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시간
사랑할 수 없는 시간
  • 김수경 미디액트 창작지원팀장
  • 승인 2012.05.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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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의 지하 벙커에서 젊은 장교 김훈이 죽었다. 사망 이후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당국의 조사는 젊은 장교의 사망과 관련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김척)는 11년 동안 매일같이 죽음의 흔적을 쫓았다. 아들의 시신, 사망현장, 혈흔, 무기를 바라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국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점점 줄었다.

  그 즈음 김희철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다룬 전작 <진실의 문>을 완성했지만 영화의 힘은 작았고 유족의 슬픔은 더욱 커져갔다. 감독 자신의 삶을 영위하며 10여년을 유족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건의 무게가 감독을 짓눌렀고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몸부림치는 유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적잖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동일 사건을 다룬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효과나 동기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았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감독의 성정을 사람들은 헤아리지 못했다.

다큐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의 한 장면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은 김척에 대한 김희철의 기록보다는 김척과 김희철의 동행기에 가깝다. 영화 초 반 김척과 김희철은 어딘가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공동의 여정을 시작한다. 기차 안, 김척의 인터뷰는 작품 전체를 에워싸는 구성상의 한 축으로 자리한다. 이 때 김척을 김희철이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않은 김척과 김희철을 제3의 카메라가 촬영한다. 김희철은 이 작품의 감독이자 동시에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그는 사건과 관객 사이에서 관객을 향해 질문한다. 나아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문을 읽는 김희철의 내레이션은 수차례 의혹을 제기하는 김척의 진정과 조우하며 조사 결과의 불합리와 무성의함을 드러낸다. 실제의 사건에 제작과정을 결합하여 영화적 이야기로 완성하는 것. 이를 통해 감독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조명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영화는 죽어버린 14년 전의 기억을 불러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죽음과 연결한다.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은 김훈 중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다만 그 의문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 누군가의 죽음을 대하는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을 사는 우리 모두의 태도.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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