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캠퍼스
3월의 캠퍼스
  • 이주은
  • 승인 2011.03.08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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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니 캠퍼스가 다시 웅성거리며 사람꽃이 핀다. 사람꽃들이 저마다 향기를 뿜어내는지, 3월엔 학교에만 다녀와도 취한 것 같이 정신이 없다. 때론 학교가 변해버린 모습도 은근히 상처가 된다. 예전과 다르게 최첨단 설비를 갖춘 것을 보면, 나만 고장이 난 낡은 기계 같아 속상하고, 발랄한 대학생들을 보면 나 혼자 늙어버린 것 같아 서글프다. 
지난주엔 옛 친구 둘을 만나 스무 살 때처럼 수다를 떨었다. 늙수그레한 여자 셋이서 영화 「만추」를 보고 나와서, 현빈의 헤어스타일이 어떻다는 둥, 탕웨이에겐 관능적인 매력이 있다는 둥 한참을 떠들어댔다. 아이스크림 위에 시럽이 듬뿍 발린 와플을 한 가득 입에 넣은 채, 말로는 저마다 복부에 쌓여가는 지방 걱정을 했고, 또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아는 사람을 들먹거리며 어른답지 않게 시샘이 섞인 말투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회생활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게다가 여전히 매력적이기까지 한, 그러니까 두 마리도 모자라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잘 나가는 동창이 주로 시샘의 대상이었다. “맞아, 대학 때는 별로 눈에 띠지 않았잖아? 피부랑 몸매 관리에 무지 신경 썼나봐.”
여자들의 대화란 늘 그런 식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은연중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다. 학교 캠퍼스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젊은 날을 보듯 말이다. 클림트의 그림, <다른 세대의 세여인>을 소개한다. 그림 속에는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태어나서부터 늙기까지 한 여자의 일생을 말하는 것 같다. 중앙에 있는 사랑스러운 젊은 여자는 보송보송한 느낌의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데, 그녀의 등 뒤로 쭈글쭈글해진 몸의 노파가 서러운 듯 얼굴을 숙이고 있다.
3월의 캠퍼스를 활보하는 사람꽃들은 지금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나중엔 다른 인생들을 살고 있겠지. 억척스럽게 일만 하는 여자, 지독한 사랑을 경험한 여자, 하나는 얻고 다른 하나는 잃은 여자, 둘 다 가진 여자…. 하지만, 태어나고 늙어가는 삶의 과정은 누구나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멋진지 대답하기란 어렵다. 다만 인생 선배로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이 마냥 소중하다는 것뿐이다.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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