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제40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 이루리(법학 2)
  • 승인 2014.11.2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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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소년>

  2006년 여름. 정확히는 2006년 7월 24일. 듣기만 해도 해가 쨍쨍 내리 쬐고, 젊음이 넘치는 이 날. 푸르디푸르고 넓디넓은 바다는 우리 아빠를 돌아올 수 없는 해저여행에 떠나버리게 했다. 개미. 망할 개미 때문이다. 태풍이름이 ‘개미’란다.... 비올 때 열심히 줄을 지어 피하던 개미들이 불만이 많았나보다. 그래서 태풍으로 복수하나보다. 작고 하찮게 여겼던 개미가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이용해서 사랑하는 우리 아빠를 데려갔다. 저 멀리.

  사랑하는 우리아빠는 고기잡이배의 선원이셨다. 2006년 태풍 개미는 괌 서남서쪽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덕분에 비는 많이 내렸었다. 그 비 덕분에 바닷물이 엄청 불었었다. 33년 만에 최대기록이라나 뭐라나. 이 비를 뚫고 우리 아빠를 비롯한 배의 선원들과 선장은 바다로 나섰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엄마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잊어버렸다. 그리고 20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묻지 못하고 있다. 우리엄마는 내가 ‘아빠’라는 단어만 꺼내도 눈물을 쏟아내셔서 감히 지금까지 여쭤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께 아빠는 왜 바다로 나갔는지를 물어보게 되면 엄마는 다시 아빠와의 추억과 아빠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기억을 다시금 되 집어보게 될 테고 엄마는 항상 추억 속에 목말라 하며 사는 슬픈 시체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에 대해 소개하자면 우리 아빠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착한 분이셨다.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셨고,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항상 베푸는 분이셨다. 그래서 엄마가 “이러다 집안 살림 거덜 나겠어!”라고 하며 아빠랑 대판 싸우시기도 할 정도로 말이다. 엄마가 드세긴 하셨으나 아빠도 실로 대단하셨다. 엄마께 잔소리를 들어도 항상 나눠주고 베풀고야 마시니 말이다. 엄마는 항상 나를 체벌하셨지만 아빠는 아무리 화가 나셔도 나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으신 분이었다. 아빠는 화가 나면 속으로 참으셨고 항상 나를 보며 웃어주시고 항상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셨다. 아빠는 나에게 든든하고 큰 산과 같은 분은 아니셨다. 항상 따뜻한 해서 찬 겨울에 난로 같은 분이셨다. 한 겨울에 모두가 난로 주변으로 모이듯, 나는 항상 아빠 주변에 맴돌았고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껌 딱지’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누구나 하는 말이듯 매일 같이“난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야!!!”라며 아빠를 웃음 짓게 했었다. 

  엄마는 아빠를 삼켜버린 바다를 끔찍이도 싫어하신다. 그래서 아빠의 장례를 치른 뒤 엄마는 바다를 보며 충혈 된 두 눈과 가눌 수 없는 몸으로 악을 써가며 욕을 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엄마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 바닷가가 보이지 않는 산 아래쪽에 위치한 아주 자그마한 아파트로.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그저 나 하나만 바라보는 엄마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이름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비록 아주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난 언제나 엄마의 자랑거리여야만 했기에 대학에 와서도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땡땡이와 대리출석 따위는 모르고, 원리 원칙을 중요시 하는 조금은 고지식한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바다가 좋다. 매우 많이 하늘만큼 땅만큼 좋다. 어쩌면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바다가 아빠를 삼켜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나는 다르다. 아빠가 바다를 삼켜 버린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바다가 아빠 같다. 아빠처럼 넓은 품을 가진 바다. 아빠처럼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바다. 그래서 더욱 더 아빠 같은 바다가 나는 좋다. 그래서 나는 여름 방학 때마다 아빠와 엄마와 함께 살았던 바다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는 특히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경치를 가진 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잠깐 바다를 보면 힘들었던 정신과 육체가 노인이 젊은 아이로 회춘한 듯이 싹 사라지고 신이 나고 힘이 난다. 바다가 파도로 넘실거리면 아빠가 힘내라고 기를 팍팍 주는 것 같아서 좋고, 햇빛에 반짝이면 아빠가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좋다. 바다가 어떠한 자태와 어떠한 향을 풍기던 간에 ‘바다’ 라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냥 좋았다.

