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봄
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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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1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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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날씨치고는 참으로 얄궂기 짝이 없다. 4월 중순인데 동식물이 뭔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형국이다. 왜 그런가 하고 속내를 좀 들여다보면 이내 이해가 된다. 음력으로 3월 하순을 가리키는데 그게 끝나는 지점에 3월 한 달이 더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윤삼월이다. 그러니 꽃피는 중춘(仲春)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우주의 운행과 천기의 조화에 밝았던 조선(祖先)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하늘의 비밀에 밝았던 우리의 조선(祖先)들은 천재지변을 사람들의 잘못과 연결지어 이해했다. 특히 사람들의 우두머리인 군왕의 부덕과 천재(天災)를 결합하는 세계 이해 방식은 조선 시대까지도 지속되어 온 믿음이었다. 뻔히 자연계에 속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에 하늘의 명을 받았다는 왕권의 정체가 흔들리는 만큼 신하들은 이를 역이용해 왕을 견제하거나 갈아치우는 수단으로 삼을 줄도 알았다. 옛날에 그랬다는 얘기지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옛 군왕들이 지녔던 저 삼가는 마음, 저어하는 태도만큼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함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민심의 변화를 살피고 민초들의 가슴에 생긴 구멍의 연원을 잘 따져 그것을 메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연한 천벌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민벌을 만나게 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권위나 부를 많이 가진 이 나라의 지도자(층)들에게서 삼가는 마음을 찾아보기란 여간해서 쉽지가 않다. 규칙과 약속을 밥 먹듯 어긴 자가 최고 지도자가 되더니 그렇게 많은 쓴 소리와 손가락질을 받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들도 맑을 까닭이 없다. 애초에 견주어 삼갈 양심이나 법규 따위를 다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자신들의 지역적 이익과 연관 있다고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이들이 나서서 명백한 표절 행위자나 제수 성폭행 혐의자를 국회의원으로 뽑기도 한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이 모든 사태의 뒷배에는 참다운 권위나 명예 혹은 올곧은 가치와 같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늘 추켜세워야 하는 덕목들 대신에 냄새 나는 돈다발을 수전노 굴비처럼 이마 위에 걸어두고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온 천박한 근대 백년이 가로놓여 있다. 청맹과니 개발주의와 무자비한 경쟁주의가 그것의 다른 이름이다.

  이 목마른 정치 과잉의 계절을 제대로 건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있다. 근대 백년의 중심에서 가장 많은 것을 누려 놓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저 특정 지역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식자연(識者然)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책임 의식이라는 내파(內破)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김부겸, 유시민을 지도자로 높이 받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문제의식을 지역의 문제의식으로 발효시켜야 제대로 된 사람 구실, 식자 구실을 하게 되리라는 뜻이다. 맺은 자들이 나서서 제대로 풀어주어야만 진짜 봄이 온다. 벚꽃엔딩을 마음 놓고 즐겨도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봄날이 진짜로 오게 되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 울고 싶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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