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기획]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그림 읽기
[학술기획]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그림 읽기
  • 박은순(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0.06.05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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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회화
궁중회화는 궁중에서 제작, 감상, 배포된 그림으로 왕실과 국가가 주관하여 제작되었다. 조선시대동안 공적인 예술은 유학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고, 그림의 경우 유학적인 본말론이 적용되어 말기末技 중 한 가지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국가적인 경영을 위하여 그림이 필요하였고, 사회적인 공리성과 효용성을 가진 한에서는 그 제작과 사용이 인정되었다.
궁중회화를 기능과 주제, 화풍 등을 감안하여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각 유형은 첫 번째, 효용성과 공리성을 강조한 감계화, 두 번째, 궁중의 주요한 행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기 위하여 제작한 기록화, 세 번째, 직접적인 공리성은 아니지만 삶의 상서로움과 실상을 가리킨다. 궁중에서는 국왕과 공신 등 주요한 인사를 그린 영정, 백성들의 일상을 다룬 풍속화, 교훈이 되는 고사를 다룬 고사화 등이 늘 수요되었다. 그림을 통하여 사람들을 계도하고,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함양, 경계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궁중회화는 국가적인 권위와 위력을 표상하고, 궁중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따라서 규모와 주제, 화풍, 재료, 미감이 민간의 회화와 다른 점이 적지 않았다. 궁중회화의 화풍을 원체화풍院體畵風이라고 하는데, 곧 궁중회화의 성격을 드러내는 화풍 상의 특징을 반영한 개념이다. 궁중회화는 도화서라는 관아에 소속된 직업화가인 화원畵員이 제작하였다. 화원은 나라 최고의 화가들로서 꾸준히 훈련받고 평가받았다. 화가로서 가장 영예롭지만 실력이 모자라거나 태만하면 곧 관직에서 쫒겨났다. 따라서 이들은 최고의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려는 제도적 장치와 개인적인 노력이 존재하였고, 그 결과 높은 수준의 궁중회화가 제작 될 수 있었다.

궁중에서는 성정性情을 기르고 심사心思를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우의寓意적인 감상화도 제작되었으나, 이 책에는 제한된 여건 상 싣지 못하였다. 궁중에서 제작된 그림에는 화가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거나, 화가의 개성이 자제된 경우가 많다. 그림을 천시하는 사회적 관념상, 특히 궁중 안에서 화가의 존재는 미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궁중회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주문, 수요한 왕이나 관료들의 사상과 예술관, 취향도 작용하였다. 위대한 화가들과 까다로운 감평자들의 활약으로 조선시대의 궁중회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을 갖춘 높은 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문인화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유학을 공부하는 학자였다. 그러나 선비도 때로는 학문을 닦는 여가에 시서화로 마음을 수양하고 성정을 기르는 것을 중시하였다. 유학의 영향으로 그림은 말기末技이며 천기賤技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었지만 조선시대동안 꾸준히 뛰어난 선비화가들이 출현하였다. 타고난 천분과 그림에 대한 애호심을 가진 선비화가들이 연이어 활약하면서 그림에 사상과 마음을 담아낸다는 우의론寓意論을 전제로 그림을 제작하였다. 간접적인 효용론인 셈이다.
선비에게 그림은 여기餘技였다. 여기란 아마추어리즘을 의미하며, 직업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취미나 여가활동 정도로 즐긴다는 뜻이다. 선비는 다른 사람의 주문이나 취향을 반영해야 하는 직업화가와 달리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주제를 선호하였다. 탁족도濯足圖, 관수도觀水圖, 관폭도觀瀑圖, 도원도桃源圖, 귀거래도歸去來圖, 각종 시에서 유래된 주제, 역사와 고사에서 차용한 교훈적인 주제 등을 애호하였고, 성리학적인 우주관과 자연관을 담은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나 시화일치사상과 풍류를 담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선호하였다. 재료는 수묵만을 사용하거나 채색을 쓰더라도 청색과 갈색 정도 제한된 색조를 엷게 쓰는 담채화에 머물렀다. 필묘는 간결, 소박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고 묵법도 담백하여 화려한 맛이 적은 것을 좋아하였다. 높은 식견과 감식안을 갖춘 선비화가이기에 과장과 허식이 없는 그림을 선호하였던 것이다. 물론 선비화가의 그림이 모두 단순하거나 수묵담채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시대나 경우에 따라서 진채의 공필로 화려한 그림을 그리거나 사실적인 묘사와 정교한 기교를 구사한 경우도 있다. 화풍이나 기법은 화가의 의도와 사상, 최향을 담아내는 방편이라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작품을 대해야 할 것이다.

