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학술 - 나는 깨어 있었어요
영화로 보는 학술 - 나는 깨어 있었어요
  • 이관우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 승인 2014.05.12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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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영화 <리턴 (Return, 2007)>

  영화 <리턴>의 주인공 나상우(김명민 분)는 10살에 심장병 수술을 받던 중 마취가 풀려 수술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수술 중 각성’을 겪는다. 그는 극심한 고통의 기억으로 성인이 돼서까지 이상행동을 보인다. 그렇다면 수술 중 각성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현상에 노출됐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실제로 존재하지만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수술 중 각성에 대해 알아보자.


 

 
   1979년 <영국마취과학잡지(British Journal of Anaesthesia, 1979;51)>에는 편집자 이름으로 수술실에서 일어난 엄청난 이야기 하나가 보고돼 있었다. 그것은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한 여의사가 익명으로 기고한 글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여의사는 전신마취를 당해 수술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주고받는 말, 의사와 간호사의 수술하는 움직임들, 그리고 마취과의사의 중얼거림과 주사약을 투여하는 것 등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의사의 의식은 전신마취로 제왕절개수술을 받는 내내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 기고문의 제목은 <계속 깨어 있었어요(On Being Aware)!>였다. 마취과의사는 전신마취를 했고 산부인과 의사는 마취된 것을 믿고 수술을 했는데 수술을 받는 환자는 의식이 깨어서 모든 말들을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환자는 산부인과 집도의가 “다 준비됐어?”하며 메스로 자신의 배꼽부위를 잡아당기며 피부를 가르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곁에 있던 조수의사가 집도의의 긴장을 줄여주기 위해 하는 농담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환자는 자신도 의사였기 때문에 지금 자기를 눕힌 수술대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집도의에 의해 배가 피부, 지방질, 복막 순으로 활짝 열려지고 손이 배  속으로 쑤욱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배 속으로 들어온 손은 창자를 위로 밀어올리고 자궁을 힘껏 노출시키고 있었다. 이때는 정말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느낌이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잠시 후 배 속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쑤욱 끄집어 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응애”하고 힘차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아기가 나온 모양이었다.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 쪽으로 얼굴을 돌리려 했지만 마취 때문에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배 속으로 거즈들이 무수히 드나들었다. 흡인봉이 배 속을 마구 휘저으며 남은 피들을 빨아내고 있었다. 간호사가 생리식염수를 배 속에 가득 부어넣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동안 환자는 가만히 누운 채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평생보다 더 긴듯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술이 깨끗이 끝난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환자는 거짓말 같은 현실에 안도했다.

  그러나 그 순간 환자는 ‘그런데 이게 정말 어떻게 된 일이지? 전신마취를 했는데 의식이 이처럼 멀쩡하다니!’하고 자신이 감각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완전마취 상태에서도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됐다. 자신의 의학적 지식으로 생각할 때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환자는 그 순간 뭔가 그들에게 이 중대한 일에 대해 사인을 보내기 위해서 어려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깨어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이 조금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다리 쪽에서 소리쳤다. “선생님, 환자가 다리를 움직이는데요!” 그러자 마취과의사는 “응” 한마디 하고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이 팔에 근육이완제를 한 방 놓고 말았다. 그 주사의 효과로 이제는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게 됐다.

  그 여의사 환자가 수술에서 회복한 후 자신이 경험한 그 놀라운 사실을 자세히 기록해 보고한 것이 <나는 깨어 있었어요(On Being Aware)> 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이것은 전신마취수술 중 환자의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세계 최초의 보고서였고 그때까지는 없었던 전신마취의 불완전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물이 됐다. 그 내용은 의료계에 큰 충격이었다. 수술과 마취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회오리처럼 일어났다. 결론은 전신마취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마취 중에도 환자의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의 입증은 수술실의 의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후로 수술실에 불문율 하나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모든 수술멤버들은 어떤 경우에도 말조심을 하라는 것이었다. ‘안심하지 마라. 환자는 너의 말을 다 듣고 있다’는 말은 지금도 수술실에서 그대로 교육되고 있다.
  
오늘날 전체 수술환자의 1~2% 정도가 수술 중 각성상태나 그 외 환각상태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전신마취 중 각성상태’라고 부르는 불완전한 마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수술 중에도 환자들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입증된 사실로서 어떤 환자들에게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하고, 의사들도 환자들에게 그 가능성에 대해서 사실대로 알려줄 의무가 있다. 환자들이 수술 중에 각성상태를 경험하는 정도는 상당히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환자도 있지만 음성이나 통증과 같은 일부분의 감각이 각성된 경우가 더 많다. 어떤 환자들은 환각증세와 같이 사실과 다른 기억을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 현대마취학에서는 이러한 환자들을 고려해 보다 강력한 마취제를 사용하며 강력마취제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충분한 기억상실효과를 일으키는 마취약제들을 투여하고 있다. 그러나 마취 중 각성상태에 관한 세계적인 논문들을 보면 그 어떤 마취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전체 수술환자의 1~2% 정도는 수술 중 각성상태나 그 외 환각상태와 같은 불완전한 전신마취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보고에 따라서 10% 이상을 말하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전신마취 중의 각성상태를 경험하기 쉬운 환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강력한 마취제를 충분히 사용하면 위험해 최소한의 마취제만 사용하거나, 안전을 위해서 마약제제를 주로 사용해 수술을 진행해야만 하는 경우들이다. 예를 들어 제왕절개수술을 받는 산모는 태아의 안전을 위해 얕은 마취를 하므로 그 가능성이 높고, 교통사고 등의 출혈이 심한 상태에서 급히 수술을 받게 되는 응급수술환자들은 심폐기능악화방지 때문에 얕은 마취술을 이용하며 심장수술과 같은 대규모 수술의 경우 강력한 마약성 약제를 주로 이용해 마취를 실시하므로 전신마취 중 각성상태가 잘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병원급 이상의 병원(의원급 개인병원 제외)이 약 700개 이상이며 서울에서만 평일 하루 수술환자가 약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많은 수술환자 중에서 수술 중에 깨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또한 그중 심각한 정신적 충격이나 환각현상 등의 후유증을 앓는 경우는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한 경우 이들을 위한 적절한 치료나 보상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요즘은 강력한 마취제 및 기억상실제가 있어 심한 각성문제를 호소하는 환자는 거의 없지만 만일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의사에게 사실을 알리고 적절한 설명과 필요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얌전하고 소심한 우리나라 환자들이 수술실에서 나오며 당당하게 “나는 깨어 있었어요!”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선진의학이 더 빨리 꽃피울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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