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시간이 왜 면죄부를 주나요
공소시효, 시간이 왜 면죄부를 주나요
  • 이원영 기자
  • 승인 2014.11.1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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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공소시효 폐지 움직임, 피해자들은 눈물 흘린다

  지난 여름 ‘대구 황산테러’ 사건이 이슈였다. 유가족의 억울한 사연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끝나가는 공소시효 기간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올해 7월 7일로 완료될 계획이던 공소시효가 약 90일간 연장됐다. 공소시효는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임시방편적으로 연장돼왔다. 그러나 공소시효를 더욱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많다. 현행 공소시효제도의 문제점과 폐지 가능성을 알아봤다.


  실제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들,
  공소시효 폐지 운동 일으켜

  영화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아이들> 등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개봉될 때마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올라왔다. 관객들은 영화 속 극악무도한 살인이 실제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사건의 범인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공소시효가 이미 끝나 살해범을 잡아도 처벌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공소시효제도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07년 개봉된 영화 <그놈 목소리>의 실제 사건인 ‘이형호 군 유괴 살해’ 사건은 1991년 당시 아홉 살이 던 이형호 군이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유괴돼 살해당한 사건이다. 살해범은 수십여 차례의 전화통화와 메모지를 통해 돈을 요구하며 피해자 부모를 협박했지만 그 수법이 매우 치밀하고 지능적이어서 살해범을 끝내 잡지 못했다. 이형호 군은 사라진 지 43일 만에 숨진 상태로 발견됐고 범인을 잡지 못한 채 2006년 1월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 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영화 <그놈 목소리> 개봉 이후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2007년 12월, 15년이었던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2008년 조두순 사건(나영이 사건)과 2011년 영화 <도가니>의 개봉으로 아동성범죄 및 장애인 성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졌다. 출처/다음 아고라

  2011년에는 영화 <도가니>의 영향으로 포털사이트에는 아동성범죄 및 장애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사회적으로 사건이 재조명받게 되자 그해 11월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됐고 13세 미만의 아동이나 신체, 정신 장애인에 대한 강간, 준강간이 공소시효의 적용에서 제외됐다. 작년에는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강제 추행, 준강제 추행까지 공소시효에서 배제됐고 살인죄 중 강간 등 성폭력 살인죄도 공소시효의 적용에서 제외됐다. 공소시효제도에 반대하는 여론에 의해 공소시효제도는 특정 범죄에 대해 적용을 배제하거나 공소시효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조금씩 변해왔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유지되는 공소시효제도
  공소시효제도는 어떤 범죄사건에 대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로 1954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공소시효는 범죄의 경중에 따라 기간이 나눠지는데 △살인죄, 인질살해죄의 공소시효는 25년 △현주건조물방화, 화폐위조, 강도상해죄의 공소시효는 15년 △사기, 무고, 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0년 △절도, 상해, 횡령, 배임죄의 공소시효는 7년 △폭행, 명예훼손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하자는 말이 많지만 공소시효는 다양한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 우선 공소시효는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범죄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당사자들의 사건에 대한 기억과 증거가 멸실될 가능성이 높아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감정이나 사회적 감정이 진정되고 범인이 장기간의 도피생활로 인해 처벌을 받는 것과 유사한 상태에 있어 처벌의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보는 이유도 있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효율성 측면에서 공소시효를 유지하고 있다. 미해결사건에만 계속 매달려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수사의 효율성과 적정성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사건이 갑자기 해결된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들어 있는 공소시효 폐지 논의
  피해자들 또 한 번 고통 받아

  공소시효제도는 다양한 이유로 유지돼 왔으나 그 타당성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의 규정대로라면 공소시효가 완료된 이후에 범인을 검거하더라도 범인의 형 집행이 면제된다. 평생 동안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 피해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는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목적에도 반하는 결과를 만든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나 사회적 감정이 진정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과거에 비해 DNA 분석, 사진이나 문서의 복원, 성분 분석 등 과학 수사가 발달해 미궁에 빠진 사건들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범인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사건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은 공소시효제도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영화와 방송을 통해 드러나면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공소시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은 우세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인륜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에 69.1%가 찬성했고 22.5%가 반대했다.

  2012년 법무부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이는 2년째 국회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최근에는 반인륜 범죄 및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은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사건이 종결이 안 되면 수사기관은 그 사건에 매달려 있어야 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우리대학 주승희(법학) 교수는 “최근 살인죄의 공소시효제도가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되긴 했지만 폐지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직 공소시효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며 “법 개정은 환경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공소시효제도가 폐지될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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