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돋보기] 지금은 달관세대?!
[이슈 돋보기] 지금은 달관세대?!
  • 이원영 기자
  • 승인 2015.05.05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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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한 세대에 이름을 붙이고 정의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베이비붐세대, 386세대, X세대, IMF세대, 오렌지족 등 시대마다 다양한 이름들이 존재해왔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는 근래에는 청년 세대가 처한 부정적 현실을 강조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의 평균 임금에서 따온 ‘88만원세대’, 능력은 뛰어나지만 값이 싸고 내구성은 떨어진다는 ‘이케아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가 그러한 이름들이었다.

  최근 청년세대를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이 나왔다. 바로 ‘달관세대’다. 두 달 전 조선일보는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젊은이들을 소개하며 그들에게 달관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달관세대라는 이름은 ‘득도’를 의미하는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우리식으로 바꾼 것이다. 일본의 사토리세대는 경기불황으로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지자 아예 정규직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하는 청년층을 말한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달관세대는 취업하기도 어렵고, 취업을 해도 격무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비정규직을 선택하고 이러한 삶에 만족하며 사는 합리적인 이들이다.

조선일보는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달관세대'의 삶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기사에는 월 100만원을 벌지만 '그래도 풍족하게 산다'는 청녕의 주말이 묘사됐다. 출처/조선일보
  기사 보도 후 청년들의 비난은 쇄도했다. 이들은 기사를 향해 “사회구조가 낳은 청년 위기의 해법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는 청년들에게 사회구조를 탓하기보다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잘못된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이에 대해 분노하는 청년들은 어려움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투정만 부리는 이들로 여겨지게 된다. 달관세대는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가볍게 만든다. 기성세대들이 초래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 해결방법을 개인의 만족과 적응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조선일보는 달관세대를 긍정적으로 표현했지만 달관이라는 말에는 포기의 의미가 강하다. 달관세대라는 이름이 청년들에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도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함을 강요하는 것만 같다.

  달관세대의 삶을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달관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달관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달관세대로 소개된 한 청년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자급자족하기를 선택했다. 그는 회사를 나와 학원 계약직 강사로 취업했다. 최근에는 강사직도 그만두고 그간 벌어둔 돈으로 일하지 않고 지낼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달관세대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소위 명문대생이었고 어느 정도의 자본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에 달관세대라고 소개된 나머지 청년들 역시 어느 정도 달관할만한 준비가 돼있는 이들이었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이런 청년들이 얼마나 될까. 소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달관세대의 원형인 일본의 사토리세대와 단순 비교도 어렵다. 일본은 우리보다 높은 최저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달관세대라는 이름은 88만원세대, 삼포세대로 불리던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대안적 삶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를 외면한 채 비현실적인 대안을 청년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달관이란 이름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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