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에 대한 이해
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에 대한 이해
  • 윤상용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
  • 승인 2015.03.30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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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말인 2014년 12월 29일 부로 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이하 약정)이 발효되면서 ‘정보 공유’가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약정은 작년 5월에 열린 샹그릴라 3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3국 간의 정보 공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추진돼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의 제한적인 공유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약정은 북한이 2013년 4월 최고 인민회의에서 “핵 억제력과 보복 타격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4.1 핵 보유 법령’으로 명문화하면서 각국이 위기의식을 공감하게 된 결과물이다. 특히 북핵뿐 아니라 미사일 위협까지 증가했다. 북한은 이미 사거리 300~500km의 스커드 B, C 미사일을 시작으로 3,000km급의 무수단 미사일이 실전 배치된 상태이고 미 본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거리 10,000km~12,000km급의 대포동 2호와 KN-08도 개발 중이다. KN-08 같은 경우는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하기 때문에 발사 지점을 은닉하고 기습적으로 발사할 수 있어 더더욱 위협적이다. 여기에 2013년에는 제네바 주재 주 UN 북한대표부 대사가 “한국을 철저히 파괴하겠다”라고 협박했던 적이 있고 바로 그 직후에는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 발언까지 했었기 때문에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한·미·일 3국은 정보공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공감하게 됐다.
작년 12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의실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 체결에 대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출처/NEWSis

  정보 공유 약정의 의의와 논란
  통상적으로 정보 공유는 정보를 교류하기로 한 당사자들이 모두 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체결된다. 예를 들어 홀로 정보를 수집하면 별도의 정보 수집 수단이 필요해 추가로 비용을 지출해야 하거나 혹은 혼자서는 아예 취득할 수 없는 정보를 서로가 채워줄 수 있는 상황일 때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정보 공유는 ‘정보’의 속성상 모순된 부분이 있다. 정보는 그 정보가 필요한 자가 획득했을 때 가장 가치가 높으며 많은 이가 알게 될수록 가치가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구 상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혼자서 효과적으로 전부 수집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 생명인 정보의 속성 때문에도 그렇지만 몇 해 동안 계속 이어지는 경제 문제 때문에 각 국가들이 정부 예산을 깎고 있는 상황도 여기에 한 몫 더해준다.

  사실 약정을 체결했다고 말하면 기존에는 정보공유체계가 없었던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미 한·미 간에는 1987년에 체결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군사비밀 보호에 관한 보호 협정>이 존재하고 미·일 간에는 2007년에 체결된 <미합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군사비밀 보호를 위한 보안대책에 관한 협정>이 있다. 즉, 이미 한·미와 미·일 간에는 정보 공유에 관한 협정과 절차가 있었으나 한·일 간에만 그 고리가 빠져 있었다. 특히 한·미나 미·일 간은 별다른 논란이 없지만 한·일 간의 정보 교류에는 실리적인 문제 외의 정서적, 문화적,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이번 약정이 체결되면서 다소간의 논란이 야기됐다. 먼저 일본과 군사 관련 협정(이하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국민 정서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와 관련된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강제 징용, 종군 위안부 문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독도 문제 같은 영토권 문제가 있으므로 일종의 거부감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협정에 반대하는 의견에는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자위대의 보통군대화나 재무장 시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와 중·일이 조어도 문제로 대립 중인 상황에서 일본과 한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여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일 정보 수집 역량의 상호보완성
  이런 여러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약정이 체결된 데에는 실리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한국과 일본의 능력은 어느 정도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세운 평화헌법, 그리고 적국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받아야만 반격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수방위원칙’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무기의 정밀도와 화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현대에는 ‘한 대 맞고 반격을 한다’는 것이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대를 맞는 순간 반격은 고사하고 그 한 방이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그 첫 한 방이 ‘핵’이라면 사실상 반격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수백, 수천만의 민간인 희생자까지 야기된다. 항상 수세에서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일본은 이 때문에 적의 동향 수집에 집중해 왔으며 활동에 제약이 큰 자위대를 보완하기 위해 위성을 비롯한 다양한 첨단 자산을 동원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해왔다.   

  일본 측이 보유한 정보수집 자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위성 자산으로 일본은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부터 대북 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 포착하기 위해 광학 및 레이더 위성인 정보수집위성(이하 IGS)을 쏴 올렸다. IGS는 이후 2003년 단 한 번의 실패를 제외하곤 전부 정상 궤도에 올라갔으며 일부는 수명이 다해 현재 4기의 위성이 가동 중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태양동기궤도 위성으로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 돌며 감시하므로 실제 한반도 상공을 거쳐 가는 시간은 하루 중 5~10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에 한반도 상공을 통과하는 한·일의 위성 촬영 정보가 전부 취합될 수 있다면 북의 움직임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특히 북한과 연줄이 있는 재일교포와 조총련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 수집도 가능하게 된다. 아울러 이번 약정 체결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북한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일제 부품의 유통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으로 북한은 이미 진공펌프나 원심분리기처럼 필수적인 일제 부품을 우회 경로로 수입하려고 시도하다가 적발됐던 바가 있다. 만약 일본과 정보가 공유돼 이들 핵심 부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면 현재 북한이 개발 중인 무기의 대략적인 제원이나 양, 수준 등을 가늠할 수 있을 공산이 크다.

