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시장에서 살아있는 서울을 느끼다
도심 속 시장에서 살아있는 서울을 느끼다
  • 손혜경 기자
  • 승인 2014.06.1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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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한 서울 도심, 주말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무지개빛 활기가 피어오른다. 바로 커다란 빌딩 숲 사이에 숨어있는 도심 속 시장들이다. <서울기행-서울의 문화, 그곳을 찾아서> 두 번째 기획에서는 서울 도심 곳곳 보석 같은 시장들을 찾아가봤다.


 

 

 

                                                         

 

  창작과 예술과 소통의 공간
  홍대 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런던에 포토벨로 마켓이 있다면 서울에는 ‘홍대 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있다. 화창한 토요일 점심, 홍대 프리마켓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더 많다는 홍익어린이공원을 찾았다. 물건을 진열하는 판매자들, 손에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 삼삼오오 모여 상점을 구경하는 사람들. 어린이공원은 마치 시골 5일장이라도 열린 듯 북적거렸다. 한쪽에서는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고사리 손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아이들도 보였다. 올해 프리마켓 주제인 ‘손으로 만드는 세상’의 프로그램 중 하나란다.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인 후에는 작게 마련된 ‘애프터눈 스테이지’에서 거리악사들의 흥겨운 공연까지 이어졌다. 저마다 구입한 창작품을 손에 든 방문객들은 아픈 다리를 달래면서 시장을 둘러싸는 음악에 흠뻑 빠졌다.

  한창 월드컵의 열기로 뜨겁던 2002년 6월, 홍대 프리마켓은 ‘일상과 예술의 만남’ ‘창작자와 시민의 소통’이라는 기치 하에 첫 선을 보였다. 이후 무려 1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되며 국내 최대 규모의 대안 창작시장으로 등극했다. 홍대 프리마켓이 다른 시장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무엇보다 ‘창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대량생산된 물건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의 손으로 직접 창작된 것만이 비로소 사람들 앞에 선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휴일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왔다는 김미선 씨는 “진열된 물건 하나하나 판매자의 손때와 정성이 묻어 있다”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이라도 아기자기하고 실험정신 가득한 창작물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대 프리마켓의 또 다른 매력은 매 년, 달 단위로 바뀌는 기획 테마다. 2014년 프리마켓의 주제는 문화생산과 소비에 ‘창작’과 ‘독립’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자는 의미의 ‘손으로 만드는 세상’이다. 오는 7월에는 큰 주제 하에 ‘핸드메이드 라이프-새로운 상상과 미래’를 테마로 장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매번 ‘홍대 맛집’과 ‘홍대 클럽’을 검색하는 일에 질렸다면 홍대 프리마켓에서 창작과 소통의 기쁨을 느껴보자. 


  토요일에는 장미계단에서 만나요
  이태원 계단장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이태원 우사단로에 우뚝 서 있는 이슬람 사원 앞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사원을 찾는 관광객 대열에 합류했겠지만 그날만큼은 사원 옆 작은 골목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골목 끝 계단에서 이태원 계단장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계단 쪽으로 향하자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계단 한 번 밟아보리’ 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리던 행렬이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인파에 가려져 있던 계단장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직접 만든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 쓱쓱 손님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 계단 한 귀퉁이에 돗자리를 깔고 맨발로 손님을 맞는 주인장들이 보였다. 너비가 겨우 몇 미터 남짓한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갈 때마다 개성 넘치는 모습의 판매자들과 물건들이 시선을 끌었다.

  이태원 계단장은 장미계단이 위치한 우사단 마을 주민들이 기획하는 장터다. 계단 층층을 가게 삼아 물건을 팔기에 ‘계단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본래 장터라 하면 번듯한 가판대와 큰 천막을 상상하지만 이곳에서는 계단에 깔 작은 돗자리와 물건을 올릴 상자, 편안한 복장만 있으면 판매 준비 완료다. 초기 계단장은 마을 주민들끼리 자그맣게 시작한 예술 벼룩시장이었지만 그 특색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계단을 오르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일이 필수가 됐다. 실제로 기자가 계단장을 찾은 날은 이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혼잡을 빚었다. 계단장이 열릴 때마다 자원봉사활동을 한다는 한 스태프는 “원래 이렇게까지 방문객이 많지 않은데 TV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 같다”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이내 멀리서 “계단장 마감합니다!”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원래 마감시간인 오후 6시보다 1시간 이르게 정리에 들어간 것이다. 계단장을 미처 다 즐기지 못한 방문객들은 장날을 맞이해 사람들에게 공개된 우사단 마을 인근 화방, 개인 작업실 등을 찾기도 했다.

  작고 조금은 낡아 보이는 곳이었지만 계단장은 마을 사람들의 뜻이 모이고 사람들에게 소란스런 도심 속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앞으로 계단장이 바람직한 마을 공동체의 표본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길 바란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필리핀
  혜화 리틀 마닐라
  일요일 오후의 혜화동 일대에는 유난히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많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외국인일 정도이다. 바로 혜화동 성당과 ‘리틀 마닐라’를 다녀오는 필리핀인들이다.

  주한 필리핀인들이 여는 시장인 리틀 마닐라는 ‘작은 마닐라’라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필리핀 마닐라 장터의 한 부분을 그대로 떼다 놓은 모습이다. 100미터 남짓한 거리에 빼곡이 들어선 상점에서는 필리핀산 식료품과 각종 열대과일, 필리핀 전통 음식, 가전제품, 잡화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웬 필리핀 시장인가 싶겠지만 리틀 마닐라가 생긴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시장 끝머리에 위치한 혜화동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오가며 그 길목에 장터가 자리 잡은 것이다. 1996년 혜화동 성당에서 필리핀어 미사를 진행한 이래 규모를 확장해온 리틀 마닐라는 필리핀 현지에서도 알 사람은 아는 소문난 관광명소라고 한다. 본래 고향을 그리워하는 필리핀인들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일부러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도 많아졌다. 블로그 게시물을 보고 구경차 왔다는 이영화 씨는 “서울 한복판에 외국인들이 많으니 느낌이 새롭고 마치 내가 외국인이 된 기분이다”며 “대부분의 필리핀인들이 한국말을 잘 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필리핀인들에게 리틀 마닐라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일 뿐 아니라 모국의 정보를 교환하고 고단한 타지 생활에 활력을 주는 쉼터로서 톡톡히 역할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리틀 마닐라를 찾는다는 한 필리핀인은 “이곳에서 많은 필리핀 친구들을 만나고 필리핀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다”며 “여기서 맛보는 고향 음식에 한 주 동안의 힘든 일을 잊곤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리틀 마닐라의 존폐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인도에 임시적으로 세워진 장터가 도보를 방해하고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점포가 구의 허락을 받지 않은 무허가 노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이에 맞서 리틀 마닐라를 다문화의 상징으로 지켜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긴 하지만 내국인, 외국인 모두에게 색다른 명소가 되고 있는 리틀 마닐라. 나른한 일요일 오후 이국적인 향취에 빠지고 싶다면 한 번쯤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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