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콘텐츠 활용의 가능성과 함정
역사 콘텐츠 활용의 가능성과 함정
  • 최진형(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1.05.0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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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요즘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문화 콘텐츠 유통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콘텐츠를 찾아 가공하여 내다 파는 쪽과 그것을 흔쾌히 구입하여 소비하는 쪽이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유통의 양축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콘텐츠들이 유통되지만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역사'를 활용한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비현실적인 설정

   <주몽>이나 <선덕여왕> <쌍화점>처럼 우리 설화나 고전 시가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의 작품도 있고, <태왕사신기><왕의 남자><바람의 화원><성균관 스캔들> 처럼 구체적인 것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사 또는 고전의 향기를 내뿜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예를 들어 <선덕여왕><바람의 화원><성균관 스캔들>의 공통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남장여인(男裝女人)’이라는 설정인데, 이는 매우 익숙한 서사적 장치이다. 우리 고전소설 작품만 하더라도 <김씨열행록><옥낭자전> 등 여러 편에서 이 장치를 활용하였고, <뮬란>이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진 중국의 <목란시>도 남장여인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삼은 대표적 작품이다. 이러한 설정이 특이하기는 하되 별로 참신하지 않은데도 단골 레퍼토리로 사용되는 이유는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뻔히 드러나는 사실들을 잘 몰라보는 극중 인물들의 어리석음이 한계로 노출되기도 하지만, 들킬 듯 말 듯 조마조마한 상황을 연출하며 향유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방영되었던 <선덕여왕>,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은 다소 다른 방향에서 ‘남장여인’이라는 설정을 활용했다고 생각된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선덕여왕>), 또는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바람의 화원><성균관 스캔들>) 불가피하게 ‘남장여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이 주목되는 것은 특히 덕만공주와 혜원 신윤복이 역사적 실존인물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 된 덕만공주가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와 쌍둥이 자매간이었다는 설정, 단원 김홍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풍속화의 대가로 인정되는 혜원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는 설정은 매우 충격적이다. “설마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과연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수긍으로 바꾸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한 발 앞서 행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설정이 왜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검증 없는 역사

  역사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우선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한국학 분야에 대한 학술적 관심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고전적인 것, 역사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활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 하다. 역사 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할 경우 우리는 접하기 어려운 텍스트들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으며, 선입견을 걷어내고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 궁극적 결과물이 역사나 역사 인식에 심각한 왜곡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여러 설정이나 상황 묘사 등에 다소간의 과장이나 왜곡이 있더라도 용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허구적 설정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불가피한 과장이나 왜곡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심각한 문제는 역사 콘텐츠를 다룰 때 생길 수 있는 과장이나 왜곡이 상업적 목적과 만나는 경우에 발생한다. 드라마 <주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화인 <동명왕 신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써 숱한 관심과 화제의 중심에 놓였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 향유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역사(또는 설화 자료)에 없는 허구적 설정은 한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해모수-유화-금와의 관계를 삼각관계로 삼은 것이다. 이 관계는 드라마 전반부를 이끌어간 핵심 축으로써, 천제자(天帝子)인 해모수와 하백녀(河伯女)인 유화가 지닌 태생적 신성성(神聖性)을 제거하기 위해 쓰인 설정이다. 문제는 과연 금와가 유화를 후궁으로 맞아들일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삼국사기> 동명왕 14년조에 나와있다.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자 그 왕 금와가 태후(太后)의 예로써 장사지내고 신묘를 세웠다”는 기록을 통해 금와는 유화를 태후, 즉 선왕(先王)의 왕비로 인정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금와가 어머니뻘인 유화와 삼각 관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지나친 상업성의 문제

  한편 영화 <쌍화점>의 역사 왜곡도 위험한 수위를 넘나든다. <왕의 남자> 이후 동성애 코드가 유행처럼 번져서인지 <쌍화점>에도 이를 집어넣기 위해 무리한 설정을 감행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왕-왕비-호위무사'의 삼각관계를 설정하되, 왕비를 중심에 둔 삼각관계가 아니라 호위무사를 중심에 둔 삼각관계를 설정한 것이다. 양성애자인 호위무사가 왕과는 동성애를, 왕비와는 이성애를 나눈다는 것이다. <쌍화점>의 내용이 전적으로 허구라면 이러한 설정이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려의 공민왕과 노국공주, 그리고 역모를 일으킨 홍륜의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등장 인물의 이름이나 면모, <천산대렵도>(공민왕작으로 알려짐)의 활용 등으로 볼 때 이는 명백하다. 하지만 영화 관람객의 대부분은 이 작품을 그냥 허구적 작품으로 치부하며, 유명 배우의 과감하고 농도 짙은 성애(性愛) 장면만을 기억할 뿐이다. “설마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과연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바꾸기는 커녕 “그랬을리 없다(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꾸몄다)”는 확신을 갖게끔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좀 더 효율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소의 왜곡은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왜곡 자체가 목적이 된다든가 또는 지나치게 상업성을 추구할 때 역사의 왜곡은 허용치를 넘어서며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역사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다소의 왜곡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따져봐야 하며 치밀한 검증과 고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역사 콘텐츠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 속에 도사린 깊은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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