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사재기하는 출판사와 기획사
은밀하게 위대하게 사재기하는 출판사와 기획사
  • 류지형 기자
  • 승인 2013.10.08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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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원 사재기 사회적 논란, 출판계·가요계의 노력 요구돼

   얼마 전 인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책 사재기가 큰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온라인 음원 사재기 논란도 뜨겁게 일고 있다. 기획사가 음원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온라인 음원 사이트의 음원차트 순위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음원 사재기는 공정한 경쟁을 막아 출판계·가요계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음원 사재기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뤄지며 공공연한 문제임에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입소문이 아닌 손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서점에 들어서면 중앙에는 어김없이 ‘베스트셀러’ 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베스트셀러란 일정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인기 서적을 지칭하며 베스트셀러라는 이름표는 책 내용의 보증 수표가 되어 소비자들의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출판사들은 자사가 출간한 책들을 베스트셀러에 올리기 위해 책 사재기를 하고 있다. 책 사재기란 출판사가 출간한 책을 서점에서 다시 구입해 판매량을 조작하는 것을 뜻한다. 모 출판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부터 일부 출판사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사재기를 해왔다”며 ‘책 사재기’가 출판업계의 공공연한 관습임을 밝혔다.

  지난 5월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현장 21>은 출판사들의 책 사재기가 왕왕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출판사 ‘자음과 모음’을 지목해 황석영 작가의 <여울물 소리>,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의 작품에 사재기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 직후 강병철 전 자음과 모음 대표는 자진 사퇴했으며 황 작가는 방송을 통해 자음과 모음에 책 절판을 요구하고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난 8월 자음과 모음 황광수 신임 대표는 자체 조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사재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반론 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위 사건은 현재 진위 파악 중에 있다.


대형서점 판매정보 공개 안해,
출판사 수백 권씩 다시 사들여
  베스트셀러는 출판사가 아닌 대형서점을 통해 집계된다. 그러나 대형서점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들어 판매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출판사들은 개인 앞으로 수십, 수백 권의 신간도서를 반복 구매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왔다. <현장 21>에 따르면 책을 대량으로 반복 구매한 사람들을 찾아가니 주소가 존재하지 않거나 구매자 자신이 거래 내역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검찰·공정위 책임 미뤄, 처벌 규정 또한 약해
  사재기 논란에 휘말렸던 황석영 작가는 지난 5월 기자회견을 통해 출판계의 사재기 관행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관련 사안이라 수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공정위는 책 사재기를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행위로 규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검찰 측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이를 법리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 이처럼 책 사재기는 공공연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재기 적발 시 책임지고 수사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처벌 규정 또한 미미하다. 현재는 ‘사재기가 적발된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행정 처분이 전부다.


음원사재기 비밀리에 성행,
의혹만 있을 뿐 실체는 없어
  음원차트를 장악하기 위한 가요 기획사들의 음원 사재기 방식도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요즘에는 오프라인에서 음반을 사기보단 온라인에서 음원을 사는 것이 더 보편화된 시대로 다양한 온라인 음원 유통 업체들이 활성화돼 있다. 이들이 사재기를 통해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횟수를 증가시킨 음원 순위를 기반으로 한 음원차트는 음원 판매량에 영향을 끼친다. 또한 음원차트의 상위 목록에 포진된 음원은 대중들로 하여금 ‘인기 있는 음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 해당 가수의 인지도 상승에 기여한다. 이는 방송 매체 프로그램 출연 기회로 이어져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특히 소속 가수의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중소기획사들을 중심으로 음원 사재기가 이뤄진다. 이처럼 투자액 대비 효율이 높은 음원 사재기는 가요계에서 수년 전부터 성행해왔다. 이미 모 방송사가 음원 사재기 브로커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지난 8월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4대 대형 기획사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음원 사재기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의혹만 계속될 뿐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음원 사재기 문제의 공론화는 어려운 실정이다.