  하지만 바다를 싫어하는 엄마에게는 차마 바다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시내에 위치한 자그마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한 거짓말이다. 어느 날은 엄마께서 “엄마가 카페에 한 번 들릴게~ 우리 딸 커피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 한번 봐야지~” 하시면서 카페에 오겠다고 하셨다. 난 화들짝 놀라면서 “아냐 엄마. 사장님께서 친구 데려오거나 가족 오는 걸 엄청 싫어하셔!!!”라며 엄마를 못 오게 말렸었다. 눈치 빠른 우리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는 하셨으나 이내 “뭐... 그래 알았어~ 너희 사장도 참 별나다 얘!”라며 사장님을 향한 매서운 눈빛과 함께 나를 보러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운 얼굴을 내비치셨다. 이렇게 한 고비를 넘기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하면서 바닷가에 가는 이유는 난 바다를 보러가는 것이 아빠를 보러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바다란 만날 수 없는 아빠를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항상 바닷가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려 바다를 보며 마음속으로 “아빠! 아빠 딸 왔어!!”라고 소리친다. 아빠만이 들을 수 있도록. 저 바다에 닿을 수 있도록.

  그렇게 알바를 시작한지도 1달이 지나갔다. 방학기간 2달만 하는 것이기에 이제 반 을 지나온 것이다.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다니... 요즘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어느 순간엔 무섭기도 하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버리면 바다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건데 바다를 못 보게 되면 아빠가 보고 싶어서 어떻게 견디지?’ ‘바다를 보고 싶은 그리움에 사무쳐서 지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물론 바다사진을 많이 찍어놓기는 했으나 실제로 보는 것만 못하기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그렇기에 바다에 가까이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바다를 더 많이 봐두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바가 끝나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바다와 한껏 가까이 지내나다 집에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너무 늦으면 엄마가 걱정하시겠지만 너무 늦지 않고 적당히 늦게 들어가면 괜찮을 것이다. 2시간정도면 바다랑 더 있다가도 괜찮을 것이다. 2시간 정도는...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는 밤7시. 해가 완전히 다 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가 완전히 다 떠 있지도 않는 6시와 8시 중간시간인 7시. 이 애매하고도 오묘한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나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저녁7시의 모래사장은 젊음의 장이다. 옷을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모르는 차림의 젊은이들은 돗자리를 깔고 너나 할 것 없이 술판을 벌리고 있다. 또한 여자들 없이 남자들끼리 바다를 찾은 이들은 하이에나 마냥 여자들을 탐색하고 염탐하며 “같이 술 한 잔 하실래요?”내지는 “몇 분이서 오셨어요?”라며 여자들을 얻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다. 이 모래사장은 여자를 얻기 위해 총과 칼 대신 맥주와 소주와 치킨으로 무장한 남정네들의 전쟁터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이곳은 전쟁터이다. 남정네들의 눈빛이 피 터지는 이 전쟁터 속에 나는 그저 이  곳의 배경처럼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이 바다와 모래사장과 하나로 어우러진 하나의 배경이기에. 그렇게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바다에 서서히 녹아들어가고 있을 때, 그때 마주쳤다. 나와 같이 하나의 배경이 된 사람을! 그 소년을 말이다. 아무도 우리를 의식하진 않지만 그 무의식가운데 우리는 서로를 의식했다. 내가 그를 봤고, 그도 나를 봤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보았다.

