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노예가 되시겠습니까, 생각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생각의 노예가 되시겠습니까, 생각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 이경라 기자 정리
  • 승인 2010.05.2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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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여타 동물들보다 우월할 수 있는 까닭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통해 말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 속을 돌아다니는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지난 5월 11일 오후 6시. 본지에서는 홍세화 작가를 모시고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주제로 <제10회 작가와의 대화>를 개최했다. 많은 학우들과 교직원들이 참석하여 홍세화 작가의 열정적인 강연을 집중해 들었으며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생각의 세계에 무엇을 담으십니까?
안녕하세요. 홍세화입니다. 오늘 제 강연 제목 모두 알고 오셨죠? 아주 쉬운 질문입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이 질문을 통하여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칸트가 이야기 했듯이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바에 대하여 자유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정해졌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즉 생각의 세계에 담겨있지 않은 것은 왜 담겨있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홍세화입니다. 오늘 제 강연 제목 모두 알고 오셨죠? 아주 쉬운 질문입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이 질문을 통하여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칸트가 이야기 했듯이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바에 대하여 자유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정해졌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즉 생각의 세계에 담겨있지 않은 것은 왜 담겨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생각을 고집하는 존재입니다. 모두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합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그럼 내가 내 생각을 접을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강조했던 생각의 성질 때문입니다. 일단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생각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들어와 있는 생각과 다른 생각은 들어오지 못하게 배격합니다.

생각하십니까? 존재하십니까?
생각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습니까? 부모님과 친구와 앞으로의 배우자와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내 생각을 주장하게 될 텐데 언제부터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를 스스로 물어볼 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찰하는 자세의 출발점입니다.

생각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습니까? 부모님과 친구와 앞으로의 배우자와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내 생각을 주장하게 될 텐데 언제부터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를 스스로 물어볼 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찰하는 자세의 출발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생각하시나요? 데카르트에 의하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기 위해서 정말 생각을 해야겠죠. 생각에 의하여 기존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시나요? 생각에 의하여 기존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18세기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 이 둘로 나눴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사람은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입력된 것을 믿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정말로 생각하기를 바라고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합리적 존재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합리적 존재여야 합니다. 합리적 존재의 사람이라면 생각을 고집하다가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람은 합리적 존재이기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화의 이유를 대고 핑계를 대며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려 합니다. 그래서 한 번 갖게 된 생각은 성질 자체가 고집인데다가 합리화를 하면서 더욱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생각의 세계에 변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를 알 수 있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이 바뀌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합리적 존재여야 합니다. 합리적 존재의 사람이라면 생각을 고집하다가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람은 합리적 존재이기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화의 이유를 대고 핑계를 대며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려 합니다. 그래서 한 번 갖게 된 생각은 성질 자체가 고집인데다가 합리화를 하면서 더욱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생각의 세계에 변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를 알 수 있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이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기 때문에 생각의 변화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의 폭은 지극히 좁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앞으로 여러분들이 60년, 70년 살아가는데 중요한 기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물음입니다.

여러분들, 고집부리다가도 때때로 회의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장하는 생각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십시오. 그리고 합리화하는 존재가 아닌 합리적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자신의 성숙을 위한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일 것입니다.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십니까?
제가 처음에 던진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사회와 법’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와 만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가족, 친구, 선생님, 이웃들로부터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시대적 상황, 지역적 상황, 종교적 상황 등을 통해 생각의 세계 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 통틀어 ‘사회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묻는 것은 이제까지의 사회화 과정을 점검해보는 과정이 됩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묻는 과정이기 때문에 철저히 자신의 몫입니다. 내 생각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내 생각에 관해서는 내 생각에게 물어야합니다.

제가 처음에 던진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사회와 법’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와 만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가족, 친구, 선생님, 이웃들로부터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시대적 상황, 지역적 상황, 종교적 상황 등을 통해 생각의 세계 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 통틀어 ‘사회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묻는 것은 이제까지의 사회화 과정을 점검해보는 과정이 됩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묻는 과정이기 때문에 철저히 자신의 몫입니다. 내 생각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내 생각에 관해서는 내 생각에게 물어야합니다.

이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보려 합니다. 첫째,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둘째,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닌 열린 토론을 통하여, 셋째, 직접 보고 들은 지적 견문을 통하여, 넷째,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하여, 마지막 다섯째, 자기 성찰을 통하여 얻은 생각이 각각 내 생각의 몇 %를 차지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 지표는 앞서 말씀드린 사회화 과정 중 제 나름대로 분류를 해본 것입니다. 즉 자기주도적인 의식형성이냐, 아니면 주입이나 강요에 의한 형성이냐 하는 분류입니다. 생각의 세계 속에서 주어나 ‘나’인 내가 독서하고 내가 토론하고 내가 여행하고 내가 성찰해야합니다.

