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특집]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이경라 기자
  • 승인 2011.05.21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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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오후 6시, 본지에서는 미학자이자 진보적 문화평론가, 교육자, 언론인, 비평가, 철학자로 잘 알려진 진중권 작가를 모시고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제11회 작가와의 대화’를 개최했다. 130여 명의 많은 학우들이 강연에 참석해 진중권 작가의 열정적인 강연을 집중해 들었으며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진중권입니다. 오늘은 상상력과 파타피직스(pataphysic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문자세대입니다. 제가 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인문대생에게 컴퓨터란 타자기, 공대생에게는 기계일 뿐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문자 시대를 넘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와 다른 영상세대라고 할 수 있죠. 제 세대에는 모든 것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글로 줄줄이 논리를 말하고 주장을 펼친다면 ‘스크롤 압박’ ‘두 줄로 줄여줘’ ‘참 좋은 글입니다. 그러나 읽지는 않았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리죠. PPT처럼 이미지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영상세대이기 때문이죠. 문자 이전에도 영상미가 있었지만 지금과는 완전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미지는 글자로 만든 그림인 프로그램으로 만든 그림입니다.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 알파뉴머리 코드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상상력입니다.
1986년 유럽 전체에서 있었던 학생운동에서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상상의 자유와 권리가 없어 답답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죠. 우리사회는 억압적이고 조금만 튀면 밟아서 둥글둥글하게 만듭니다. 상상력은 튀는 것입니다. 상상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분위기를 훨씬 급진적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상상력이 이성의 영역을 끌고 가기 때문이죠.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은 ‘파타피직스’다
파타피직스는 20세기 중반 유럽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신문학인데 이 용어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입니다. 예민한 어감을 가지신 분이라면 파타피직스가 메타피직스(metaphysics)의 패러디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메타피직스를 흔히 ‘형이상학’이라고 옮기는데 ‘메타(meta)’는 이후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리스어에서 ‘이상’을 가리키는 용어는 ‘파타(pata)입니다. 따라서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파타피직스야 말로 진짜 형이상학인 셈입니다.

파타피직스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 혹은 과학을 가리킵니다. 사실 파타피직스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예술적 유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다이즘이 연출하던 부조리와 무의미 미학을 닮았죠. 이는 어쩌면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벌이는 다다이스트 퍼포먼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파타피직스에 근접한 예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이 유머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전산학에서 말하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코끼리를 low pass filler에 통과시킵니다. 그럼 ‘고기리’가 나옵니다. ‘고기리’에 circular right shift 연산을 합니다. 그러면 ‘리고기’가 됩니다. ‘리고기’를 증폭비 5인 Non-invert OP-Amp 회로에 통과시킵니다. 그러면 ‘5·리고기’가 됩니다. 이제 오리고기를 냉장고에 넣으면 됩니다.

물론 파타피직스는 이 가벼운 농담보다는 훨씬 더 진지합니다. 재밌는 점은 파타피지션은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믿지도 않고 남이 자신의 이론을 믿어주기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연구의 태도나 논증의 방식만큼은 정상 과학의 것만큼이나 진지하고 엄밀하고자 하죠.

 

파타피직스의 연구 중심지, 대한민국
이그 노벨(Ig-Novel)상은 어떨까요?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과 반대로 다시는 연구돼서는 안 되는 것을 연구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입니다. 예를 들면 인도에 사는 모든 코끼리 피부의 표면적 계산, 개벼룩이 고양이 벼룩보다 더 높이 뛰는 이유의 고찰 등이 수상 대상이죠. 이 연구들은 괴팍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에 속하고 당사자들도 자신들의 연구를 꽤 진지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이그 노벨상의 수상자 중에 정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일도 있었습니다.

발명의 영역에서라면 아마 일본의 ‘진도구’가 파타피직스에 가까울 것입니다. 진도구란 눈에 안약을 넣는 깔때기, 전철에서 졸 때 머리를 고정시켜주는 헬멧, 코를 풀기 쉽게 머리에 고정시킨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아이디어는 기발하나 실용성이나 상품성은 없는 도구를 합니다. 2%의 편리함을 위해 98%의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도구들이죠. 진도구는 단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다른 서너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파타피직스는 인류의 진화가 낳은 최상의 정신능력으로 정상과학과 형이상학이 좌절하는 그 지점에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현실이 곧 초현실’인 나라는 파타피직스의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타피직스 연구의 중요한 주제가 될 만한 사건들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졸지에 보온병이 포탄이 되고 무덤의 상석이 체중계가 되는 세계가 존재하는 곳, 대한민국이야 말로 21세기 파타피직스 연구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체스판 위의 파타포
파타피직스가 메타피직스의 패러디라면 ‘파타포(pataphor)’는 ‘은유’를 의미하는 ‘메타포(metaphor)’의 패러디입니다. 과거의 시인과 화가들이 메타포의 대가였다면 현대의 파타피지션들은 파타포의 명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타포는 그저 몇몇 괴짜의 해괴한 지적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파타포는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체험이 되었기 때문이죠.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의 말대로 현대인은 ‘파타피지컬한 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메타포와 파타포는 어떻게 다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두 개의 상이한 사물 사이에서 불현 듯 유사성을 깨닫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인 은유로 체스 게임을 들 수 있는데 체스는 전쟁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체스는 가상이지만 전쟁은 현실입니다.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죠. 체스에서는 평화롭게 말만 움직이지만 파타포에서는 체스판 위에서 총을 쏘고 창을 겨눕니다. 즉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어있는 파타포의 상태인 것이죠. 영화 <해리포터>시리즈에는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체스 말들과 대결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현실의 인간은 체스 판이라는 은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파타포, 즉 파타피지컬한 상상력의 전형적 형태입니다.

 
 
탁구 게임과 증강현실
닌텐도 wii 게임을 알고 계시죠? 그 중 탁구 게임이 있습니다. 닌텐도 wii 게임 이전에 탁구 게임에서 사람이 하는 것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운동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닌텐도 wii의 경우 탁구 게임을 하려면 온 몸을 움직여 진짜 탁구를 하는 것처럼 동작을 취해야합니다. 닌텐도 wii 게임은 제대로 파타포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닌텐도 wii 이전에 파타포를 구현한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령 항공이나 군사적인 영역에서 사용하는 시뮬레이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닌텐도 wii는 이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시뮬레이션의 경우 육중한 장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닌텐도 wii는 장비를 일상 환경 속에서도 가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시뮬레이터가 그저 하나의 가능세계에 고정되어 있다면 닌텐도 wii는 수많은 가능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죠. 이런 의미에서 보면 닌텐도 wii는 파타포의 온전한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파타포는 그저 몇몇 예술적 엘리트들의 해괴한 상상을 넘어서 대중적으로 요구되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은유와 현실이 중첩되는 시대에는 상상력 역시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메타포의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파타포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입니다.

정리 이경라 기자 ra1206@
사진 이민정 기자 dr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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