  그 소년 말고는 어떤 이가와도 이렇게 바다와 어울릴 수는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소년에게 바다는 하나의 배경과 풍경에 그치지 않았다. 그 소년에게는 바다향기가 나고 바다의 느낌이 났다. 바다는 그 소년 자체였다. 바다 같은 소년의 눈동자와 시원한 청량함이 나를 끌어들였다. 그 소년은 바다만큼이나 거부하기 힘든 존재로 다가왔고 난 마치 한 여름날 에어컨을 찾아가듯 한 겨울날 난로를 찾아가듯 의식하고 있지만 당연하게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소년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다가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소년은 자신과 같은 하나의 배경이 된 사람을 처음 보나보다. 나처럼. 소년에게 다가가 가만히 앞에 서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대로 술래 없는 얼음땡을 하게 되었다. 우리 둘만 빼놓고 모두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정말로 우리는 하나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술래 없는 얼음땡을 했을까. 소년이 먼저 얼음에서 풀렸다. 그는 “반가워”라며 입을 움직였다. 나는 눈썹을 움직였다. 입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냥 반사 신경으로 눈썹이 들썩여 졌다. 너무 놀라서.... 그 소년이 나에게 말을 걸어준 사실이 너무 놀라워서. 눈썹 한 번을 들썩이고 놀란 토끼눈을 한 채 계속 쳐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그 소년은 “나도 놀랐어”라며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나의 얼음이 땡! 하고 깨졌다. 그렇게 풀려버린 나는 “나도 반가워”라고 하며 웃어주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걷게 되었다. 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다. 나와 너무 닮은 그 소년이 너무 신기하다. 알고 싶고 내일도 모레도 또 보고 싶다. 마음에 회오리가 친다. 거세지 않은 아주 작은 회오리가 친다. 잔잔하고 작은 회오리가 친다. 잔잔한 바다의 파도처럼 잔잔하게... 잔잔하게...

  엄마께서 너무 늦으면 걱정하시기에 나는 소년에게 “이제 9시 다 되간다. 엄마가 걱정하셔서 가봐야 할 거 같아 오늘 즐거웠어~”라고 말하며 돌아서려했다. 그 순간 소년이 “내일도 7시에 그 자리에서 만나자 어때?”라며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해준 소년이 너무나도 고맙고 반가워서 “좋아!!!”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바로 뒤돌아 정류장을 향해 뛰어갔다.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바보 바보 조금 기다렸다가 말하지!!! 그렇게 속보이게 바로 대답은 왜 해가지고!!! 아 창피해!!! 내일 어떻게 보냐고!!!’라며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쾅쾅 찧었다. 창피함이 더 컸는지 머리가 아픈지도 몰랐다. 집에 와서 보니 내 머리위해 호두만한 혹이 나있었다. 엄마께서 “평소보다 늦어서 걱정했잖니 앞으로 늦으면 전화를 먼저주렴”이라고 말씀하실 뿐 어디에 있었는지 뭐했는지 물어보지는 않으셨다. 앞으로 한 달간 늦는다는 전화를 매일매일 해드려야겠다. 씻고 누운 지 한참이 지났다.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 소년 때문이다.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든다며 친구들이 신기해하던 나인데! 그 소년이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든 것 같아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르바이트 가려면 자야하기에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잠을 못 잤다. 거의 못 잤다. 아니 아예 못 잤다. 새벽 5시까지 말똥말똥하게 있다가 겨우 잠이 들려고 했지만 엄마의 알람소리가 울려 나도 그냥 일어나버렸다. 억울하다 억울해 그 소년 때문에 이게 뭐야! 난 분명히 아르바이트에 가서 피곤에 찌든 얼굴로 커피를 만들 것이고 무거운 눈꺼풀을 붙잡지 계속 내려놓으며 꾸벅꾸벅 졸 것이다. 그래도 오늘 밤에는 푹 잘 수 있겠다. 피곤함에 집에 오자마자 뻗어 잘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아침을 준비하시는 엄마 옆에서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아침이 다 되어서 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다 보니 벌써 버스시간이 되어서 버스를 타러 나갔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드디어 퇴근시간이 되어서 7시가 되었다. 오늘 조는 바람에 작은 실수를 몇 번 하긴 했지만 예상보단 훌륭했던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제 그 소년을 만나러 간다. 바다 소년을 만나러 간다. 바다와 똑같이 닮은 소년이어서 이름조차 모르는 그 소년은 나에게 ‘바다 소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어졌었다. 그 소년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나에게 ‘바다 소년’이라는 존재였을지는 말이다.