선비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과 예술관을 가지고 화단을 선도하기도 하였다. 조선 전반기의 강희안, 이경윤, 이정, 조속, 후반기의 윤두서, 정선, 강세황, 신위, 김정희, 남계우 등 많은 선비들이 새로운 회화관과 주제, 화풍, 기법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선비화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면서 앞서갔다면, 높은 감식안과 진지한 취미를 가진 선비들은 그림을 감상, 수장, 품평하면서 시대의 경향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직업화가들을 후원하거나 지도하기도 하였다.

직업화가
조선시대의 화단을 이끌어간 가장 중요한 화가는 직업화가이다. 직업화가는 대개 중인 출신으로 여러 가지 기술직에 종사할 수 있는 계층이었으나,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경우 직업화가로 출세하였다. 그러나 화가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민간의 화공들이야 많았지만, 국가가 운영한 기관인 도화서圖畵署에 들어가 화원이 되기는 어려웠다. 도화서에 소속되면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으니 안정적이고, 혹시 그림 솜씨가 유난히 뛰어나서 임금의 영정을 그리는 어진화사御眞畵師가 되면 최고의 영예를 누리며 종6품의 현감직에도 제수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조선시대 동안 화원으로 현감직 이상으로 출세한 화가는 이상좌, 최경, 김홍도 등 몇 명 정도가 손꼽힐 뿐이다.

왕이나 고급관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던 최고의 화원들은 지금까지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조선 전반기의 안견, 이상좌, 최경, 이정, 이징, 김명국, 한시각으로부터 조선 후반기의 김두량, 변상벽, 김응환, 김홍도, 이인문, 유숙, 조정규, 허련, 안중식 등은 궁중회화의 꽃이었다. 그런데 화원들이 평생 궁중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일정 기간 종사한 이후에는 관직에서 벗어나 민간으로 돌아갔고, 그림을 파는 직업화가로 연명하였다. 직업화가란 자신의 뜻대로 그리는 것보다는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요청에 따라 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직업화가는 다양한 주제에 능숙한 경우가 많고, 선비화가의 그림에 비하여 복잡한 구성과 기교가 많은 필묵, 화려한 색채, 사실적이고 정교한 묘사력이 과시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중인계층 가운데 직업화가는 성공한 직종에 속하였다. 17세기 이후에는 유명한 화가들이 서로 통혼을 하면서 화원직, 또는 화가직을 세습하는 경향이 정착되었다. 개정 김씨 집안, 양천 허씨 집안 등 대표적인 화가집안이 형성되어 화단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늘 이런 집안에서 뛰어난 화가가 나온 것은 아니다. 18세기의 김홍도나 19세기의 허련처럼 타고난 재능으로 발탁된 화가들이 연이어 나온 것을 보면 훈련보다 재능이 우선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직업화가의 그림들 가운데는 궁중의 감상회화로 제작된 것들도 있고, 민간의 주문에 부응하여 제작된 작품도 있다. 이 두 가지 경우가 얼마나 다른가하는 문제는 쉽게 단정 짓기 어렵다. 예컨대 조선말에는 궁중의 장식화를 그리던 화원들이 같은 주제와 화풍의 그림을 광통교의 그림시장에서 제작, 판매하였다. 화원 또는 직업화가들은 궁중과 사대부층, 민간을 넘나들면서 자신들이 알던 상층부의 문화를 민간에 저변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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