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모님, 시간이 있으십니까?”
“싸모님, 시간이 있으십니까?”
  • 오광근
  • 승인 2011.01.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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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후반의 남성이 도로 맞은편에서 오는 중년 부인에게 물건을 홍보하거나 판매하려고 아래의 말을 건넨다고 할 때 이 중년 부인의 반응이 어떨지 생각해보자.
 
(가) “사모님, 시간이 있으십니까?”
(나) “싸모님, 시간이 있으십니까?”

  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대다수의 화자들은 (가)문장보다 (나)문장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문장을 들었을 때에는  왠지 내가 존경이나 대우를 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문장 (가)와 (나) 사이에는 ‘사모님’과 ‘싸모님’밖에 차이가 없는데 청자들에게는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것은 ‘사모님’의 ‘ㅅ’과 ‘싸모님’의 ‘ㅆ’이 의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ㅅ’을 사용할 자리에 ‘ㅆ’을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어감에는 변화를 준 것이다.

 

 ‘자장면’과 ‘짜장면’의 미묘한 차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표적 대중 음식 중 하나인 ‘자장면’은 외래어 표기법상 ‘자장면’이 맞다. 그런데 5~6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짜장면’으로 표기하였다. ‘자장면’이 옳다고 하는 의식은 국립국어원의 적극적인 홍보 활동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장면’이 옳은 표기라고 인지하면서도 막상 현실 세계에서는, 다시 말하면 중화 요릿집에 가서는 ‘자장면’을 주문하지 않는다. ‘짜장면’만을 주문한다. 왜 우리는 ‘자장면’이라 인지하면서 ‘짜장면’을 주문하는 것일까? 추측하건대, 그것은 아마도 ‘자장면’을 시키면 왠지 음식이 싱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자장면’을 주문하든 ‘짜장면’을 주문하든 주방장이 만드는 ‘자장면’은 한결같을 것임에도 말이다. ‘자장면’과 ‘짜장면’에 대한 미묘한 어감의 차이는 결국 ‘ㅈ’과 ‘ㅉ’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사모님’과 ‘싸모님’, 그리고 ‘자장면’과 ‘짜장면’을 통해서 소리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미묘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말과 표준어는 相似而不同
  서울말과 표준어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서울말 중 일부는 표준어인 것도 있고,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있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끼니를 잘 챙겼는지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녕?’, ‘잘 지내셨습니까?’와 같은 표현보다 ‘밥은 먹었니?’ ‘진지는 드셨습니까?’ 등의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서울 토박이들은 점심 때를 전후해서 다음과 같이 인사하곤 했다.

 (다) “겸심 하셨에요?”

  여기서 ‘겸심’은 표준어 ‘점심’에 해당한다. ‘겸심’은 ‘점심’(<뎜심)에 대해 음운론적으로 역구개음화가 일어난 형태다. 역구개음화란, 이미 구개음화된 형태를 구개음이 아닌 다른 소리로 잘못 고치는 현상이다. 이는 말을 고상하게 하려는 화자의 심리를 반영한 현상으로 간주된다. 서울말에 나타나는 역구개음화는 한반도의 남부 지역 사람들의 말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구개음화 현상과 차별화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저씨’는 ‘부모와 같은 항렬에 있는, 아버지의 친형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어휘는 의미가 확대되어 ‘남자 어른을 예사롭게 이르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서울말에서는 ‘아저씨’에 대해 의미의 확대가 일어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길을 가다 낯선 남자 어른한테 말을 건넬 때 ‘아저씨’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서울말에서는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고 ‘아이씨’라고 했다. 
 

  30여 년 전에는 중학생 정도의 어린 남자아이들이 구두통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구두를 신은 신사에게 구두를 닦으라고 호객하는 광경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이들은 ‘아저씨 구두 닦으세요!’라고 하지 않고 ‘아이씨 구두 닦으세요!’ 말하는데 이때 ‘아이씨’는 바로 요즘의 ‘아저씨’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서울말에서는 피가 섞이지 않는 상대에게 ‘아저씨’라고 차마 호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겸심’과 ‘아이씨’를 통해서 서울말 토박이들이 갖고 있는 의식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올린 어’는 서울말의 중요한 특성
  서울말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올린 어’의 사용이다. 대부분의 ‘어’는 ‘어머니, 너, 어깨’ 등과 같이 입을 좀 크게 벌려 내는 ‘어’이다. 이 소리는 ‘오’를 발음할 때보다 입을 좀 더 크게 벌리고 내는 소리, 즉 개구도가 ‘오’보다 더 큰 소리다. ‘오빠’와 ‘어머니’를 발음해 보면 ‘오빠’의 ‘오’보다 ‘어머니’의 ‘어’를 발음할 때 턱이 좀 더 내려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린 어’는 보통의 ‘어’보다 개구도가 작다. 그래서 이 소리를 ‘올린 어’라고 한다. 즉 ‘올린 어’는 ‘어’라는 소리를 낼 때보다 입을 적게 벌려 내는 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소리는 ‘어’에 비해 혀뿌리가 위로 들려 입 가운데에서 발음된다. 그런데 국어에 나타나는 이 소리는 대체로 길다.
  ‘올린 어’는 의미를 분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종로 거리까지 거리가 여기서 꽤 된다.’라고 할 때 ‘거리’와 ‘거리가 꽤 된다.’라고 할 때의 이들의 의미는 같지 않다. 전자는 ‘길거리’를 의미하고 후자는 한자어 ‘거리(距離)’로 ‘공간적 길이’를 의미한다. 이 두 ‘거리’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전자는 [거리]로, 후자는 [거:리]로 발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때 [ㅓ:]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은 [ㅓ]를 길게 발음하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라) “아니 왜 이렇게 여기가 더러워?”
(마) “너는 왜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니?”

  위 문장의 ‘더러워’와 ‘거짓말’을 비교해 보자. 우리가 이 문장을 읽을 때와,  자연스럽게 발화할 때를 비교해 보면 이 둘의 발음은 똑같지 않다. 이 문장을 읽을 때에는 [더럽니]와 [거진말]처럼 읽지만 실제 발화 상황에서는 이와 다르게 발음되는 것이다. 이를 굳이 한글로 적으라면, 이 소리가 국어의 일반적인 [어]와는 다르게 느껴지고, 또 한편으로 [으]와 가깝다고 느껴지므로 이를 ‘드럽니’나 ‘그진말’로 표기할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발음할 때 그 의미가 실감이 날까? 좀 더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드는 발음은 [더럽니]가 아니라 [더:럽니]일 것이다. 또한 ‘거짓말’ 앞에 흔히 붙는 수식어 ‘새빨간’은 [거진말]보다 [거:진말]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국어 화자들이 이렇게 느끼는 것은 ‘더럽다’의 표준발음이 [더:럽따]이고 ‘거짓말’의 발음이 [거:진말]이기 때문이다.
  표준어로 편입된 이 ‘올린 어’는 표준어로 편입되지 않았던 서울의 다른 소리들과 함께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올린 어’가 표준발음법에서 인정하는 교양 있는 서울말임에도 불구하고 ‘더럽다’에 대해 [더:럽따]로 표준으로 발음하게 되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더럽따]보다 더 촌스럽다고 생각을 한다거나, 국어시간에 책을 읽을 때 [더:럽따]로 읽으면 선생님이 이를 [더럽따]로 교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광근 성균관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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