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명예훼손
언론과 명예훼손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2.11.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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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지방도시의 시장이 그 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논설위원 두 명과 기자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시장은 논설위원들이 쓴 칼럼과 기자가 쓴 기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소송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취임 때부터 특별히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시장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명예훼손 소송을 두고 입 잔치를 벌였다. 시장은 지난 여름에도 두 논설위원의 칼럼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역 시민사회는 쓴소리에 자신의 귀를 닫고 바른 소리하는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며 시장을 성토했다.

  고위 공직자가 언론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은 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해 달라며 형사 고소했다. 결혼을 앞둔 젊은 여자 PD를 비롯해 여러 명의 제작진들이 형사 재판을 받았으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 그리고 대법원은 한결같이 <PD수첩>의 취지는 졸속 처리된 미국산 수입 쇠고기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있다며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머쓱해진 정 장관 등은 무죄를 선고한 법원을 소리 높여 비난했으나 상당수 명예훼손법 전문가들은 무죄 판결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고 평가했다. 왜 그렇게 봤을까?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우리나라의 법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일반시민과 공직자들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매우 촘촘한 그물망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형법에서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적시해서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고 있다. 또한 ‘허위의 사실’을 공공연하게 적시할 때는 가중처벌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온라인상에서 비방을 목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엄중히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저작권법과 언론중재법, 공직선거법에서도 명예훼손이나 타인을 비방한 데 따른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2005년 제정된 언론중재법은 언론의 사실보도로부터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려는 입법 목적을 갖고 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피해도 구제의 대상이 된다.

  명예훼손법과 언론의 책임
  이러한 명예훼손법 구조에 비춰볼 때 취재보도 과정에서 언론이 져야 할 법적인 책임은 매우 무겁다. 취재 당시에는 보도 사실이 진실한 것으로 믿었으나 시간이 흐른 뒤 결과적으로 진실이 아닌 것, 즉 허위로 판명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시시각각 촌음을 다투는 언론보도의 특성상 언론은 ‘거의 완벽할 정도’의 진실만을 보도하기가 어렵다. 또 수사기관처럼 법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해 개인의 행적을 샅샅이 훑어볼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언론인은 보도시점에서 보도내용이 진실할 것으로 ‘확신’하긴 하지만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확인’된 상태에 이르지 못할 때가 태반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공사안을 다룰 경우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그 내용을 보도해야 한다. 취재대상이 언론의 보도를 방해하거나 언론 스스로 완벽한 진실을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언론은 제기된 의혹을 취재보도 할 책무를 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의 성숙한 여론을 토대로 유지·발전해 가는데 언론이 여론정보의 조달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언론을 민주주의의 생명선으로 부르기 위해서는 언론의 취재·보도 과정에서 허위가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까닭이다.

  언론을 상대로 제기된 민·형사상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이 지지 않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보도 내용이 진실하고 그것이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진실성 면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언론이 취재보도 과정에서 진실한 것으로 확신한 사안이 허위로 판명될 경우 액면 그대로 언론에 법적 책임을 적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규범 조화적으로 태어난 법적 판단의 기준이 이른바 ‘진실 오신의 상당성’이다. 결과적으로 언론의 보도가 진실이 아니긴 하지만 언론의 취재보도 과정에서 언론이 해당 사안을 진실한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그 보도가 ‘진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1988년 ‘상당성의 법리’를 도입해 언론을 상대로 제기된 명예훼손 소송에 적용하고 있다.

MBC <PD수첩> 사건은 여론을 들끓게 했다. (출처 : TV미디어)

  명예훼손 소송과 언론의 자유 보장
  그런데 언론의 보도 때문에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들 중에는 고위 공직자나 사회적으로 알려진 공적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일반시민들도 다수 섞여 있다. 공직자나 공적인물들은 그들의 사회적인 역할이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다. 언론매체를 활용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일반시민들에 비해 훨씬 많다. 기관의 홈페이지나 홍보수단을 이용해 언론의 보도내용을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직자 및 공적 인물들과 일반시민들을 구분해 판결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또 언론의 보도내용이 공적사안이라면 일반인들의 사적사안과 분리해서 언론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배경에서 태어난 명예훼손 소송의 새로운 법리가 바로 ‘공적인물·공적사안’이론이다. 1999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언론의 자유와 명예보호의 한계를 설정할 때 언론의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물인지 아니면 사적인물인지, 보도내용이 공적사안인지 아니면 사적사안인지,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언론의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법리를 2002년 1월 월간지 <한국논단> 사건에 적용해 공적인 존재에 대한 의혹 제기가 공적인 존재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봉쇄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다. 나아가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이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달성될 수 있다고 판시해 왔다. 더불어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 업무처리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 역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사건현장에 가보지 않거나 취재원에게 전화 한통 걸어보지 않은 채 익명의 제보자가 건네 준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 경우까지 언론을 면책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언론이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보도할 경우, 그리고 그 보도의 내용이 사회적으로 공공성을 가지고 있을 때 언론은 명예훼손 소송에서 면책될 가능성이 크다. MBC <PD수첩> 제작진들에 대한 명예훼손죄 형사소송과 여러 건의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작진들이 결코,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가정책과 사회적 비리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 보도, 그리고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철저한 검증 취재 모두가 언론의 엄정한 책무에 속한다. 언론이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법적 책임을 벗어가는 지름길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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