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학술-독일 나치 정권의 정치 선전 영화
영화로 보는 학술-독일 나치 정권의 정치 선전 영화
  • 곽정연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9.30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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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 1934)> 

선전영화는 나치 정권과 파시스트 정권 등 독재정권이 정권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이다. 독재정권은 영상이라는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방식을 사용해 대중들을 절대 권력에 복종하게 했다. 나치 정권의 대표적인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를 통해 선전영화의 역할과 기능을 알아보자.


 

 

 

   히틀러가 1933년 정권을 잡은 뒤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 등 지식인들은 외국으로 망명을 가거나 내적 망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일 국민들은 나치 정권을 지지한다. 히틀러는 실업자들을 국책사업에 끌어들여 실업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베르사유 조약의 군사제한조약을 폐기하고 자르지방을 독일로 다시 환속시키는 등 외교적으로 성공한다. 정책 외에도 당시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영화를 유용하게 활용함으로써 히틀러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통예술 장르가 발전한 독일은 1895년 프랑스 루미에르 형제에 의해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1차 대전 중에 영화의 영향력을 인식하고 영화산업을 진흥시킨다. 1차 대전에 패전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극, 무용, 문학 등 전통예술 장르의 예술성을 새로운 매체인 영화에 접목시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들을 제작하게 된다.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을 선두로 표현주의 영화라는 사조를 발전시키면서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제작회사를 보유하면서 영화를 예술적 매체로 인정받게 한다.

독일 나치 정권의 총통인 히틀러는 선전도구로서 영화를 가장 잘 활용했다.       제공/ 곽정연 교수


  히틀러는 이렇게 발전된 당시의 독일 영화기술을 자신의 정권을 선전하는 데 활용한다. 그는 일찍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에 능해 당에 입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전부장이 되기도 했다. 프리츠 랑을 비롯해 표현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은 함께 일하자는 히틀러의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지만 평소 히틀러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있었던 여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히틀러는 초기 산악 영화를 통해 독일의 자연경관을 미학적으로 영상화한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여 그녀가 작업을 하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영화 제작에 관한 전권을 그녀에게 부여한다. 그녀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다음해인 1934년 나치당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이다. 이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20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라는 찬사와 함께 히틀러와 나치를 미화시킨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영화로 정치선전 다큐멘터리로 규정할 수 있다.

  실제 전당대회는 9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진행됐으나 리펜슈탈은 4일간 열린 것처럼 기록하고, 개별 행사들의 시간적 순서를 바꾸며 행사들을 하나로 합치거나 몇몇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재현하기까지 한다. 기차나 숙소에서 당원들이 만취 상태에서 벌린 행패와 만행, 퍼레이드 대열을 이탈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은폐된다. 영화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의지의 승리>는 신생 독일의 위용을 전 세계에 과시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30여 대의 카메라와 120여 명의 기술자가 동원돼 사상 최대 규모로 제작된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번째는 히틀러를 전후 어려움에 처한 독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부각시키며 그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독일과 독일 국민에 대한 히틀러의 깊은 애정이다. 리펜슈탈은 이 두 가지의 메시지를 짧고 빠른 역동적 편집과 창의적인 촬영방식, 그리고 웅장한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가장 논란이 되어왔던 오프닝 시퀀스는 히틀러의 출현을 상징적으로 신비하게 묘사한다. 영화는 비행기 조종석에서 촬영한 구름의 이미지로 시작되는데 겹겹으로 겹쳐진 구름을 가르며 내려오는 히틀러는 마치 독일의 운명을 구해줄 신처럼 신비롭게 보인다. 그다음 공항에서 호텔까지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히틀러와 군중들 간의 리드미컬한 교차편집과 그것과 어우러지는 숏 크기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히틀러의 클로즈업 숏에 여자들과 아이들의 클로즈업 숏을 이어 붙임으로써 마치 히틀러와 군중 개개인 사이에 시선 교환을 통한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당시 히틀러에 대한 클로즈업 숏은 최초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로써 히틀러의 인자한 얼굴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클로즈업된 어린아이들의 밝은 얼굴들이 중간 중간 삽입되는데 그들의 호기심과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은 히틀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희망찬 미래를 히틀러가 가져다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히틀러를 로우 앵글로 잡아 관객이 우러러보게 함으로써 친근하지만 위엄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음악 또한 영화의 진행에 맞춰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며 하늘을 날다 점차 뉘른베르크로 다가오는 신에서는 마치 하나의 창조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화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사용하다가,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 도착해서부터는 경쾌한 행진곡 풍의 음악으로 다이나믹한 영상의 흐름을 뒷받침한다.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히틀러 연설 장면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연단 주위에 둥글게 레일을 깔아 카메라가 히틀러 주위를 회전하면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조명효과를 통해 히틀러로부터 후광이 비치는 듯이 보이게 한다. 이러한 촬영 방식을 통해 리펜슈탈은 히틀러가 마치 현실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 음악의 조화는 히틀러를 신적 존재처럼 느끼도록 만들면서 한편 그를 인간적이고 친밀하며 인자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한다. 촬영이 끝난 후 리펜슈탈은 61시간짜리 분량의 필름을 5개월간 작업하여 100여 분으로 줄인다. <의지의 승리>는 엄청난 사전 홍보 이후 1935년 3월 28일 베를린 동물원 옆 우파 팔라스트에서 큰 성원 속에 상영된 후 국민들은 이 영화를 반강제적으로 관람해야 했다.   

