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게닝 제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플리바게닝 제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 이근우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
  • 승인 2011.10.10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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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법무부는 플리바게닝 제도(사전형량조정제)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사법 협조자에 대한 공소 불제기’를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플리바게닝 제도는 미국에서 발전해온 제도로 범죄자와 수사기관이 일정한 반대급부의 제시를 통해 서로의 소송상 주장(plea)을 거래(bargain)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원칙대로라면 수사기관은 살인죄로 용의자를 기소하고 용의자는 법정에서 무죄 주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대가로 살인죄가 아니라 더 가벼운 상해치사죄로 기소하도록 용의자와 약속(혹은 거래)하는 것이다.

플리바게닝의 필요성
  플리바게닝은 우리나라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고, 이뤄져왔다. 문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법제도화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플리바게닝 도입 주장의 주된 이유는 수사기관과 법원에 걸리는 만성적인 과부하를 덜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형사사법기관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법적 권리의 신장에 따라 여러 형태의 절차적 권리들이 피의자, 피고인에게 주어져 신속하고 간이한 사건 처리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사를 더욱 편리하게 해줄 플리바게닝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피고인이 자백한 사건의 경우 법원이 사실확인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형벌의 양만을 결정하면 되는 제도까지 도입되면 이러한 효과는 극대화 된다. 이를 통해서 범죄 처벌의 책임을 지는 국가는 소송상의 복잡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어서 재판 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특정한 유형의 사건에서 피고인의 자백을 통해 다른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피고인은 자신이 받게 될 형량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보다 경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형사소송에서 서로 대립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법원, 검찰, 피고인, 변호인 모두의 이익이 합치되는 셈이다.

그림출처:한국경제

선과 악의 거래?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만으로 쉽게 플리바게닝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제도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특징 이외에도 다양한 구조적 연관 위에서 기능하고 있다. 때문에 플리바게닝을 우리나라에 도입할 때에도 이러한 다양하고 드러나지 않은 연관들을 검토해야 한다. 플리바게닝 제도는 미국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배경에서 오랜시간 동안 관행을 통해 형성되고 활성화된 제도지만 미국에서조차 이론적 수준에서는 여전히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또한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변형이 이뤄졌기 때문에 미국의 플리바게닝 제도만으로 모든 제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플리바게닝이 우리의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원칙, 틀 안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지를 검토해봐야 한다. 이것이 긍정된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 어떤 형태로 도입해야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과 달리 우리는 형사소송의 1차적 목적을 ‘실체적 진실발견’으로 파악하고 있고 소송의 진행도 검사와 피고인이 대립하면서 주도하는 순수한 당사자주의가 아니라 법원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직권주의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형사사법체계에서는 형벌권의 행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가에게 위임되어 있다. 형사절차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체적 진실의 규명을 통한 정의실현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제도는 선(善)을 대표하는 국가와 악(惡)으로 표상될 수 있는 범죄자 간의 상호 어두운 거래 같은 낯설고 부적절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 다른 우려 사항들
  이외에도 관련자 상호이익의 합치를 통한 형사사법의 경제성 추구가 때로 ‘정의-실체적 진실’의 훼손을 가져오거나 협상절차에서 배제되는 피해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는 강간당했다고 주장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검사는 처벌을 위해 피고인과 협상을 통해 단순히 화가 나서 폭행했다는 자백을 받아냈고 법원은 뭔가 석연찮지만 사건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강간, 혹은 강간미수죄가 아니라 훨씬 가벼운 단순 폭행죄로 피고를 처벌한다. 이 사건을 두고 과연 이것이 정의인지, 형사처벌의 위협 아래서 무고한 피고인이 경한 처벌의 약속 때문에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되는 위험은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괜한 억지가 아니라 경찰이었던 피고인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로 1심, 2심에서 유죄 판결 받았던 실제 사건이다(93도2958 판결).
 
  이처럼 플리바게닝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위험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법무부의 개정안은 다분히 정치적 타협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 타당성을 평가하기 힘들다. 이것은 각자에게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불가피하게 희생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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