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로 세상 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기에
[네모로 세상 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기에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4.03.31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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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

  육교 하나를 경계로 속세와 단절된 고시생들의 세상, 노량진 고시촌에서는 길 가는 사람들 모두가 두 손을 들여다보며 걷는다. 이동하는 시간도 아까워 공부할 것을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성냥갑 같은 노량진 고시원의 쪽방은 그 흔한 TV하나 없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있다. 다큐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수능에 재도전하는 사람부터 공무원 시험, 공인중개사 시험, 임용고시, 사법고시 등 각양각색의 시험을 목표로 하는 노량진 사람들의 3일을 그린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젊은 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미래에 바치는 사람들. 고시촌에 처음 입주한 24살 가연 씨는 이삿짐을 옮겨준 가족들이 돌아가자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멀어져가는 이삿짐 트럭을 눈으로 쫓으며 잘할 수 있다고 되뇌는 그녀의 눈물이 고시촌 생활의 무게를 대변하는 듯했다.

  계속되는 경기불황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고시라는 현대판 등용문에 매달리게 됐다. 그 결과 탄생한 도심의 섬 노량진 고시촌,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공부 이외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미래를 위해 그들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뿐’이라는 나레이션은 취업을 위해 젊음도 허락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각박함을 새삼스레 곱씹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젊음이 고시촌 밖 사람들의 그것과 다름없이 빛난다고 말한다. 저당 잡힐 미래라도 있는 젊은이기에 꿈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종이에 ‘내가 경찰이 돼야 하는 이유’를 적어 힘들 때마다 들여다보는 경찰공무원 준비생 천호영 씨처럼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을 가진 그들은 고시원 방 한 칸에 젊음을 묻었다.

  43분짜리 영상에 압축된 노량진의 3일을 지켜보는 내내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노량진이, 아니 노량진을 탄생시킨 고시가 없어진다면 그들은 어딘가에서 저마다 다른 꿈을 찾아 자신이 있을 곳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무작정 노량진 밖으로 내몰기에는 우리 사회에 그들을 위해 준비된 자리가 너무나 적은 것 같았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한 평짜리 방에서 추레한 운동복을 입고, 온종일 공부에 매진하는 그들이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설령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꿈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할 것이다. 백 년에 한 번이라도 용이 나는 개천이 있기에 그들은 한 평짜리 고시원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우주를 꿈꿀 수 있다.

서울의 하늘은 참 맑아
내 츄리닝 바지는 꼬질꼬질
나는 왜 고향을 떠나와
차가운 주먹밥을 먹나
흰 벽에 창문을 그려본다
저기 갈매기 떼가 날 부르는 것만 같아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려
한 평짜리 나의 꿈, 나의 우주
힘내요, 노량진 박
당신 아직 젊지 않수?
힘내요, 노량진 박
네버, 네버 기브업

사이 - <힘내요 노량진 박>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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