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유산의 새로운 패러다임
과학과 유산의 새로운 패러다임
  •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내장기전문가
  • 승인 2011.11.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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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영국의 스노우(C.P.Snow) 경은 캠브리지 리드 강연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단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심각하게 경고한 바 있다. “두 문화, 즉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된 방해물이 된다.” 스노우 경이 강조한 것은 두 문화의 극점에 물리학자와 문학자가 있는데 이들이 대화를 한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서로에 대해 무지하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노우는 비과학자들이 과학적 소양을 쌓아 두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역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즉 과학자들이 인문사회학적 이해를 넓힌다면 두 문화의 극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분리하지 않았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고대 그리스에서 유럽 중세시대를 거쳐 거의 근대에 이르는 많은 학자들이 과학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과학이 철학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지금과 같은 과학시대에 들어선 것이 뉴턴 시대보다도 후대인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였다고 인식한다. 이는 철학과 과학이 분리된 것이 겨우 2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자’라는 말은 1840년 영국의 자연철학자 훼엘(W. Whewell)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됐다. 그는 자연과학 분야의 지식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과학자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패러데이(Michael Faraday)의 탁월한 능력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으로 국한한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비록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조차 알지 못했지만 과학을 생활화하고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철폐되어야 할 부끄러운 유산으로까지 매도되고 있는 부작, 장승, 솟대 등 많은 민속문화의 존재이유는 이들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부단한 믿음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자신들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런 효과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다.
  믿음이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과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믿고 의지하고 보편화시킨 것이라면 굳이 현대라는 잣대로 보아 입맛에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이상하게 비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면 우리들의 것으로 간직할 만한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 말은 인문학으로만 보았던 우리의 정신문화들도 과학적인 측면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정보부족은 과학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들이 과학성도 없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제일 먼저 우리 유산의 제작 방법이라든가 작동 방법 등 과학적인 설명을 구체적으로 적은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내용은 한자로 적은데다가 그림도 많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것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수많은 자료들이 그동안의 전란이나 관리 소홀로 거의 파손되거나 멸실되었다는 사실이다. 기록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선조들이지만 전란이라는 악재 앞에 귀중한 자료라 해서 일일이 챙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다룰 수 있는 유산은 현재 우리들이 볼 수 있는 한정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일제강점기 위정자들이 필요에 의해 고의적으로 자료를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6년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시킨 것은 물론 중요한 유산들을 파괴하거나 훼손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들이 우리의 문헌이나 자료에 남아 있어 당초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많이 있다는 논란이 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네 번째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는 조상과 스승에 대한 숭배사상이다. 과학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학문인데 우리 조상들은 스승의 이론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는 것이 순리요 도리라고 보았다. 이것은 철저한 유교 관념과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과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유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릿고개란 말이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은 먹고 살기도 바쁜 터에 우리 것에 대한 과학성을 규명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걸작품들은 물론 소소한 과학적 기구들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유는 유산 자체가 우수한 이유도 있지만 과거부터 수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장단점이 분석된 자료가 워낙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것에 대한 기술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외국 것에 대한 정보가 가감 없이 곧바로 유입되었으므로 외국 것이 우리 것보다 더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보 부족은 과학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유산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적은 상태에서 어느 유산에 과학성이 있는가를 찾는 것이 보다 시급하다. 한국인이 우리 것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우선 과학과 우리 것을 먼저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유산을 포함하여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수된 우리의 것은 무(無)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이 태어난 후에 생긴 것이며 새로운 상황에서 항상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데서 묘미가 있다. 유산 등 우리 것은 미래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어야 할 것’을 예견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우리 것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과학은 문화를 지향하고 문화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삼는 통섭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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