 사람’ 등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이유다. 부시를 악마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심의위는 감히 국민들의 국어 선생이 되고자 한다. 최근 심의위는 시멘트 업계의 발전을 위해,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고발한 한 환경운동가의 블로그 글에 대해 삭제 권고를 내린 바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MB의 정책이라기보다는 노무현이 만든 정책이다. 노무현이 닦아놓은 인터넷 통제의 활주로에서 MB가 신나게 비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최근 무죄로 풀려난 ‘미네르바’의 경우에는 MB 정부의 작품이다. 물론 미네르바 구속의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소위 ‘허위사실 유포죄’)은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사실상 오랜 동안 사문화되었던 조항을 MB 정부가 부활시킨 것이다. 미네르바가 봉변을 당한 것은 그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었고, 더구나 유명했기 때문일 뿐이다. 혹자는 그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위 사실에 의해 명예훼손, 사기, 상표권 침해 등 타인의 권리나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국가는 있었도, 오로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하는 국가는 독재 국가밖에 없다. 생각해 보자. 우리들이 하루 동안 표현하는 내용에 과연 (의도했든, 아니든)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 없는 지를. 민주화된 국가에서 ‘허위사실 유포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허위 사실에 대한 처벌이 정부나 정책을 비판하는 표현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쉽기 때문이다.
  MB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인터넷 통제 정책의 하나는 ‘사이버 모욕죄’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악성 댓글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미 형법상에 모욕죄가 있기 때문에, 정말로 모욕을 당했다면 현행 모욕죄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이버 모욕죄는 무엇이 다른가? 바로 당사자가 고소를 할 필요 없이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수사,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주관적인 느낌일 수밖에 없는 ‘모욕’을 제3자인 수사기관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수사기관이 바쁜 일 제쳐두고 보통 사람들이 받는 모욕을 해결해줄까? 당연히 수사기관은 정부관료나 정치인과 같은 권력자들에 대한 모욕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MB는 쥐박이’라고 올렸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사자를 모욕죄로 고소한다면, 오히려 체면만 구기게 될 것이다. 경찰이 알아서 사이버 모욕죄로 처벌해준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해외 대다수의 민주 국가에서는 ‘모욕죄’ 자체가 사문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허위사실 유포죄’와 마찬가지로, 권력자가 자신의 반대세력을 탄압하는데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이버 모욕죄는 인터넷 판 ‘막걸리 보안법’에 다름 아니다.
  당신의 표현의 자유는 안전한가? 직접 표현을 규제당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위축되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면, 이미 표현의 자유는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설사 나의 자유가 제약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비판이 통제되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 역시 내 삶이 안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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