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다독여주지 못하는 사회
아픔을 다독여주지 못하는 사회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5.09.01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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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숨을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용팔이’에서는 주인공이 성폭행 피해자에게 “그의 호텔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너의 잘못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전파돼 논란이 일었다.‘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와 같이 해석될 수 있는 이 대사가 공중파 드라마에 등장한 것은 성폭행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인식 수준이여과 없이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사회의 환경과 인식 속에서 또다시 피
해를 입고 있는 사회, 그 속을 들여다봤다.
 


 

  피해자들을 위해
  복지시설과 제도를 확립하는 정부
 1388, 1366, 117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는 버스 번호로 어떤 이는 숫자 암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위의 숫자들은 각각 청소년상담, 여성긴급상담, 학교·여성폭력피해자 긴급지원을위한 전화번호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들을 위한다양한 상담서비스를 운영하며 신고센터를 설립하기도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기도 한다.예컨대 올해 초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전국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며 CCTV를 설치하지 않는 어린이집을 상대로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는 사회적으로 파장이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기도 한다.

마포대교 한가운데 시민들을 위한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출처 / 한겨레 뉴스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시설과 제도, 그 허와 실

이렇듯 피해자들을 위해 다양한 방책들이 나오면서 아픔을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제공되는 시설과 제도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러 방책들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시설과 제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살 다리’라고 불리던 마포대교가 2012년 ‘생명의 다리’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자살률 1위의 장소인 마포대교의 변신에 주목했고 자살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생명의 다리가 생긴 후 자살률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자살시도율은 높아졌다는 점에서 효과가 미흡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생명의 다리에 있는 ‘생명의 전화’ 역시 단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전화를 했지만 갑자기 경찰이 출동해 곤경에 처했다는 경험담들이 나와 본래 ‘생명의 전화’가 설치된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청소년 상담전화 서비스의 불친절과 무성의함에 힘이 빠지고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신고를 망설인다. 이에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신고 중 33.1%는 효과가 없다고 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통사고의 경우에도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홍보 부족의 이유로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4년까지 발생한 223,552건의 교통사고에서 4,762명의 사망자와 33,749명의 부상자가 뺑소니 차량에게 사고를 당했다거나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다. 이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발생시킨다.  출처 / 고려대 양성평등센터

  피해는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
 사회의 각종 제도나 시설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 역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상처를 키우기도 한다. 피해자들에게 피해의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내뱉거나 그들이 지닌 상처를 공감하고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성폭행 발생 원인의 일부는 짧은 옷을 입은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하거나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사회 전반에 깔린 인식들이 그 예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당한 폭력을 치부라 여겨 신고를 주저한다. 실제로 20%를 웃도는 성폭행 신고율을 보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알 수 있다
.
 실제로 우리대학 인문대에 재학 중인 한 학우는 “성추행을 당해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이 어떻게 성추행을 당했는지, 왜 당하게 됐는지 등과 같이 배려 없이 집요하게 묻기만 했다”며 “가해자를 처벌하길 원해서 신고를 했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야 했다”고 호소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시가 메르스 격리자의 신상 정보를 실수로 SNS에 기재해 격리자들이 메르스 환자로 낙인찍힐 위험을 불러오기도 했다. 또한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업 중에 부모님이 메르스 감염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한 뒤 해당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도움과
  주변의 따듯한 시선 필요해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이에 따른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하면서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응책과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별로 각종 폭력신고·상담센터 내의 서비스의 질적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철저한 격리와 가해자의 정당한 처벌이 요구된다. 딱히 ‘가해’의 주체가 없는 질병·재해의 경우 정부는 발 빠른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한 긴급구조 대응 및 후속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피해자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역시 변화돼야 한다. 피해자가 더 이상 피하지 않도록 곁에서 응원을 해주고, 신고를 망설이거나 상담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회유해 도움을 주는 것
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피해자들은 의무적이고 딱딱한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보상과 배려는 피해자들을 더욱 숨게 만들 뿐이다. 지금도 새로 운 사건 사고로 크나큰 상처를 받고 있을 그들에 게 우리는 따뜻한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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