어떤 독서를 하십니까?
사람이 자기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의식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책입니다. 책은 어떤 책이든지 닫혀있습니다. 그 어떤 책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책은 가만히 서가에 꽂혀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돼서 책을 펼쳐 저자의 생각을 참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의 생각을 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만나서 저자의 생각을 참조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하기 위하여, 여러분과 동시대에 사는 사람의 생각,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열린 사고의 자세로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함께 버무리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성찰하고 종합하고 정리해서 생각일 때에 그것이 바로 주체적으로 형성된 의식입니다.

사람이 자기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의식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책입니다. 책은 어떤 책이든지 닫혀있습니다. 그 어떤 책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책은 가만히 서가에 꽂혀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돼서 책을 펼쳐 저자의 생각을 참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의 생각을 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만나서 저자의 생각을 참조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하기 위하여, 여러분과 동시대에 사는 사람의 생각,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열린 사고의 자세로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함께 버무리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성찰하고 종합하고 정리해서 생각일 때에 그것이 바로 주체적으로 형성된 의식입니다.

그에 반해 암기, 문제풀이, 미디어에서 ‘나’는 철저히 객체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어떤 생각도 여기에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훌륭한 교육은 암기와 문제풀이를 하는 동시에 토론과 독서를 통해 내 생각을 만들 수 있는 과정입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했듯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는 독서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신 암기를 요구하고 생각의 주인이기를 거부합니다.

질문이 죽은 사회입니다. 왜?
한 아동학자가 말을 시작하기 시작하는 10개월 내지 15개월 정도 되는 아이가 하루 종일 하는 말을 36개월이 될 때까지 녹음을 하여 들어보았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 단어는 ‘왜?’였다고 합니다. 아이는 ‘왜?’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할까요? 모르고 궁금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한다는 말이죠. 아이가 세상에 나와 궁금한 것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궁금한 것들을 누구에게 물을까요? 바로 가장 가까운 엄마입니다. 아이는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왜?’를 외칩니다. 여기서 아이가 두 번째 ‘왜?’를 말했다는 것은 엄마가 대답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크면 다 알게 돼’라는 대답은 아이에게 혼란을 줍니다.

한 아동학자가 말을 시작하기 시작하는 10개월 내지 15개월 정도 되는 아이가 하루 종일 하는 말을 36개월이 될 때까지 녹음을 하여 들어보았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 단어는 ‘왜?’였다고 합니다. 아이는 ‘왜?’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할까요? 모르고 궁금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한다는 말이죠. 아이가 세상에 나와 궁금한 것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궁금한 것들을 누구에게 물을까요? 바로 가장 가까운 엄마입니다. 아이는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왜?’를 외칩니다. 여기서 아이가 두 번째 ‘왜?’를 말했다는 것은 엄마가 대답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크면 다 알게 돼’라는 대답은 아이에게 혼란을 줍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엄마는 이미 다 컸는데 알지 못해서 자신에게 대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알아내서 다음에 가르쳐주겠다는 약속을 해서 알려주는 성실성이 필요합니다. ‘나도 몰라’, ‘몰라도 돼’라는 대답은 잘못된 문화의 되물림입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거부당한 ‘왜?’를 어디에서 던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왜?’라는 질문이 죽은 사회입니다.

생각의 길을 찾으셨나요?
우리 한국사회는 힘의 논리가 관철되어있고 우리가 가진 생각은 입력된 것으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나는 진보적, 역사적, 비판적, 인문사회적 의식 등을 고루 갖췄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떻게 갖게 된 의식인지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의 것인 것처럼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힘의 논리가 관철되어있고 우리가 가진 생각은 입력된 것으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나는 진보적, 역사적, 비판적, 인문사회적 의식 등을 고루 갖췄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떻게 갖게 된 의식인지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의 것인 것처럼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강연의 내용을 세 가지로 집약하여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내 주장을 펼치고 고집하다가도 이따금씩 내 생각이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둘째,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줘야합니다. 셋째, 교양과 상식을 쌓을 수 있는 균형있고 폭넓은 독서를 합시다. 이 세 가지 약속을 실천한다면 주체적인 의식을 향한 발돋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오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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