  어제 만났던 그 자리에 바다소년이 서있다. 소년도 이내 나를 발견했는지 특유의 바다향기가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서로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디에 사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왜 바다를 좋아하는지 또한 말이다. 아무 조건이 필요 없었다. 이 소년을 만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았다. 그냥 좋다. 바다향이 물씬 풍기는 이 소년이 그냥 좋았다. 우리는 만나면 “반가워”라고 인사를 건네고 서로를 향해 웃어준 다음에 걷기 시작한다.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나는 소년의 옆에서 소년은 나의 옆에서 말이다. 가끔씩 말을 하기도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나지도 않는 말들이었다. “어! 불가사리다!”와 같은 말들 말이다. 상대방이 대꾸할 필요가 없는 말들을 가끔씩 할 때가 있다. 누구와 같이 있으면서 말을 하지 않는데 어색하지 않던 적은 엄마와 아주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빼고는 처음이다.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질 못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조차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2시간 정도 걷다가 “반가웠어”라고 말하며 만났던 그 자리에서 헤어진다. 나는 정류장으로 소년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1주일 넘게 바다소년과의 만남을 계속해왔다. 우리는 바다라는 배경과 하나로 어우러졌고, 원래 자리하고 있었던 조각상 같이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만남을 계속 해왔다. 바다 소년이 생각이 날 때면 박하사탕과 사이다가 연상되었고, 바다 소년을 만나러 가기 전 그가 떠오를 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박하사탕을 먹기도 하고 사이다를 마시기도 했었다. 그러면 마치 소년과 바다와 함께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아빠가 돌아가신지 8년째 되는 날이다. 아빠의 기일이면 나와 엄마는 아주 자그마한 강을 찾는다. 아빠의 시체를 찾지 못해 유골마저 없었기에 아빠를 묻을 수 없었던 엄마와 나는 아빠를 가슴 속에 묻기로 했다. 그렇게 8년째 아빠는 우리의 가슴 속에 묻혀있다. 바다를 찾지 않는 이유는 엄마는 도저히 바다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그마한 강을 찾게 되었다. 이 자그마한 강을 찾게 된 것도 이제 8년이나 되었다니... 매일같이 아빠를 회상하지만 7월 24일 이날은 1년 중에 아빠생각으로만 꽉 차게 되는 날이다. 아빠는 술과 담배를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래서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내가 어찌나 구박을 했는지 모른다. 이래서 아빠 손주 손녀는 보고 죽을 수 있겠냐고, 오래오래 살아서 증손주까지 보고 죽어야지 이렇게 술 담배를 좋아하면 오래살 수 있겠냐며 제발 담배 좀 끊고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때마다 아빠는 “아빠는 오래살 수 있어! 걱정 붙들어 매! 우리 딸이 낳은 자식도 보고 그 자식이 낳은 자식도 보고 죽을거야! 걱정하덜말어!”하며 나의 화를 진정시키려고 했었다. 그 때 그 말을 하질 말지... 이렇게 빨리 갈 거면서 무슨... 나 아직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는데 왜 벌써 갔어..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먼저 가서 이렇게 슬프게 해. 나 결혼할 땐 누구 손 붙잡고 들어가라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8년 전 오늘로 되돌려서 아빠가 바다에 절대 못나가게 할텐데... 너무 원망스럽다.

  아빠의 기일이기 때문에, 오늘은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아르바이트를 하루 쉬었다.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다 소년에게 오늘 만나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제만나고 헤어졌을 때 말을 했었어야 하는 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강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엄마의 곁을 떠날 수가 없기에 7시까지 소년과 나의 ‘그 장소’에도 가지 못한다. 엄마를 두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바닷가는 더욱이 갈 수 없다. 엄마가 가장 슬퍼하는 장소이기에 오늘만큼은 갈 수가 없다. 나는 소년의 이름도 연락처도, 사는 곳도 모른다. 혹시나 소년이 오지 않는 나를 계속 기다리지는 않을까. 기다리다가 혹여 화가 나지는 않을까. 내가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소년과 나의 그 장소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마음만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일만나면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지.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는지 혹시 나를 걱정하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상하진 않았는지 소년에게 물어보고 미안한 마음을 꼭 전해줘야지 라고 생각하며 오늘만큼은 엄마 옆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소년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아르바이트를 할 때 대형 사고를 몇 번 저질렀다. 평소의 사장님 같았으면 이렇게 큰 실수에는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실 텐데 어깨를 톡톡 쳐주시면서 그냥 넘어가셨다. 어제가 아빠의 기일이기에 그러셨나 보다. 그게 아닌데... 사장님께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큰 사고들을 빵빵 터뜨리고 시간은 흘러 드디어 7시가 되었다. 나는 한 마리의 치타나 표범처럼 내달려 소년과 나의 ‘그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소년이 없다. 소년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지금 이 시간에 소년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소년이 없었다.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제 내가 연락하지 않고 나타나지 않아서 화가 무척이나 많이 난 것일까? 혹시 어제 당했던 감정을 나 또한 느껴보라고 나에게 이러는 것일까? 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이윽고 ‘이러다 소년을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소년이 늦을 수도 있으니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다. 소년은 오늘 오지 않았다. 내 잘못이다. 내가 어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소년을 배려하지 않았기에 소년이 화가 난 것이 틀림없다. 혹시 소년이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닐까? 소년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은 주체할 수 없게 생각에 생각을 물었고 나는 소년을 영영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의 바다가 없어졌다. 나는 소년을 잃었다.