  반면 한국의 장점은 수집된 데이터에 대한 해석 능력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의 경우는 정보 수집에 있어서 대북 분야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고 문화적, 언어적 특성을 이해하기가 훨씬 유리하다. 특히 지정학적인 정보 수집 조건도 무시할 수 없는데 한국에서 북한을 바라볼 경우 능선이 종격실(縱擊室)을 이루지만 일본에서 북을 바라보면 횡격실(橫擊室)을 이루기 때문에 레이더 탐지를 할 경우 전파 노이즈가 현격하게 낮다. 따라서 한·일이 수집한 데이터 정보를 한 곳에서 취합한다면 서로의 사각(死角)을 보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 속의 정보 공유 협정 사례
  역사적으로도 공동의 목표나 적을 놓고 정보 공유 협정을 체결한 후 각 국가별로 지역이나 정보 수집 분야를 나눴던 사례가 종종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게서 가로챈 정보를 연합국 수뇌가 공유할 필요에 의해 영국과 미국이 체결했던 영미협약으로 2차 세계대전 후 이 협약은 1946년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추가로 참여한 ‘파이브 아이즈’ 협정으로 발전했다. 총 5개국 17개 정보기관이 참여한 이 협정은 미 국가안보국(NSA), 연방수사국(FBI), 국방정보국(DIA) 뿐 아니라 영국의 국내방첩국(Mi5), 해외정보국(Mi6), 국가통신본부(GCHQ), 국방정보국(DI),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 호주 비밀정보국(ASIS), 뉴질랜드 보안정보국(NZSIS)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냉전기간 내내 소련과 동구권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각 기관이 인간정보(HUMINT), 신호정보(SIGINT), 군사정보, 방첩, 보안 등 전문분야에 따라 역할을 나누어 맡았다. 이들은 소련 주요 인사의 대화 녹취 뿐 아니라 정부, 군, 당, 종교계 인물 및 인사이동, 군사 현황 및 이동 전개 상황, 국가 첨단 기술, 주요 관심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기밀 정보의 공유라는 이 협정의 기본 성격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같은 경우는 1973년 까지 이 협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2005년까지는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았다. 물론 대상 관심사가 바뀌어 테러정보에 대한 공유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 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최근에는 디지털, 인터넷 영역으로 정보 공유 분야가 옮겨간 상황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경우는 3차 중동전이 터진 이듬해인 1967년 경 이스라엘과 미국이 체결한 CYR 협정이다. 통칭 ‘6일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이 전쟁은 당시 이스라엘이 전 주변 중동 국가들에게 기습을 당하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과 레비 애쉬콜 이스라엘 대통령에 의해 체결됐다. 하지만 정작 이 협정을 체결하고 덕을 본 쪽은 미국이었다. 최초 예상과 달리 중동 상황이 그 이후에 급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최우방 국가 중 하나였던 팔레비 왕조의 이란이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전복되어 버리자 주요 정보 수집처를 잃어버렸다. 심지어 1983년 4월 19일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가장 큰 중동지역 스테이션이던 레바논 베이루트 대사관에 헤즈볼라가 트럭 자폭 테러를 하면서 24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핵심 스테이션을 잃은 미국은 중동지역 정보 수집이 난관에 봉착했지만 이 때 바로 이스라엘과 체결했던 CYR 협정 덕에 미국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때부터 한동안 미국은 정보 강국 이스라엘로부터  동을 근거로 한 테러단체와 급진 이슬람 단체의 활동, 재래식 무기 확산 및 중동 정세 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 공여된 소련제 무기에 대한 정보도 대량으로 얻었다. 1989년에는 시리아 공군 조종사가 MiG-23기를 몰고 이스라엘로 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CYR 협정 덕에 미국은 MiG-23에 대한 기체 데이터를 얻고 항전장비와 무기체계 등을 분석할 수 있었다.

  한·일 진실한 노력 필요해
  이번에 체결된 약정은 대북 관련 정보 분야로만 한정된 데다 한·미·일 3국이 서로 특정 정보를 주고받을 의사가 일치할 때만 유효한 제한적인 성격이다. 즉,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 한해 양자가 상호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만 정보를 교류하게 되며 아무리 한 쪽에서 정보 제공을 요청하더라도 이것이 상대방과 공유할 성격의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얼마든지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한·일 간에는 여전히 역사, 영토, 정치가 얽힌 문제가 산적해 있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흡한 반성이 껄끄러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번 약정 자체에는 실리적, 현실적인 관점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삼국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에 각자 분업화 하여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자는 약정일 뿐,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는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이 진정한 협력과 우호를 이어서 발전시켜 나가려면 이런 약정의 체결뿐 아니라 서로 묵은 숙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양국의 진실한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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