  이와 같이 리펜슈탈은 촬영과 편집에 있어 극영화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극적인 감동을 자아냈고 <의지의 승리>는 나치에 대한 정치 선전 도구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의지의 승리>는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193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1937년 파리 박람회에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그랑프리를 받는다. 1936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올림픽에 관한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와 같은 리펜슈탈의 영화들뿐 아니라 나치 정권은 철저한 사전검열을 통해 영화계를 장악하고 영화를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는 반드시 문화영화라고 칭하는 정치 선전 영화를 먼저 관람해야 했다.

  영화는 감성을 움직임으로써 막강한 의식적, 무의식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이다. 영화는 제작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러한 메시지는 때론 다양한 상징과 영화적 기법을 통해 쉽게 인지되지 못하도록 전달된다. 매혹적인 이미지의 아름다움은 강렬한 유혹이 되는 것이다.

  히틀러는 이렇게 발전된 당시의 독일 영화기술을 자신의 정권을 선전하는 데 활용한다. 그는 일찍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에 능해 당에 입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전부장이 되기도 했다. 프리츠 랑을 비롯해 표현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은 함께 일하자는 히틀러의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지만 평소 히틀러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있었던 여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히틀러는 초기 산악 영화를 통해 독일의 자연경관을 미학적으로 영상화한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여 그녀가 작업을 하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영화 제작에 관한 전권을 그녀에게 부여한다. 그녀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다음해인 1934년 나치당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이다. 이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20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라는 찬사와 함께 히틀러와 나치를 미화시킨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영화로 정치선전 다큐멘터리로 규정할 수 있다.   실제 전당대회는 9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진행됐으나 리펜슈탈은 4일간 열린 것처럼 기록하고, 개별 행사들의 시간적 순서를 바꾸며 행사들을 하나로 합치거나 몇몇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재현하기까지 한다. 기차나 숙소에서 당원들이 만취 상태에서 벌린 행패와 만행, 퍼레이드 대열을 이탈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은폐된다. 영화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의지의 승리>는 신생 독일의 위용을 전 세계에 과시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30여 대의 카메라와 120여 명의 기술자가 동원돼 사상 최대 규모로 제작된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번째는 히틀러를 전후 어려움에 처한 독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부각시키며 그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독일과 독일 국민에 대한 히틀러의 깊은 애정이다. 리펜슈탈은 이 두 가지의 메시지를 짧고 빠른 역동적 편집과 창의적인 촬영방식, 그리고 웅장한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가장 논란이 되어왔던 오프닝 시퀀스는 히틀러의 출현을 상징적으로 신비하게 묘사한다. 영화는 비행기 조종석에서 촬영한 구름의 이미지로 시작되는데 겹겹으로 겹쳐진 구름을 가르며 내려오는 히틀러는 마치 독일의 운명을 구해줄 신처럼 신비롭게 보인다. 그다음 공항에서 호텔까지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히틀러와 군중들 간의 리드미컬한 교차편집과 그것과 어우러지는 숏 크기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히틀러의 클로즈업 숏에 여자들과 아이들의 클로즈업 숏을 이어 붙임으로써 마치 히틀러와 군중 개개인 사이에 시선 교환을 통한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당시 히틀러에 대한 클로즈업 숏은 최초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로써 히틀러의 인자한 얼굴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클로즈업된 어린아이들의 밝은 얼굴들이 중간 중간 삽입되는데 그들의 호기심과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은 히틀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희망찬 미래를 히틀러가 가져다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히틀러를 로우 앵글로 잡아 관객이 우러러보게 함으로써 친근하지만 위엄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음악 또한 영화의 진행에 맞춰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며 하늘을 날다 점차 뉘른베르크로 다가오는 신에서는 마치 하나의 창조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화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사용하다가,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 도착해서부터는 경쾌한 행진곡 풍의 음악으로 다이나믹한 영상의 흐름을 뒷받침한다.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히틀러 연설 장면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연단 주위에 둥글게 레일을 깔아 카메라가 히틀러 주위를 회전하면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조명효과를 통해 히틀러로부터 후광이 비치는 듯이 보이게 한다. 이러한 촬영 방식을 통해 리펜슈탈은 히틀러가 마치 현실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 음악의 조화는 히틀러를 신적 존재처럼 느끼도록 만들면서 한편 그를 인간적이고 친밀하며 인자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한다. 촬영이 끝난 후 리펜슈탈은 61시간짜리 분량의 필름을 5개월간 작업하여 100여 분으로 줄인다. <의지의 승리>는 엄청난 사전 홍보 이후 1935년 3월 28일 베를린 동물원 옆 우파 팔라스트에서 큰 성원 속에 상영된 후 국민들은 이 영화를 반강제적으로 관람해야 했다.      이와 같이 리펜슈탈은 촬영과 편집에 있어 극영화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극적인 감동을 자아냈고 <의지의 승리>는 나치에 대한 정치 선전 도구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의지의 승리>는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193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1937년 파리 박람회에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그랑프리를 받는다. 1936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올림픽에 관한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와 같은 리펜슈탈의 영화들뿐 아니라 나치 정권은 철저한 사전검열을 통해 영화계를 장악하고 영화를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는 반드시 문화영화라고 칭하는 정치 선전 영화를 먼저 관람해야 했다.  영화는 감성을 움직임으로써 막강한 의식적, 무의식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이다. 영화는 제작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러한 메시지는 때론 다양한 상징과 영화적 기법을 통해 쉽게 인지되지 못하도록 전달된다. 매혹적인 이미지의 아름다움은 강렬한 유혹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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