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 새로운 이해와 문화적 활용
고전(古典), 새로운 이해와 문화적 활용
  • 최진형(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0.08.28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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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혹은 상상력의 변증법!
“춘향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방자라면?”
“남의 간(肝)을 탐한 것이 구미호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이러한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고전(古典)을 이해하고 감상하며, 나아가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사실 위에 적은 물음은 이미 영화 또는 드라마로 그 대답이 제시된 바 있다. 올초 상당한 관심을 끌었던 영화 <방자전>과 며칠 전 종영된 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사해 주었다. ‘춘향’ 하면 만고열녀(萬古烈女)를 떠올리고, ‘구미호’ 하면 인간을 죽여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요물(妖物)를 떠올리는 것이 익숙한 문화적 관습이었다면, 그것을 일거에 뒤엎는 전복적 상상력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다.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상투성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고, 새로움은 불편하지만 참신성의 신선함을 줄 수 있다. 이제는 고전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왜 고전(古典)인가?
  우리는 흔히 ‘창작(創作)’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순도 100%의 완벽한 창작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나 가족, 벗의 삶에서 소재를 얻기도 하고, 언젠가 듣거나 보았던 텍스트에서 착상의 기회를 포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상적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창작의 질료는 제한적이며, 동시대의 텍스트는 극복의 대상일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비해 고전은 엄청난 보물을 저장한 창고로서의 역할을 해 줄 확률이 높다. 현전 고소설 작품이 1,000종을 상회하며, 구전설화나 문헌설화 작품을 보태면 그 수효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된다. 여기에 각종 역사 기록까지 합친다면,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는 자료 공급창고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가 문화 컨텐츠의 보고(寶庫)로서 고전을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고전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일까? ‘창작’에 임하는 경우 우선시해야 할 것은 텍스트의 선별과 현대적 해석이다. 엄청난 양의 고전 텍스트는 비유하자면 여기저기 뒹구는 원석과 같아서, 옥석을 가려 최고의 보석으로 다듬어내는 안목과 노력이 필요하다. 전공 연구자의 손길조차 제대로 닿지 않은 작품이 적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텍스트를 선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미 검증된 자료를 반복적으로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한 물음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고통스런 고민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편 다뤄지는 텍스트가 단순한 소개나 부분적 활용의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 결국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고전 텍스트의 현대적 해석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전을 새롭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작품을 대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상업성’과 ‘난해성’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영화 <쌍화점>의 경우, 작품이 역사적 사실을 작품의 주요 기반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감상자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려 공민왕의 비극적 죽음, 자제위와 홍륜의 패륜, 노국공주와 익비의 불행한 삶은 ??고려사??를 비롯한 관련 기록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동성애 묘사, 과도한 노출 등으로 인해 본말이 전도되면서 혼란스러움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제작자가 빠지기 쉬운 ‘상업성’의 유혹, 대다수의 감상자가 시각적 자극에 현혹되어 본질을 놓치게 되는 ‘난해성’의 문제가 모두 드러난 것이다.
  ‘상업성’과 ‘난해성’의 문제는 흔히 ‘문학개론서’에서 설명하는 문학의 ‘오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의 ‘조화’ 문제와 상통한다. 두 기능은 필수적이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바람직하다. 이는 비단 문학작품 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의 작품에도 통용되는 중요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제작자 뿐 아니라 감상자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방자전>의 감상자가 선정적 장면만을 떠올린다거나, <구미호:여우누이뎐>의 감상자가 이야기의 결말에만 신경 쓴다면 어떨까? 그 일차적 책임은 제작자에게 있지만, 감상자의 책임도 작지만은 않을 것이다. 원작에 해당하는 판소리 <춘향가>가 결코 열(烈) 이데올로기를 미화하는 데 그친 작품이 아니라는 점, 설화 <여우누이>가 여권에서 남권으로의 이행이라는 사회적 변동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랑의 의미’를 되묻거나 ‘소외된 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등 고전을 통해 현재적 고민을 담아내고자 한 작품의 의도를 읽어내어야 할 것이다.
  결국 고전을 새롭게 이해하고 현대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이해’→이해를 바탕으로 한 ‘재해석’→이해와 재해석의 과정에서 도달하는 현재적 ‘성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고전을 활용하되 원작을 단순히 비트는 패러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상상력의 변증법을 실현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전의 새로운 이해와 문화적 활용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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