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단결 민주덕성, 분규대학에서 민족사학으로
일치단결 민주덕성, 분규대학에서 민족사학으로
  • 이경라 기자
  • 승인 2010.04.10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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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1일 비상총회 후 교문 밖으로 진출하다 전투경찰과 대치한 학생들
 지금은 퇴직하신 다른 대학의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덕성여대야말로 학생과 교수가 일궈낸 학교, 민족사학이라는 말이 걸맞는 민주적인 학교다”라고. 과연 우리대학은 언제부터 민주덕성으로 성장하였고 차미리사 선생의 뿌리를 이어가는 민족사학으로 발돋움하였을까?

학내민주화를 외치다
 1990년,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거짓된 가면을 쓴 채 개정된 ‘사립학교법 교수재임용제도’가 실행됐다. 그의 첫 적용 사례로 성낙돈(교직)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했으며 이어 1997년 2월. 한상권(사학) 교수 또한 재임용심사기준인 연구실적, 교육실적, 근무실적, 봉사실적 등에서 별다른 문제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제도가 재단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교수들을 강단에서 몰아내고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용도로 악용된 것이다. 명백한 이유가 없는 해직에 전국 80여 개 대학 3,000여 명의 교수와 연구자들은 한 교수의 복직을 외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사학과에서는 재학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학교에 맞서 싸웠다. 이렇게 시작된 교수와 연구자들 중심의 운동은, 한 교수의 해직 문제를 해당학과의 문제나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비민주적이고 편파적인 학사행정, 교육권ㆍ교권침해, 재단중심의 왜곡된 발전논리의 문제로 인식한 재학생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며 전교생 규모로 커졌다. 이에 재학생 비상대책위가 꾸려졌으며 학우들은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총장실을 점거하는 등 집단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한 교수의 복직과 학내 정상화는 쉬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보다 한참 후인 1999년 3월에서야 한 교수는 복직하게 됐다.

본래의 덕성을 되찾다
 두 번째 투쟁은 학생들이 ‘차미리사’라는 학교 설립자의 존재를 알게 되며 우리대학의 역사와 정체성이 확립된 후이다. 학우들은 박원국 이사장, 즉 친일세력이 차미리사 선생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차미리사 선생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저항적 가치가 형성되는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당시 박원국 이사장은 모친인 송금선 여사가 덕성의 설립자라고 주장하였으나, 민주동문회에서는 민족연구소를 통해 송금선 여사가 친일 행위를 한 것을 밝혀냈다. 또한 국정감사를 통해 박원국 이사장 일가 역시 덕성학원 설립자 가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으며,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과 특수 관계가 없는 박원국 이사장 일가가 덕성학원을 세습하려는 것은 법리상·실체상 근거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한 것이다.
2000년 6월 8일, 민주동문회 주최로 열린 <덕성학원 건학 80주년 기념 덕성여대 뿌리찾기 대토론회>는 덕성여대의 새로운 출발을 상징했다. 이 토론회는 그동안 왜곡됐던 우리대학의 뿌리를 찾고 정통성 확립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10일에는 우리대학 행정동 입구에서 ‘차미리사 초상화 봉정식’을 가졌다. 이 초상화는 이반(서양화) 교수와 서양화과 학생들이 작업한 것으로 그동안 박원국 이사장 가문의 사유물로 잘못 알려져 있던 덕성학원의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덕성인들의 소망을 담고 있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하지만 봉정식에 참석한 교수들은 경고를 받고 해고당하기도 했다. 

 교수들의 교권과 학우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구성원들을 분열시키려는 재단의 ‘소유권’ 관련 주장에 대항하여 투쟁하던 우리대학은 ‘분규대학’, ‘동토의 왕국’이라는 슬픈 별명을 얻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대학자치권 탄압에 맞서 싸워온 구성원들의 분노와 저항, 민주화를 위한 기나긴 투쟁은 그 슬픈 별명을 누르고 ‘민족사학’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도움말 : 한상권(사학) 교수참고자료 : 한국역사연구소 홈페이지(www.koreanhistory.org) 한상권(사학) 교수 연재글
참고: 도서관 미디어센터에 가면 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학교’(청구기호 VV 3785ㅎ2, VV 3785ㅎ3)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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