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상환제도’라는 낡아빠진 사다리
‘취업 후 상환제도’라는 낡아빠진 사다리
  • 박연경 기자
  • 승인 2010.03.13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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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움 없는 ‘大學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지난 9일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한 여학생의 글이다. 명문대 진학, 취업경쟁, 유학 및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경쟁의 트랙 속에서, 우리 20대들은 ‘빚’내는 ‘88만원 세대’가 되었다. 이것이 현 대학사회를 향한 그녀의 마지막 일침이었다.

 

학자금 대출, 낡아빠진 사다리
그녀의 용기를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이미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 앞에 무기력한 대학생들’이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매학기 오르는 엄청난 등록금 앞에 좌절하고 무기력해졌으며, 그렇게도 우려하던 ‘1년 등록금 천만 원 시대’는 이미 도래한지 오래다. 수많은 대학생들은 엄청난 대학 등록금의 벽을 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이라는 낡아빠진 사다리를 이용하고 있다.


이전의 일반 학자금 대출 제도 하에 학자금 대출을 받을 경우, 대학생에게는 매월 수십만 원이라는 이자가 따라다녔고,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소득이 없다하더라도 상환기간이 되면 매월 원리금을 상환해야 했다. 학자금대출로 인한 금융 채무 불이행자, 즉 ‘20대 신용불량자’가 매년 증가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취업 후 상환’
지난해, 이 낡아빠진 사다리를 고치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이전의 학자금 대출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를 모르고 있었다던 정부가 대학생들을 위해 크게 선심 쓰고 나선 것이다. 그럴 듯하게 수리도 하고 모양새도 다듬고 예쁘게 포장까지 했다. 바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 이는 학업에 필요한 학자금을 정부로부터 대출받아 재학기간 동안에는 원리금 상환 부담 없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며, 졸업 후 취업 등을 통해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대출금을 상환하는 제도이다.


정부에서는 등록금 마련을 위한 부채 증가 등 경제적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며, 학생들이 스스로 원리금을 상환하기 때문에 자립심이 길러지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고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을 내세웠다. 취업을 하기 전부터 원리금을 상환해야하는 부담은 덜었지만, 새로운 걸림돌이 생겼다. 학자금 대출을 ‘아무나’ 받을 수 없도록 조건이 생긴 것이다. 수혜대상을 규정하는 조건이 다시금 대학생들의 발목을 잡았다. B학점 이상의 성적을 갖추어야만 학자금 대출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리이자와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높은 학자금 대출 금리는 대학생들을 더욱 옥죄어 오고 있다. OECD 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의 등록금 대출 금리는 5.7%로 가장 높았으며, 뒤를 이은 네덜란드와 스웨덴 역시 각각 2.39%와 2.1%로 그 수치는 우리나라의 절반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한국 대학생 연합(이하 한대련)에서는 “현 정부가 제시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원금의 3배까지 갚아야 하는 복리 이자와 5.7%의 높은 이자율 때문에 고액의 등록금으로 고통 받고 있는 대학생들의 부담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며 “정부 보증 대출 중 유일하게 적용되는 복리와 높은 이자율 때문에 졸업 후 수입이 적은 학생일수록 상환기간이 길어지고, 상환금액도 늘어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대련에서는 한나라당 앞 릴레이 단식 투쟁 및 1인 시위 등을 통해, 취업 후 상환제 전면 수정과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모순점 투성이 ICL, 예정된 대학생들의 외면
실제로, 지난 11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 5일까지 이뤄진 학자금 대출은 34만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0% 증가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ICL)의 대출건수는 10만 건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존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건수가 70%를 넘어서면서, 대학생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취업 후 상환제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ICL만 이용해야 하는 신입생(성적 미달자 제외)을 제외한, ICL과 일반 상환제 가운데 선택이 가능한 재학생 대부분은 일반 상환제를 선택했다.


한대련에 따르면, 재학생들은 이러다가 취업도 못 하고 빚도 못 갚겠다며 기존 학자금 대출을 택하게 되고, 신입생들은 선택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취업 후 상환제를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계획 발표 당시 110만명 가량이 ICL을 통해 학자금 대출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접수한 학생 수는 절반 이하에 그쳤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외면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지적이다. 

 

대학생 이중고 덜어줄 현실적 방안 모색 필요
이미 오를 대로 올라 비싸기 만한 대학등록금, 게다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학자금 대출 금리, 여기에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대학당국까지. 이러한 현실은 대학생들에게 이중삼중고를 안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1년 등록금 천만 원 시대는 도래한지 오래고, 돈 없는 대학생들은 높은 학자금 대출 금리로 인해 또 한 번 울게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ICL 제도 시행 첫 해인 만큼, 이번 신청 결과를 바탕으로 이자 부담을 단리로 낮추는 등의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이자 부담을 덜어주거나 학자금 대출 금리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대학생들은 조망한다. 취업 후 상환제에 대한 심도 있는 재검토와 대학생들과의 열린 의사소통으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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