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여섯 개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 손혜경 기자
  • 승인 2014.05.12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비와 과시가 주가 되는 문화, 그래도 젊음은 가득했다

  <서울기행 - 서울의 문화, 그곳을 찾아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기획이다. 기자는 이번 기획을 위해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서울시내 세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을 홈그라운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세 명의 젊은이를 만났다. 그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 곳은 어떤 문화를 품고 있을까? 또 그곳들이 세 젊은이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 번쯤 찾아가 보고픈 풍경을 상상하며 대학로, 홍대, 강남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꿈꾸는 청년 김 군이 바라본 대학로

  굳게 닫힌 문을 연다. 밤새 적막함과 약간의 먼지가 내려앉은 대기실의 불을 켠다. 지난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의상과 소품들을 한 곳에 두고 비질을 시작한다. 비로소 대학로 아마추어 극단의 단원, 김 군의 하루도 시작된다. 

  “요즘엔 소규모로 진행하는 예술연극에는 관심이 많이 없어. 여기에 연극 보러 온 십중팔구는 유명한 배우나 개그맨들이 주인공인 극장으로 발을 돌려. 아니면 저기 가까운 영화관에 간다거나.”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극단에 들어왔다는 김 군. 아직 단역 한두 개를 겨우 맡는 정도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 그만큼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는 대학로 문화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계속 지방에 살았으니까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대학로에 대한 환상,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막상 와보니 말 그대로 ‘환상’이었던 거지.”

  1975년 이전 서울대 캠퍼스가 혜화동, 동숭동 일대에 있었을 때부터 불려온 ‘대학로’라는 명칭은 그 명성에 걸맞게 학생운동과 대학문화의 중심지였다. 이후 서울대가 관악구로 옮겨가면서 대학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마로니에 공원과 각종 소극장, 미술관 등 예술 공간이 들어섰다. 대학로는 건강한 대학문화가 발전하고 젊은이들의 예술의 혼이 피어나던 보물 같던 곳이었다. 특히 대학로 이곳저곳에 포진한 자그마한 소극장들은 유명한 배우, 희극인 등을 무수히 배출해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학로의 모습도 함께 변모하기 시작했다. 대학로가 하나의 도심 속 관광지로 자리 잡으면서 방문객들을 이끌기 위한 각종 카페, 프랜차이즈 음식점, 주점 등이 거리를 채워갔다. 대학로의 소란스럽고 화려한 변신이었다.

  “내가 꿈꿔왔던 대학로는 젊은 사람들의 문화가 숨 쉬고 비주류문화도 주목받을 수 있는 곳이었어. 그런데 지금 보면 다른 상권들이랑 다를 게 뭘까 싶어. 그래도 계속 여기 있고 싶은 이유는 아직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까.” 서울 내 여느 곳이 그렇듯 대학로는 예전의 모습은 잃어버린 듯 뒤로 감춘 채 화려한 간판들로 치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로는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흥사단 본부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살던 이화장, 반세기 동안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학림다방 등 대학로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서울의 오랜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하에는 김 군처럼 푸른 꿈을 안고 대학문화의 성지로서 대학로의 부활을 기대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소비를 소비하는 사람들
  서교동 주민 홍 양이 바라본 홍대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카페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홍 양은 다니던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와 학원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여타 대학생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알바몬’ 신세다.

  “내가 일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실 음료나 디저트나 싼 값이 아닌데 쉴 새 없이 계속 팔려.” 
홍 양의 눈에 비친 20대들은 ‘소비’를 즐기고 있었다. 값 비싼 음료를 기다리고, 예쁘게 장식된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면서도 카페 풍경과 음식에, 그리고 서로에게 향한 카메라 렌즈는 분주하게 그들의 소비를 담아냈다. 홍 양이 일하는 곳 이외의 공간도 마찬가지다. 세 네 걸음 간격으로 줄지은 카페마다 대학생들, 젊은이들로 그득했다. “대학교 앞이다 보니까 대학생들을 자주 봐. 그럴 때마다 참 대학생들이 하고 놀 게 없구나 싶어. 다른 곳도 아니고 ‘홍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문화라곤 차 마시고 술 마시는 거잖아.” 

  홍익대 주변의 거리와 상권을 이르는 ‘홍대’는 90년대 후반 인디문화와 비주류문화의 발상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홍대가 ‘소비’의 공간이라면 과거의 홍대는 ‘생산’의 공간이었다. 홍대 앞에서는 홍익대생들뿐만 아니라 서울 이곳저곳에서 모인 젊은 예술가들이 실험정신을 표출하고 자유를 만끽하곤 했다.

  생산에서 소비로, 시대가 흐르고 홍대를 ‘노다지’로 여기는 거대자본, 대기업들이 홍대에 발을 뻗치면서 젊은이들이 스스로 만들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범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커피와 수다를 곁들이고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유명 맛집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그것이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전부인 그런 곳으로 홍대는 변해 있었다.

  “여기를 자주 찾는 사람으로서, 또 근방 주민으로서 홍대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어. ‘홍대’ 두 글자를 듣기만 해도 뭔가 신선하고 파격적인 것들이 떠오르는 그런 곳으로 말이야.” 말을 마친 홍 양은 밀려오는 손님을 받기 위해 다시 포스기 앞으로 향했다.


  ‘어른이’들을 위한 놀이터
  올빼미족 박 양이 바라본 강남

  누가 하루의 시작을 아침이라 했던가? 남들이 침대에 누워 하루를 곱씹을 때 침대에서 일어나고, 모두가 잠에 들 때 하루를 시작하는 이가 있다. 강남 한 클럽의 파티팀 멤버로 활동 중인 박 양이다. 몇 주 꼴로 크고 작은 클럽에서 파티를 기획하는 박 양에게 강남은 집보다 더 집 같은 곳이다. “사실 밝은 강남보다는 어두운 강남이 더 익숙해. 그리고 그게 ‘진짜’ 강남의 모습 같아.” 강남역 10번 출구를 나서면 큰 대로를 가운데 두고 각종 브랜드 의류점과 음식점, 학원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차 소리와 사람 소리로 소란스러운 중심지를 약간만 벗어나면 또 다른 강남의 문화를 누리는 박 양과 사람들이 있다. 세련된 외관의 클럽 안에서 파티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본래 강남 지역은 오늘날의 세련되고 ‘럭셔리’한 이미지와는 먼 곳이었다. 한강 수변 저습지에 불과했던 강남은 1970~80년대 강남 개발정책과 함께 서울의 새로운 도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각종 문화·예술 공간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는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인기와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부자 동네’로 불리며 고급문화를 자랑할 것만 같은 강남의 이면에는 역동적이고 대중적인 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이후 성행한 클럽문화이다. 강남에는 여전히 클럽을 중심으로 밤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박 양처럼 파티팀이나 특정 그룹을 만들어 클럽문화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클럽에 상주하다시피 하면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 ‘죽돌이’ ‘죽순이’냐 묻기도 하고. 그런데 이곳에도 나름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이 활동을 하면서 얻는 것도 많아. 술 마시면서 흥청망청 노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박 양이 말하는 파티팀은 단순히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 이상이었다.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구축하는 문화의 주체였다. 또 그들에게 강남은 놀이터이자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내는 공간이었다. 이렇듯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강남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던 이들은 기자에게도 참 반가운 존재였다. 오늘도 “아쉬움 없이 즐겼다”는 박 양은 밝게 떠오르는 해를 뒤로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