음원 사재기 브로커들, 어뷰징 수법 사용
  음원 사재기는 연예 기획사와 암암리에 활동하는 대행 브로커가 손을 잡고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특정 음원을 비정상적으로 반복 구매·재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브로커는 다수의 ID를 확보한 뒤 음원 스트리밍 이용권을 대량 매입해 특정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올린다. 보통 3분짜리 음원을 하루 종일 재생해도 총 480회로 음원 재생 횟수가 한정돼 있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한 ID로 하루 수 천회 이상 스트리밍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한 일간지가 입수한 모 대형 유통사의 ‘음원 사재기 대응 계획’ 내부 문건에 따르면 브로커는 주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등재를 주업으로 삼는 일명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다. 이들은 인지도 있는 가수의 경우에는 3억 원을, 신인 가수의 경우에는 5억 원을 받고 새 노래를 음악차트와 방송 프로그램 인기 순위에서 10위~20위권 안으로 올려준다고 한다.


책·음원 사재기 공론화, 각 계 근절 방안 마련
  국내 대형 기획사들이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후 음원 사재기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음원 사재기 근절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고 국회의원들은 관련 방지법을 발의했다. 문체부는 음원 사이트 내의 추천 제도를 개선하고 음악 차트 순위 집계 방식을 변경할 예정이다. 또한 음원 사재기 기준을 마련해 사재기라고 판단되면 저작권 사용료 정산에서 제외하고 이를 위한 관련 법안 마련도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당도 음원 사재기를 하거나 이를 방조할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와 영업 폐쇄 및 등록 취소 등의 행정 처분을 받게 되는 내용의 법률안을 발의했다. 또한 출판유통심의위원회에서는 책 사재기를 막기 위해 최근 법무법인 화우에 ‘사재기 의혹 조사를 위한 개인정보 제공·이용에 관한 법률’ 검토를 의뢰했다.


대응 방안 비현실적, 자체적 노력 촉구
  그러나 일각에서는 각 계의 대응 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음원 차트 순위 중심으로 방송의 출연 여부가 결정되는 현실에서 기획사들이 사재기 유혹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음원 가치가 작은 우리나라의 음원 시장 현실은 브로커들이 쉽게 사재기에 나서게 한다. 책 사재기 또한 출판시장의 불황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판사가 발행한 책의 발행부수는 8,690만 6,643부로 작년에 비해 20.7% 감소했다. 또한 온라인 서점의 판매 부수마저 떨어져 적은 부수로도 베스트셀러 진입이 쉬워졌다. 이로 인해 신간 도서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 비용보다 사재기 비용이 적어 책 사재기가 더욱 성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대학에서 ‘대중음악평론입문’ 강의를 진행 중인 전현욱 강사는 “사재기는 공정한 경쟁을 막아 뮤지션뿐 아니라 가요계 종사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며 “근본적 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만큼 사재기 현상을 근절하기 위해선 법적 규제보다는 가요계의 자율적인 노력이 촉구된다”고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음원 사재기 근절대책 발표

<음악차트 순위조작 유인 제거>
△음악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OPS)의 음원 추천제도 개선
·차트 내 추천을 통한 ‘끼워 팔기’ 삭제
·추천 기능을 위한 별도의 ‘추천’페이지 신설 및 선정기준 공지
△‘가온차트’비롯한 주요 음악차트 공정한 차트로 개선
·스트리밍 대신 다운로드 중심의 차트로 개선
·1일 1아이디 반영횟수 제한
·짧은 음원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실시간 차트’지양
△‘음악산업진흥법안’에 음원사재기 금지 및 제재조항 신설 추친
·음악관련 협회 및 단체에 모니터링 실시 및 자정 노력 촉구
·방송사에 자체적인 대책 마련 협조 요청

<저작권사용료 수익기회 박탈>
△음악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의 자발적 대책 수립 및 모니터링
·서비스이용단계에서 기술적 조치 등 사전 예방대책 마련
·가입자당 아이디 수 제한, 추적이 어려운 결제수단 한도 제한
△문체부-권리자-온라인 서비스 사업자 간 음원 사재기 기준 마련, 적발 시 저작권 사용료 정산 제외
·평균 이용횟수, 최대이용횟수 등 고려
△음원 사재기 적발 시 저작권 사용료 정산 제외에 관한 사항을 ‘권리자-온라인 서비스 사업자’간 이용계약 및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소비자’간 이용계약에 반영
* 문화체육관광부 좥음원 사재기 근절대책, 2013, pp.<붙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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