  다음 날 혹시 모르는 생각에 다시 ‘그 장소’를 찾았으나 소년은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소년은 오지 않았다. 그 다다음날에도 다다다음날에도 소년은 오지 않았다. 나쁜 생각은 항상 들어맞는다. 소년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바다인 그 소년과 영영 만나지 못할 생각에 하루하루 기운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기일 전날 소년은 이상한 말을 했다. 우리는 “반가워” “반가웠어” 이외의 말은 잘 하지 않는데 그 날 소년은 조금 달랐다. “고마워 즐거웠어”라는 말을 바다 향기가나는 입술을 움직여 나에게 말했었다. 그리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어주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소년이 오늘 기분이 좋은가 보다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소년은 우리의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보다도 먼저 말이다.

  소년은 아빠가 아니었을까? 아빠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나를 보러 바다를 찾을 것은 아니었을까? 소년에게선 바다향기가 났고 소년은 바다와 하나로 어우러졌었다. 그는 나에게 바다였다. 아빠처럼 말이다. 아빠의 기일 날 맞춰 나를 떠난 그 소년이. 나만의 바다였던 그 소년이. 우리 아빠와 너무나도 닮은 그 소년은 우리 아빠가 8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만들어 낸 선물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소년에게 한여름의 에어컨 같이 한 겨울의 난로 같이 이끌려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토록 따스하던 웃음을 지어보이며 항상 환하게 웃어주던 그 미소가 나를 보며 “반가워”라며 건네던 그 인사가 소년이 아니라 아빠가 아니었을까. 나는 소년이 그립다. 아빠가 그립다. 너무나도 보고 싶다.

  동물들이 옹달샘을 찾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떠나듯이 소년은 아빠의 그리움에 목마른 나에게 한모금의 물이었고, 옹달샘이었다. 그 소년을 만나 나는 다시 마음을 잡고 다짐을 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소년을 만났던 그 여름을 기억하며 지금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 가슴 속에 묻었던 아빠를 기억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바다를 본다. 바다가 나의 출구이고 나의 힘이 되어준다. 바다는 언제보아도 언제 맡아도 언제 들어도 언제 느껴도 좋은 나의 아빠이다. 

<제40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수상소감>  
  저는 충남 보령에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이곳은 대천해수욕장이 있어서 매년 여름이면 국내외에서 관광객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곤 합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매년 여름 때마다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여름 내내 바다와 함께 생활하면서 바다를 보고 바다를 느끼며 지냅니다.

  바다는 모든 고민들을 다 가져가고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답답할 때면 종종 바다를 찾곤 했었습니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잔잔해집니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많습니다. 바다에 대한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고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주인공과 같이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바다와 함께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글을 쓰면서 잠시 잊고 지냈었던 바다와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을 다시 회상할 수 있어서 글을 쓰는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 소설 속에는 저와 아빠와 바다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스물한 살이 지나가면 표현 할 수 없는 지금 느끼고 있던 감정과 감성을 소설 속에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고 작품을 보신 분들이 순수한 감성을 느끼셨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다시 <바다소년>을 꺼내 볼 때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구나. 스물한 살 때의 나는 너무나 아름다웠구나’라며 작품 안에 스물한 살의 모습으로 봉해져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툰 필력으로 글을 써 내려갔지만 순수한 마음과 그리움을 담아서 쓴 저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저에게 큰 의미 있는 작품 <바다소년>이 수상까지 하게 돼 너무나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저만의 바다소년인 아빠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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