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 잊혀진 1960년대 소녀들의 왕자님
시간 속에 잊혀진 1960년대 소녀들의 왕자님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3.11.19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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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전까지만 해도 소녀들 사이에서 아이돌 ‘오빠’가 아닌 국극배우 ‘언니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여성관객이 주 수요를 이루고, 여성이 만들어가는 순수한 여성의 문화인 ‘여성국극’이 어떻게 흥하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소개한다.


 

여성국극의 인기 비결,
여심을 자극하는 사랑과 미학
  여성국극은 1948년 국악원에서 떨어져 나온 30여 명의 여성 국악인들이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에 뿌리를 둔다. 1948년 10월 창립공연 <옥중화>를 무대에 올린 여성국악동호회는 이듬해 <햇님달님>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다수의 여성국극단으로 나눠지고 일반 창극계를 압도하는 인기를 얻는다.
여성국극은 형식적 측면에서 판소리의 창과 전통연희놀이의 연기, 춤 등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다. 여성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우아한 창과 무용은 기존 창극과 차별화되는 여성국극만의 개성이자 경쟁력으로 여성국극의 인기를 지탱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주로 설화와 전설을 사랑과 이별 중심으로 재구성해 다뤘다. 권선징악의 행복한 결말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점이 여성들의 감수성에 부합했다는 것 또한 당대 인기의 비결이라고 볼 수 있다.

언니들의 눈부셨던 황금기와
급격하게 찾아온 몰락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여성국극의 인기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식지 않았다. 당대 최고 인기 남장 국극 배우였던 고 조금앵 선생이 여고생 팬의 간절한 희망으로 가상 결혼식을 올렸던 일은 당시 여성국극의 놀라운 인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이밖에도 팬이 혈서를 써 보내고 남자 역할의 배우를 납치하거나 배우와 연인 사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비관해 자살한 일화는 당시 여성국극의 드높았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여성국극은 1960년대 텔레비전과 영화의 보급으로 위기를 맞는다. 뿐만 아니라 인기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여성국극 상연 극단은 배우들을 분산시켰고 그에 따른 공연의 질적 저하는 관객들을 여성국극에서 멀어지게 했다. 또한 여성만으로 이뤄진 극에 대한 남성중심 사회의 가차 없는 폄하로 여성국극은 위축됐다.
1970년대 초반에 추진된 전통문화 보존 사업은 여성국극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사이비 공연이라는 남성국악인들의 폄하 속에 무형문화재 선정에서 배제된 여성국극은 다른 전통문화예술이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 뒤에서 소외된 채 쇠퇴해간다. 이후 여성국극은 1960년대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가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여성국극, 재도약을 꿈꾼다
  옥당국극보존협회 회장인 이옥천 명창은 “국악계의 예인들 중 과거 한 번쯤 여성국극계에 몸담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국극은 1950~60년대 우리 국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예술”이라며 여성국극이 국악계에서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여성국극은 지원 부족으로 인해 1년에 한 번, 2~3일에 걸친 정기공연만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2006년 정기공연 <견우와 직녀>에서부터 올해 8월 공연된 <사도세자>까지, 여성국극은 미미하지만 강인하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국극보존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국극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비롯해, 올해 4월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의 개봉이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등 여성국극을 부흥시키려는 움직임 역시 계속되고 있다. 여성국극이 긴 겨울을 이겨내고 여성들의 공연예술로서, 전통 종합예술로서의 가치를 지켜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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